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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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목격자:目擊者 (1)

2022.01.16 15:21

이산해 조회 수: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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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KNOWN

 

1

프로 사진작가 사계절(史季節)은 바빴다.

야외촬영 때문 였다.

사계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와 장비를 꾸렸다.

촬영 장비는 이랬다.

흑백 필름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식 구형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오디오와 비디오를 결합한 최신형 녹화기 등 이었다.

장비를 갖춘 사계절은 카메라가 담긴 백 팩을 등에 걸치고 촬영 장소를 향해 떠났다.

 

날씨는 쾌적했다.

사진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 하나 없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승용차를 몰아 30분만에 도착한 곳은 남산 공원이었다.

오래 만에 남산타워전망대에 올라 서울 시가지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사계절은 남산 순환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그러고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 입구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숲 입구는 비교적 한적했다.

사람의 발길도 적었다.

자연 조화가 잘 어우러진 이곳은 연인들의 은밀한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프로 사진 작가들이 선호하는 장소로도 널리 알려졌다..

사진 작가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가 있었다.

형영 각색의 그로데스크한 소나무들이 빼곡하고 또 한 주변 풍광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 였다.

 

차에서 내린 사계절은 승용차 트렁크에서 백 팩을 꺼내 카메라 장비를 챙겼다.

흑백필름만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식 카메라와 SD 카드를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에는 각기 망원줌렌즈를 부착했다.

비디오 녹화기도 잊지않고 챙겼다.

 

때는 5 중순 오후

절기가 말해주듯 사방은 온통 짙푸른 신록이었다.

카메라와 비디오 녹화기를 어깨에 걸친 사계절은 자신이 즐겨 찾는 장소로 향했다.

발길을 옮긴 곳은 초록색 풀밭과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한적한 곳이었다.

사계절은 과거 그 곳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작(大作)을 건졌다.

, 그리고 겨울 때였다.

대작을 탄생시킨 배경은 거의 엇비슷했다.

단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이 채색한 풍광이 다룰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계절이 같은 장소에서 연거푸 2 번의 대작을 연출한 것은  작가의 뛰어난 안목과 순발력 때문 였다.

,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피사체를 단순한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것의 속성인내재하는 세계를 빛(필름)으로 담아내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사계절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사진을 뜻하는포토그래피(Photography)’는 그리스의 어원에서 비롯됐다. 빛이란 뜻의 “Photos”와 그림이라는 “Grapho”가 조합된 합성어다. 뜻 말의 표현처럼 사진은빛의 예술이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단순히 사물을 인식하고 필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빛을 분석해 사물의 비밀을 알아내고 형상화 하는 것이 나의 주된 목적이다."

사계절은 사진 예술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려 승화 시키는데 그 누구보다 자부심을 지닌 프로페셔널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도착한 사계절은 우선 흑백 필름을 감은 카메라로 정면을 응시하며 셔터를 눌렀다.

셔터를 누르는 한 순간 순간마다 오로지 최고의 것만을 렌즈에 담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화가가 붓으로 불멸의 색을 입히 듯 자신도 빛으로 사물을 필사(筆寫)하겠다고 대뇌였다.

 

사계절은 신들린 사람처럼 아날로그 식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연거푸 바꿔가며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들을 줌 안으로 끌어들여 이를 채화 한 뒤 행위를 반복했다.

특히 흑백 필름이 감긴 수동식 카메라는 신중을 가해 조리개를 작동해 나갔다.

사실(피사체)을 곧 잘 왜곡하는 흑백 필름은 컬러 필름과 비교해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속성을 지녔다.

여느 사진 작가보다 흑백 필름을 잘 다루는 사계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 듯 그렇게 흑백필름 촬영에 몰입했다.

 

사계절이 혼신을 다해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필사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대략 백여 미터 떨어진 정면에서 남녀가 서로 부둥켜 끌어안고 뜨겁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방금 소나무 숲에서 나 온 커플이었다.

우연히 남녀의 애정 행위를 망원 렌즈에 포착한 사계절은이게 웬 떡이냐하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아날로그 카메라의 망원렌즈 파인더는 두 남녀의 윤곽을 또렷하게 포착해 카피 했다.

작품 화를 염두에 두고 수동으로 천천히 셔터의 속도를 조절하며 피사체를 담았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한 뒤에는 곧바로 디지털 카메라로 연속 촬영을 했다.

혹여 아날로그 카메라가 놓칠 수도 있는 순간 포착을 담기 위해서 였다.

카메라 뿐만 아니라 비디오 녹화기도 들이대 두 남녀의 뜨거운 몸부림을 영사(影寫) 했다.

 

아날로그 망원 렌즈에 투영된 남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여자는 무비스타를 빰 칠 정도로 수려했다.

날렵한 몸매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도 매력적이었다.

여자는 청바지에 흰색 티를 걸치고 있었다.

특히 청바지가 터져나갈 듯 부풀어 오른 선정적인 엉덩이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신발은 캐주얼 운동화였다.

여자는 섹시 했고 한편으론 세련미가 넘쳤다.

여자와 입술을 끊임없이 훔치고 있는 사내도 미남형이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길 그런 외모였다.

나이는 대략 50 후반대로 추정됐다.

숱이 많은 흑발(黑髮)에 훤칠한 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서 지성미가 엿보였다.

사내는 카키색 정장 차림이었다.

노 넥타이에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겉옷에 받쳐 입은 사내도 나이키를 신고 있었다.

 

사내와 여자는 혀를 입 안에 밀어 넣고 딥 키스를 즐겼다.

또 한 상대를 껴안은 손은 한시도 쉬지 않고 등과 허리, 엉덩이를 애무했다.

한 몸이 된 이들 곁으로 행락객들이 두 문 두 문 스쳐 지났으나 남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오래된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직 뜨거운 열정만 분출할 뿐이었다.

사계절은 카메라로 이들의 고혹 스런 애정 행위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파인더로 이끌었다.

 

남녀가 그렇게 10분 여 동안 뜨거운 애정을 발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느닷없이 사내의 허리가 뒤로 꺾이면서 잔디에 널브러졌다.

사내가 썩은 볏 집단처럼 벌러 덩 고꾸라지자 화들짝 놀란 여자가 기겁을 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잔디에 널브러진 사내는 고통스런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사계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망원 렌즈를 통해 목격하며 섬뜩함을 느꼈다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 심을 되찾고 카메라 망원 렌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전개되고 있는 모든 과정을 파인더에 담았다.

사계절은 카메라와 비디오 기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속으로 되 뇌였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사계절은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르며 망원렌즈를 통해 널브러진 사내와 여자를 번갈아 주시했다.

놀라 기겁하며 달아난 여자는 먼발치서 사내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쓰러진 사내는 조금 전과는 달리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망원 렌즈에 클로즈업 된 사내의 얼굴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먼발치서 얼굴을 감싸 쥐고 안절부절 하던 여자가 냉정을 되찾은 것일까?

조심스레 걸음을 한걸음씩 앞으로 내디디며 사내에게 다가섰다.

사내 곁에 다다른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남자를 들여다 보았다.

여자는 그러고는 두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동시에 여자가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남자의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상반신이 들린 남자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총알이 관통한 등에서 였다.

축 늘어진 남자의 상반신과 함께 고개도 옆으로 획 젖혀졌다.

고개 뿐만이 아니었다.

두 팔도 맥없이 축 늘어졌다.

주검이 깃든 사내의 모습을 살핀 여자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두려움을 느낀 여자가 사시나무 떨 듯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린 여자는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고통스런 모습을 보였다.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 여자는 끝내는 정신을 수습하고 핸드백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연결했다.

사계절은 여자의 일 거수 일 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흑백 필름과 디지털 비디오에 담았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경찰이 도착하자 카메라 장비를 챙겨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났다.

그날 9

TV 조선 뉴스를 시청하던 사계절의 눈 빛이 반짝였다.

다름아닌 뉴스 앵커가 침을 튀기며 한 말 때문 였다.

내용은 이랬다.

오늘 오후 3시께 남산 순환도로 외곽에 위치한 소나무 공원에서 신원이 공개 되지 않은 50대 남성(54)이 피살됐습니다. 피살된 남성은 이 날 내연관계인 우 모씨( 42)와 소나무 공원에 밀회를 즐기던 중 정체불명의 범인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사건이 벌어진 소나무 공원에는 목격자가 단 한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수사당국이 초동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건 관할 경찰서는 신원 미상의 살인범 수배 전단을 긴급히 배포하고 시민들의 제보를 당부했습니다.”

TV 뉴스는 피살된 남성의 사진을 캡쳐 화면으로 공개했다.

피살된 남성은 오늘 오후 남산 소나무 공원에서 필름에 담은 바로 그 사내였다.

피살자의 얼굴 자료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 본 사계절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사진 작업장으로 향했다.

작업장은 거실 한 켠에 위치한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암실(暗室)이었다.

암실에 들어선 사계절은 조명을 조도가 낮은 빨강색 조명으로 바꾸고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흑백 필름을 뽑아냈다.

카메라에서 분리한 흑백 필름은 릴에 감아 현상액이 담긴 스테인리스 탱크에 담갔다.

그러고는 필름에 필사된 음화상(陰畵像)의 윤곽이 뚜렷하도록 착생제를 사용했다.

사계절은 필름을 현상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모든 신경을 필름에만 집중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서 둘도 없는 특종을 낚았다 해도 필름 현상작업이 제대로 병행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때문에 사계절은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온 정성을 기울여 필름 현상에 몰두 하고 있었다.

수세, 즉 필름에 묻어 있는 화학물질을 30여 분간 물을 흘려내 닦아 낸 사계절은 건조를 하기 위해 나무 집게로 필름을 잡아 줄에 걸었다.

사계절은 나무 집게에 매달린 필름이 뒤틀리기 시작하자 끝자락에 무게 추를 달아 직선이 되게 한 후 주방으로 향했다.

필름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릴 요량이었다

2시간

완벽하게 드라이가 된 필름을 세밀하게 살핀 사계절은 인화지에 사진을 현상했다.

소나무 공원에서 필사한 남녀의 다양한 모습이었다.

디지털 카메라에 담은 천연색 컬러 사진도 걸러냈다.

사진 크기는 8X8 사이즈와 11X11 그리고 18X18 사이즈 세 종류였다.

사계절은 현상된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을 거실 한 켠에 설치한 화이트 보드에 클립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사진의 면면을 꼼꼼히 살폈다.

사진에 시선을 박고 있는 사계절의 입에서 엷은 신음이 세어 나왔다.

스틸 사진의 다양한 포즈가 마치 드릴러 영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