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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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2) 삿포로 殺人事件

2022.03.22 12:12

이산해 조회 수:170

7

삿포로 경찰서 강력계 소속 배불뚝이 형사는 후배 형사와 함께 과학수사연구소 감식 팀이 확보한 증거(탄파)CCTV를 모니터 하기 위해 연구소로 향했다.

도요히라구(豊平區)에 위치한 삿포로과학수사연구소는 삿포로 시에서 1시간 거리였다.

교통 체증으로 예상 시간보다 30여 분 늦게 연구소에 도착한 배불뚝이와 후배 형사는 건물 3층에 자리한 디지털분석실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갔다.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분석 실에 들어서자 배불뚝이를 알아 본 감식 계 요원이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요원에게 다가선 배불뚝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건진 것이 있소?”

요원이 말했다.

탄피를 분석한 결과 9밀리 파라블럼 총알이었습니다.

“피살자의 머리가 거의 부서져 분간이 싶지 않을 정도였는데. 사인은?”

요원이 말했다.

“부검 실의 결과에 따르면 총알이 뒷머리를 관통한 뒤 회전을 하면서 뇌 속의 신경조직을 모두 찢어 놓았답니다.따라서 과다 출혈에 의한 심장마비 쇼크로 밝혀졌습니다.”

배불뚝이가 말했다.

“CCTV 영상 결과는 어찌됐소?”  

요원이 기다렸다는 듯 CCTV에서 녹화 한 영상을 32인치 LG 듀얼 모니터에 재생하며 말했다.

당장 확증할 수 있는 단서는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심증이 가는 인물을 포착하기는 했습니다. 우선 보시죠.”

요원은 그러고는 능숙한 손 놀림으로 12체널 디지털 리코딩 콘솔을 조작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사건 당일 날짜와 시간이 막대에 초단위로 스크롤 되고 있었다.

CCTV의 화질은 매우 선명했다.

4K 디지털이었기 때문 였다.

흉상 주변의 피사체를 확대하자 노인과 손녀가 담소(談笑)하는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그리고 다음 컷에는 기모노 차림의 여고생 5명이 깔깔거리며 흉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요원은 이 장면을 되돌리기로 조작한 뒤 슬로우모션으로 재생했다.

일본식 게타(나막신)를 신은 5명의 기모노들이 천천히 흉상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정체불명의 인물이 이들 곁에 바짝 붙었다.

 

모니터에 재생된 괴한의 안면은 전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었다.

검정색 양키스 야구 모자에 짙은 검정색 선글라스와 검정색 위생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는 대략 175센티미터로 추정됐다.

괴한은 위아래에 나이키 제품인 검정색 추리닝 복을 걸치고 있었다.

신발은 나이키 상표가 선명하게 드러난 검정색 런닝화였다..

왼쪽 어깨에는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테니스 숄더백을 걸쳤다.

배불뚝이는 요원에게 괴한의 앞모습을 최대한 확대해 보라고 말했다.

요원은 배불뚝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요원이 화질의 픽셀이 최대치로 근접할 때가지 상체의 모습을 확대했다.

모니터에 비춰진 상체의 좌우가 불거져 도드라졌다.

직감적으로 여자의 젖가슴이라고 판단한 배불뚝이가 입맛을 다셨다.

그가 말했다.

“빌어먹을! 어느 년인지 대단한 심장이구먼. 허연 대낮에,그것도 인파가 득실대는 공원에서 태연자약하게 방아쇠를 당기다니…..”

곁에 선 후배 형사도 동감 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불뚝이가 말했다.

“다음 장면도 봅시다.”

모니터 화면에는 손녀가 두 팔로 노인을 부둥켜 안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곁으로 5명의 기모노가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노인이 썩은 볏단이 쓸어지 듯 흉상을 향해 널브러졌다.

모니터에 잡힌 시간은 불과 2초였다.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박고 있던 배불뚝이가 소리쳤다.

방금 장면을 천천히 되돌려 봅시다.’

요원이 민첩한 손놀림으로 초 단위의 장면을 스크롤 하자 화면을 노려보고 있던 배불뚝이가 갑자기 스톱!’을 외쳤다.

정지화면에는 기모노 뒤에 바짝 붙은 괴한이 테니스 숄더백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두 손을 뻗었다.

동시에 총성이 터졌다.

노인이 널브러졌고, 기모노들도 혼비백산 하며 순식간에 흩어졌다.

주변의 행락객들 역시 우왕좌왕하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같은 와중에 괴한은 약 2초 동안 허리를 숙이고 무엇 인가를 살피다 이내 달려 나갔다.

흉상 주변은 아수라 장으로 돌변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널브러진 노인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손녀 딸과 주검을 스마트 폰에 담는 몇몇 사내들의 모습이 재생됐다.

화면을 노려보고 있던 배불뚝이가 요원에게 괴한이 모습을 드러낸 장면부터 사라지기 직전의 장면을 다시 한번 재생해 줄 것을 주문했다.

배불뚝이는 무려 3차례에 걸쳐 CCTV의 동영상을 모니터 했다.

특히 나이키 추리닝의 요모조모를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배불뚝이는 나이키 추리닝이 확신범이라고 심증을 굳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탐문 수사의 방향을 다각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살인에 사용한 총의 출처와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감식 계 요원이 말했다.

형사님이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형국이 되겠군요.

배불뚝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빌어먹을! 범인들과 지루한 숨바꼭질이 어디 한두 번인가?

감식 계요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

삿포로 발 서울행 대한항공 보잉 747 점보 제트 여객기가 이륙 램프에 대기하고 있었다.

코로나 19 여파로 여객기의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524명의 승객을 수용하는 좌석은 썰렁한 상태였다.

때문인지 스튜어디스 등 비행승무원들은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며 이륙을 기다렸다.

승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비지니스석도 한가롭 긴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서울에서 공수해 온 조간신문을 읽거나 옆 사람과 소근거리며 잡담을 주고 받았다.

비지니스석에는 눈에 확 띨 정도로 미모의 여성도 자리했다.

혼자였다.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청바지에 체크무늬 긴 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릎에는 노스 페이스 다운 재킷이 놓여 있었다. 

생머리는 어깨에 닿았다.

얼굴은 화장기가 거의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창 밖을 내다보는 눈 빛이 고요한 호수처럼 평온해 보였다.

9

노인 살해사건 담당 형사인 배불뚝이는 강력계 소속 후배 형사 도기하라 겐지(土肥原 賢二)와 함께 탐문 수사에 착수했다.

배불뚝이는 한편으론 강력계 반장에게 경찰 조직을 총동원해 범인 색출에 나서줄 것을 요구 했다.

계장도 사안의 심각성을 우려해 상급자인 과장에게 경찰력 지원이 절실하다고 읍소했다.

형사계 책임자의 브리핑을 귀담은 서장 역시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그러고는 살해 당한 노인이 삿포로 지역 내 유명 인사라는 것을 중시,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배불뚝이는 후배 형사와 우선 탄피의 출처부터 파고들었다.

삿포로 관내는 물론 더 나아가 홋카이도 전역의 야쿠자 조직과 총기 밀매 암거래 조직에 대해 탐문 수사를 폈다.

 

배불뚝이가 탐문 수사의 첫번째 타깃으로 삼은 상대는 홋카이도 최대 야쿠자 조직인 스미요시카이(住吉會)보스 이노우에 구니오(井上邦雄)였다.

1,500여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이노우에 구니오는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山口粗)에서 2인자로 군림하다 홋카이도로 건너와 새 조직을 거느린 인물이었다.

잔인하기로 정평이 난 이노우에 구니오는 싸움 뿐만 아니라 이재(理財)에도 밝아 해외에 돈을 투자하는 상술을 구사했다.

다름아닌 미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리틀 도쿄에 건설회사와 어패류 유통회사를 차려 비자금을 관리했던 것.

그러나 미 재무부가 이들의 불법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경제재재조치를 단행하며 자산동결을 취했다.

이로 인해 이노우에 구니오는 수천만 달러의 비자금을 고스란히 날리는 낭패를 겪고 있는 터였다.

이노우에 구니오는 수많은 조직원을 거느리며 관내에서 건설업을 비롯한 파친코와 룸살롱, 보도방(구인 구직),그리고 마약 유통 및 무기 암거래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불뚝이가 스미요시카이 조직을 눈 여겨 본 이유는 두목이 각종의 무기를 암거래 하고 있기 때문 였다.

암거래되는 총기들은 주로 미군주둔기지인 오키나와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배불뚝이는 후배 형사와 함께 경찰용 토요타 승용차를 몰고 삿포로 시 내 10대 행정구역의 하나인 시로이시구(白石區)로 향했다.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낮게 드리운 잿빛 구름이 방금 이라도 폭설을 뿌릴 기세였다.

삿포로 경찰서를 떠 난지 40여 분만에 이와미자와 램프에 들어선 두 형사는 서행 운전을 하며 이노우에 구니오가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로 다가갔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 폰 화면에 뜬 구글 지도가 화살 표식을 이리저리 가리키다 끝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구글 맵이 안내한 곳은 거대한 저택 앞이었다.

육중한 철 대문이 버티고 선 저택은 3층 규모로 붉은색 벽돌과 화강암 돌을 마감재로 활용해 외부를 치장했다.

토요타에서 내린 두 형사는 입구로 다가가 화강암 기둥에 부착된 방범카메라에 얼굴을 디밀었다.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녀린 여자의 음성이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배불뚝이가 말했다.

경찰입니다.”

경찰이란 선입견 때문인지 상대가 침묵했다.

그러고는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누군가와 말을 주고 받았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어느 서()에서 나오셨죠? 그리고 성함이 어찌되시죠…..”

삿포로 경찰서 강력계 형사 사토 마사히로(佐藏正浩).그리고 후배 형사와 함께 있소

배불뚝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여자가 다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수십 초가 흐른 뒤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육중한 철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두 형사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감색 원피스 차림에 흰색 앞치마를 두른 여자는 허리를 90도로 꺾고 예를 차린 뒤 곧바로 뒤를 보이며 앞장서 걸었다.

여자의 안내를 받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갈색 목욕가운을 걸친 육중한 체구의 사내가 현관에서 두 형사를 맞았다.

모발이 풍성한 사내는 시커먼 구레나룻을 깔끔하게 다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구레나룻이 배불뚝이 형사를 반갑게 맞이하며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이요.베테랑 형사.우리가 이렇게 만나지 얼마 만인가?”

배불뚝이가 말했다.

“5? 아니, 6년만인가…..”

구레나룻이 요란을 떨며 말했다.

아무튼 두 분은 어여 안으로 들어 오시오.”

구레나룻의 안내를 받은 두 형사는 넓 직한 거실로 안내됐다.

주방에서 차()를 내왔고 세 사람은 잠시 차를 마시느라 침묵했다.

차를 홀짝이고 있던 구레나룻이 배불뚝이를 곁눈질 하며 넌지시 물었다.

공사다망하신 형사님께서 나를 찾은 이유는 한가롭게 차나마시자는 것은 아닐 것이고…..”

배불뚝이가 탁자에 찻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역시 예리하시구먼요. 그렇소.내가 보스를 찾아온 이유는 이렇 소.내 관할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터졌어요. 피살자가 매우 유명한 정치인이오.”

구레나룻이 배불뚝이의 말을 가로챘다.

뉴스를 통해 그 사건을 접했소.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요. 나도 그 양반과 오랫동안 인맥을 맺고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가다니…..”

배불뚝이가 말했다.

보스가 망자(亡者)와 아는 사이라니 새삼스럽구려. 그건 그렇고.킬러가 사용한 무기가 다름아닌 자동권총으로 밝혀 졌소.글록 또는 베레타 종류로 추정되는 데. 범인과 함께 총도 오리무중이오.현재 관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 사건에는 자동 권총 사용이 빈번합니다.물론 총기의 출처도 불분명하고.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범죄에 이용되는 총기의 상당수가 스미요사카이,즉 보스의 조직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 정설이오.”

이노우에 구니오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러고는 배불뚝이를 노려보며 큰소리를 내뱉었다.

빠가! 말도 안되는 소리 집어 쳐! 당신이 5년 전에도 나한테 똑같은 소릴 하더니 오래 만에 만난 자리에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모함이라니….형사양반도 알다시피 나는 이제 폭력과는 단절 했어. 떳떳하게 세금을 내는 정당한 사업에만 전력투구하고 있다고.총기 거래는 아주 먼 옛날 이야기 일 뿐이야.”

 

배불뚝이 곁에서 두 사람의 언쟁을 귀담고 있던 신출내기 형사 후자사와 슈헤이(臟澤周平)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조폭 두목. 감히 어느 앞 전에 대고 큰 소리야.경찰이 질문하면 공손하게 대답을 해야지.조폭 부하 다루듯 마구 씨부리다니!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냐?”

순간,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이노우에 구니오가 벌떡 일어나 발꿈치로 신출내기의 면상을 걷어찼다.

턱을 얻어맞은 신출내기의 고개가 뒤로 획 젖어졌다.

곁에서 난장판을 지켜 보던 배불뚝이가 황급히 일어나 야쿠자 두목의 어깨를 밀치며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후배 형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 지금 뭐하는 짓이야?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되지.”

배불뚝이가 후배를 노려보며 왼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상대의 속내를 알아차린 신출내기가 못이기는 채 분을 가라앉히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잡았다.

배불뚝이가 정색한 표정으로 이노우에 구니오를 향해 말했다.

보스. 이해하쇼. 아직 신출내기라서 세상물정에 어둡소.앞으로 많이 도와주시오. 그건 그렇고….범인이 사용한 권총의 출처가 스미요사카이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공급했을까? 혹시 감이 닿는 곳이 있다면 귀띔 좀 해주시오.” ”

구레나룻이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아는 것이 없어. 폭력과는 손을 씻었다니까! 사토 마사히로 형사가 나를 찾아 오느라 발 품을 파셨으니 빈손으로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닐 터. 확실하지는 않지만 귀띔은 해드리지. 대신 내가 말했다는 사실은 노코멘트야. 아시겠나?”

물론이오.”

구레나룻이 인상을 구기고 있는 신출내기를 흘끔 곁눈질 하며 말했다.

삿포로 시내에 자리한 야마자키(山崎)전당포에 가 보시게. 주인 놈이 과거 야마구치구미에서 행동대원으로 활동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 이젠 손을 씻고 마누라를 얻어 전당포를 하고 있는 데,내 부하들이 그러더군.그자가 총기를 밀거래 한다고…… , 확실한 건 아닐세. 단지 소문일 뿐.그저 참고하시게.”

여기까지 말을 쏟아낸 스미요사카이 야쿠자 두목 이노우에 구니오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뒤 그만 물러갈 것을 청했다.

두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야쿠자 두목의 아내가 다가왔다.

그리고 두툼한 촌지(寸志)봉투를 배불뚝이에게 건넸다.

구레나룻의 처신을 눈 여겨 본 신출내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배불뚝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배불뚝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야쿠자 아내가 건네는 2개의 봉투를 받아 들고 대저택을 벗어났다.

 

토요타에 올라 탄 배불뚝이가 구레나룻이 건넨 봉투를 열어 보았다.

봉투 속에는 상상을 초월한 거금이 현찰로 들어 있었다.

배불뚝이는 잔뜩 호기심을 부추기고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후배 형사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어떨 결에 봉투를 건네 받은 신출내기가 말했다.

이게 뭡니까?’

배불뚝이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먹어도 탈 날 것 없는 독약 이야.”

“……”

자넨 경찰에 몸담은 날짜가 적어 야쿠자 세계의 관례를 잘 모르겠지.조폭들이 경찰에게 뇌물을 건네는 것은 오랜 전통이네. 때문에 신경 쓰지 말고 생활에 보태 써!”

신출내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불뚝이는 토요타의 시동을 건 뒤 야쿠자 두목이 언급한 야마자키 전당포를 향해 내달렸다.  

10

일본 국가공안위원회가 노인 살해 범인 검거를 위해 무려 1억엔이라는파격적인 현상금을 내걸었다.  

언론을 통해 공안 위의 성명이 알려지자 삿포로 경찰서 안내 전화가 북새통으로 변했다.

홋카이도 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1억엔이라는 거금의 현상금을 노리고 제보 전화를 한 탓이었다.

하지만 제보의 대부분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카더라 수준이었다.

이같은 와중에 배불뚝이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을 오도리 공원 청소원이라고 밝힌 여성의 제보였다.

“범인이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검정색 나이키 테니스 가방을 발견했어요. 버리기 아까워서 집에 가져 갔죠. 가방 안에는 검정색 양키스 모자와 검정색 나이키 운동복 한 벌, 검정색 나이키 운동화와 검은색 장갑 그리고 검정색 선글라스가 들어 있었어요.”

청소원의 제보를 귀담고 있던 배불뚝이는 화들짝 놀란 투로 송수화기에 소리쳤다.

지금 전화하는 장소가 어디요? 그곳에서 꼼짝하지 말고 계세요.”

제보자가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밝히자 버튼 식 전화기를 황급히 내려놓은 배불뚝이는 후배 형사와 함께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11

일요일 아침.

여명은 이화여대 인근에 위치한 만국사랑교회에서 집전한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이 날 원로목사는 설교를 통해 시종일관 사랑‘을 설파했다.

목사는 회당을 가득 메운 5백여명의 신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대속과 함께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목사는 특히 너의 원수마저 사랑 하라‘는 대목을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다.

마음속의 증오를 걷어내고 원수 된 자 마저도 품었을 때 비로소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사의 설교 주제인 서로 사랑 하라‘를 경청하는 여명은 마음이 어두웠다.

불과 몇일 전 원수를 저격했기 때문이었다.

원수마저 보듬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 진 일이다.

천국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예배를 마친 여명은 교회 부속건물인 납골당으로 갔다.

조부모님과 아버지의 유골이 그곳에 안치돼 있었기 때문 였다.

유골함 앞에 무릎을 끓은 여명은 부모님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님. 이제 편히 쉬세요. 천국에 계신 당신들께서도 보셨을 거예요.제가 놈을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유골 앞에서 이렇게 속삭인 여명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쳤죠.그런대도 저는 예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놈을 제거했어요.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놈은 악마였어요.저는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인두겹을 한 악마를 없앤 거예요.그럼에도 예수님이 저를 탓하신다면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여명은 약 30여분 간 유골을 향해 속삭인 뒤 이내 작별 인사를 하고 납골당을 벗어났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하늘이 반짝이는 거울처럼 청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