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1,255,515

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4) 삿포로 殺人事件

2022.03.22 12:08

이산해 조회 수:171

17

반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은 배불뚝이와 후배 형사는 ‘결정적 제보’ 라는 귀띔에 헐레벌떡 강력계로 달려왔다.

창문을 스파이 유리로 위장한 강력계 취조실에는 젊은 남성이 초조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꽁지 머리에 검은색 뿔 테 안경을 쓴 사내는 얼굴이 주근깨 투성이었다.

간간히 손톱을 물어 뜯고 있던 사내는 임산부처럼 배가 튀어나온 사내가 휘적휘적 팔을 휘저으며 다가서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배불뚝이의 뒤에는 후배 형사가 뒤따랐다.

주근깨 에게 다가선 배불뚝이가 퉁명스레 말했다.

“자네가 미야지마 요시후미야?”

주근깨가 뻘쯤 한 표정으로 답했다.

,접니다.”

배불뚝이가 덧붙였다.

“자네가 저지른 행위는 중 범죄야. 여자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 말야!”

순간 놀란 토끼 눈을 한 주근깨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징징거렸다.

형사님.왜 이러세요.제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것에 대해서는 반장님이 죄를 묻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셨잖아요.”

배불뚝이가 후배 형사를 흘끔 곁눈질 했다.

팔짱을 낀 채 주근깨를 내려다보고 있던 후배 형사가 말했다. 

“설령 그렇다 해서 모든 것이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냐. 하지만 자네가 결정적인 제보를 한 공이 크니까 몰래 카메라 설치는 없던 것으로 하겠어.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가 가져온 동영상을 보자고.”

겁에 질린 주근깨가 몰래 카메라 설치 죄는 묻지 않겠다는 형사의 말에 안도한 듯 재빨리 몰래 카메라의 내용을 재생했다.

취조실 모니터에 클로즈업된 영상은 주근깨가 앞서 재생한 내용 그대로다.

취조실에 설치한 TV모니터에는 범인의 일 거수 일 투족 만 재생됐다.

이유는 주걱턱이 몰래 카메라에 녹화된 난잡한 영상들은 모두 지우고 문제의 장면만 재 편집했기 때문 였다.

 

취조실에 함께 한 경찰서장과 과장,그리고 반장과 배불뚝이, 후배 형사는 동영상을 바라보며 마냥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괴한의 이목구비가 뚜렷했기 때문 였다.

모니터에 클로즈업된 범인은 놀랍게도 절색이었다.

몸매도 빼어났다.

범인의 윤곽을 살피는 모두가 탄성을 자아낼 뿐이었다.

특히 경찰서장은 연거푸 입맛을 다시며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동영상을 서너 차례 되풀이 해 들여다 본 배불뚝이는 반장에게 당장 범인의 포스터를 제작해 일본 전역에 배포할 것을 요구한 뒤 취조실을 빠져 나왔다.

배불뚝이와 후배 형사가 취조실을 벗어날 즈음 뒤통수에 큰 소리가 부딪혔다.

형사님! 2억엔은 언제 주실 거죠?”

배불뚝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 것은 자네 곁에 계시는 서장 님에게 여쭤봐!”

 

배불뚝이와 후배 형사는 비상계단을 통해 2층에 자리한 기자실로 향했다.

배불뚝이와 후배 형사가 기자실에서 들어서자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던 삿포로 로컬 신문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형사에게 집중됐다.

상대의 바둑 패를 받아 치고 있던 곱슬머리 기자가 고개를 치켜들고 아는 채를 했다.

여어, 형사 나리. 무슨 바람이 불어 기자실에 행차를 다하시고요?”

배불뚝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가와 가쓰미 기자. 나 좀 봐.”

느닷없이 기자실을 찾은 배불뚝이가 자신을 가리키며 보자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곱슬머리는 손에 쥔 바둑돌을 내려놓고 형사의 뒤를 따랐다.

기자실의 모든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자리를 옮겨 경찰서 인근에 위치한 작은 찻집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배불뚝이가 말했다.

“오가와 가쓰미 기자. 자네 말이지 오늘 로또에 당첨 됐어.”

배불뚝이의 뜬금없는 말을 의아해 한 곱슬머리가 두 눈을 치켜 뜨며 말했다.

“강력계 배테랑 형사님이 기자실을 찾은 것도 신기하고 더군다나 나에게 차 대접까지 하시니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곱슬머리가 계속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후배 형사가 끼어들었다.

“선배님 말씀대로 특종 감을 드리려고요. 다름아니라 이와무라 미치토시 살인사건과 관련된….”

곱슬머리가 상체를 들썩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요?”

후배 형사가 덧붙였다.

“우리가 범인의 윤곽을 확보했어요.”

“뭐라구? 그게 사실입니까?”

“물론이네.”

배불뚝이가 기자를 곁눈질 하며 단호히 말했다.

“어떤 결정적인 물증을 잡으신 겁니까?”

팔짱을 낀 배불뚝이가 말했다.

“범인의 얼굴과 살인에 사용한 물증을 찾아냈어.”

배불뚝이는 그러고는 자신의 스마트 폰에 캡처한 범인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순간 스마트 폰을 들여보고 있던 곱슬머리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 여자가 범인이라구요?”

그래요.”

후배 형사가 끼어들었다.

맙소사! 믿을 수 가 없군요.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범인 이라니.”

기자가 스마트 폰에서 눈길을 떼지 않자 배불뚝이가 전화기를 거두며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설마 했어. 헌데, 사실이더군.”

기자가 말했다.

형사님. 그래서 뭡니까? 다른 기자들은 따돌리고 저를 따로 불러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배불뚝이가 흐트러진 자세를 고추 세우며 입술을 움직였다.

오가와 가쓰미 기자가 유능하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터. 때문에 내일 조간신문에 멋진 문장으로 특종 기사를 써 주시게. 물론 캡처한 사진도 대문짝만하게 개제하고 말일세. 특히 사진은 이왕이면 컬러로 부탁하네.”

눈치가 빠른 기자가 서슴없이 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주문대로 해드리겠습니다!”

18

다음날 아침.

오가와 가쓰미 기자의 바이라인(기명)이 달린 특종 보도가 사진을 곁들여 대문짝만하게 1면을 장식했다.

3단 크기의 스트레이트 기사와 5단 크기에 박스 기사가 곁들어진 이와무라 미치토시 살인사건 특종기사는 순식간에 일본 전역을 휘돌아 쳤다.

조간 신문이 배포되자 뒤 늦게 특종을 접한 여타 언론사 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삿포로 경찰서장에게 항의했다.

이들은 자신들 역시 엄연히 삿포로 경찰서 출입 기자임에도 따돌리고 특정 로컬 신문에게 만 특종을 줘 물을 먹였다는 이유였다.

아무튼 기사가 나가자 삿포로 경찰서 교환 안내는 북새통으로 변했다.

1초가 멀다 하고 제보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제보 전화의 대부분은 자신이 신문에 게재 된 범인을 목격 했다는 카더라 설이었다.

간혹 신빙성이 넘치는 제보에 대해서는 배불뚝이가 꼬치꼬치 캐 물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였다.

제보가 폭주하는 이유는 단지 2억엔이라는 거액의 현상금 때문 였다.

 

이처럼 신빙성이 낮은 제보가 넘쳐나는 가운데 뜻밖에 제보 전화가 배불뚝이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퍼시픽 호텔 프론트 데스크 담당 호스트 예요.”

쟁반 크기만한 두 개의 닐 테 잎을 좌우에 걸어 놓은 AKG 녹음기를 틀어놓고 제보자의 전화를 받고 있는 배불뚝이가 말했다.

말씀하세요.”

호스트가 말했다.

신문에 난 사진 속 여자가 저의 호텔에 묶었어요.”

뭐라고 요? 그게 정말이요?”

배불뚝이가 화들짝 놀란 투로 말했다.

“물론이 예요.이 여자가 67일 동안 스위트 룸에서 지냈어요.늘 웃음을 잃지 않고 품행이 단정했죠.”

“그건 그렇고….범인은 어디서 왔습니까? 신분증을 받았을 텐데.”

호스트가 말했다.

“잠시만요.컴퓨터를 확인해보죠.”

“……?”

“아….. 여기 있네요.그 여자는 한국에서 왔어요. 카피한 여권에 사진과 주소가 있어요.”

호스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배불뚝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봐, 아가씨. 내가 도착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어요.알았지!”

 

이와무라 미치토시 살해사건 수사는 급 물살을 탔다.

호텔에서 여권을 확보한 배불뚝이는 반장에게 서울 출장 품위 서를 올렸다.

범인의 거주지 주소가 서울 이었기 때문 였다.

뿐만 아니라 범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확인한 터여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배불뚝이의 서울 출장을 건의 받은 반장 역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과장에게 구두로 보고서를 올리고 결제를 재촉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쿄 정계로부터 신속한 범인 검거 채근에 시달리고 있는 과장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재량권을 발휘해 출장 결제를 승인했다.

그러고는 반장에게 법인 카드를 건네며 신속히 범인을 산채로 데려오라는 오더를 내렸다.

출장 승인이 떨어지자 배불뚝이는 그 자리에서 컴퓨터에 접속해 삿포로 발 서울행 JAL기 비행기 표 두 장을 예매했다.

후배 형사와 함께 동행 하기로 한 것이다.

19

동서남북 신문 정치부 기자인 연정음은 국회 기자실에 배달된 요미우리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 1면에는 놀랍게도 자신의 연인인 여명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깜짝 놀란 연청음은 3단 크기의 속보 기사를 단숨에 읽어 내렸다.

기사를 완독한 연청음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고 있었다.

연청음은 기사를 카피한 뒤 기자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허리에 찬 삼성 갤럭시 스마트 폰을 꺼내 전화 앱을 열고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3번째 발신음과 함께 상대의 목소리가 연결됐다.

연청음이 말했다.

“허니.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그대 모습이 실렸 더군.”

상대가 말했다.

“알고 있어요. 외신 뉴스에서 보았죠.”

“상황이 좋지 않은데….”

“괜찮아요.두렵지 않다 구요.저의 신분이 드러난 이상 일본 경찰도 발빠르게 움직이겠죠. 인터폴을 통해서도 이미 서울 경찰청에 수사 협조가 들어왔을 거고요.따라서 조용히 기다릴 수 밖에 없어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거야?”

제가 일본 경찰과 서울에서 부딪힌다 해도 국제법상 지들 맘대로 할 수 없어요.저를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많은 시간도 필요하겠죠. 따라서 제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서울에서 재판을 받을 수도 있고 삿포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어요. , 제가 스스로 삿포로 행을 택한다면, 인신구속 만큼은 피해야 하겠죠. 즉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딜을 할거예요. 물론 저의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순전히 일본측 몫이 예요.”

허니. 그같은 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희박할거예요.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어요.

기자가 말했다.

“어쩌면 삿포로 경찰이 서울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지.그댈 연행하려고. 해서 말인데. 내 동창 가운데 유능한 변호사가 여러 명 있거든. 내일 당장 그들을 선임하지. 두 명 정도면 그댈 무사하게 보호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연청음이 덧붙였다.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어. 그댄 일당백(一當百)이니까!”

여명이 말했다.

저는 단지 인간 쓰레기를 청소 했을 뿐이 예요.”

두 남녀는 이날 밤 사내의 자택에서 동이 틀때까지 서로를 탐하며 뜨거운 물을 퍼 올렸다.

20

늦은 밤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한 배불뚝이와 후배 형사, 그리고 이들과 동행한 국제법 소송 변호사는 서울 청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서울 경찰청을 방문해 자신들의 임무를 알렸다.

배불뚝이로부터 방문을 예고 받은 경찰청도 이들 일본 출신 형사와 변호사를 정중히 대접하고 사건 개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 했다.

경찰청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배불뚝이는 통역을 통해 자신의목적을 단호히 피력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가 협약한 국제범죄인도조약법에 따라 범인을 당장 인도받길 원하오.”

하지만 자리에 배석한 여명의 변호인단은 배불뚝이의 요구를 배척했다.”

사건이 비록 삿포로에서 일어나긴 했으나, 대한민국 국내법상 피의자 인도는 가당치도 않습니다.여명씨는 당연히 서울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인 통역에게 상대의 견해를 귀 담은 일본측 변호사가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리며 거만스레 말했다.

물론 귀측의 논리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그렇다 해서 국가간의 협약을 무시할 수는 없겠죠.비록 범인의 몸이 서울에 있으나 그가 살인자로 확연히 드러난 이상 국제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지난 2009년 김대중 정부와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가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은 결코 똥폼으로 맺은 것이 아니 예요.때문에 우리 일본측 사법당국은 살인범을 당연히 이첩 받아야 하고 당신네 한국 경찰도 협조해야 마땅합니다. 덧붙여 범인 송환은 수일 내에 실천돼야 할 것입니다.”

 

일본측 변호사의 단호한 입장을 바라보는 여명측 변호인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대가 주장한 요구가 지나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 였다.

한일 양측의 견해가 팽팽하게 평행선을 그리며 합의를 돌출 시키지 못하자 여명측 변호인단은 배불뚝이에게 이틀 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역을 통해 상대의 뜻을 전달 받은 배불뚝이는 곁에 앉은 일본인 변호사와 한동안 귀엣말을 주고 받은 뒤 정색한 어투로 말했다.

좋소. 귀측이 시간을 요구하니 이틀 정도는 기다리죠. 하지만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소.귀하들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왔소.따라서 딱, 이틀 드리겠습니다.”

통역이 배불뚝이의 몸짓까지 흉내 내며 통역을 하자 합석한 한국측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장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들의 숙식은 저희 경찰청에서 책임지겠습니다. 이 곳에서 머무시는 동안 마음 편히 지내십시요.”

통역이 동시통역을 하자 배불뚝이 일행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