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의 사랑

2009.03.21 13:50

백남규 조회 수:777 추천:102

                            
                                                                

  혜숙은 아침에 남편과  싸웠다. 어제 자정이 넘고 2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그 때까지 자지 않고 부엌의 식탁에 오두마니 앉아서 술에 취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냉랭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남편은 술에 취하여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더러운 토사물을 보듯이 그의 눈엔 경멸의 빛이 감돌았다.

결혼 12년차, 이제 지칠 때도 되었는데, 남편은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은 어김없이 부엌의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서 술을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돌부처마냥 그녀가 지쳐서 돌아 올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식당 웨이츄리스이다.  한인타운 구석의 일식집이 그녀의 일터이다.   주인이 손이 크고 음식 맛이 정갈하여 늘 손님이 많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키도  알맞게 크고 몸매도 날씬하다. 그녀를 보는 남자들은 다 입맛을 다신다. 짓궂은 사내들은 음흉한 시선으로 그녀의 젖가슴이며 엉덩이를 헤벌레 입을 벌리고 쳐다본다. 그녀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잘 안다. 자기를 보는 순간 남자들이 눈이 커지고 한순간 멍하게 되는 이유를. 그녀는 36살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여자로서의 매력이 한껏 성숙한 나이이다. 남자 맛도  알만큼 알고 섹스가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것도 물론 안다. 그리고 다행히 그녀는  뭇 남자들이 침을 질질 흘릴 만큼 섹시하다. 그녀는   몸매가 좋다. 젖무덤이 봉긋이 알맞게 솟아 ,잘 익은 사과 모양 얌전히 가슴에 붙어 있는 걸 샤워할 때  보고 있노라면 자기 자신도 감탄한다. 허리, 허벅지..로 내려오는 곡선은 완만하다가 엉덩이 부분에서부터 휘도는 선은 정말 보는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지 않을 수  없다.

  처녀때부터  혜숙은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쩌다가 지금 남편을  만나서 지금껏 살고 있다. 한국에서 혜숙은 다방 레지 였다. 남편은 그 때 한국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나왔다가 친구와 혜숙이 일하는 다방에 들어왔었다. 그녀를 처음 보자 마자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정신을 못차리는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녀를 처음 볼 때 그랬으므로 그녀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당시 그녀에겐 애인이라 부를만한 남자들이 주위에 서넛 있었다. 건축공사장 책임자인 영식과 다방 주인 동생인 김수영, 그리고 고등학교때부터 죽자 사자 나를 따라다니던 이재천, 그 중 건설회사 자재과장인 영식의 오토바이에 자주 올라탔었다. 그는 힘이 좋았다. 밤마다 나를 시뻘겋게 달구어주었었다. 그러다가 마침 지금 애아버지를 만나 “에라, 물 건너 한 번 가보자.”하고 태평양을 건넜던 것이다. 영화속에 보던 미국은 천국이었는데 막상 엘 에이 공항에 내려서 본 미국은 서울보다 초라해보였다. 마중 나온 사람과도 무엇이 어긋났는지 세 시간 넘어 기다려서야 겨우 만났다.

“어딜 그리 쏘다녀?” 화가 잔뜩난 목소리였다.
“쏘다니긴... 일하고 오는구만.” 술에 취하여 혀꼬부라진 소리로 나직하게 내뱉었다.

-병신 같은 놈, 배알도 없는 놈. 여편네 밤늦도록 일시켜먹고 대낮부터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겨 갖고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게 있는 게 내 남편이다.
  
미국에 오니 남편은 봉제공장에서 일을하고 있었다. 시집 식구 모두,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모두 ‘밟아라 삼천리’를 하고 있었다. 허연 실밥을 온 몸에 붙이고 얼굴이 허옇게 되어 퇴근하는 걸 보니 가엾다는 생각보다 속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오다가다 만난 친구가 건축일을 하고 있어서 하릴없이 공사장 인부가 되어 막일을 시작했었다. 남의 집 울타리나 뒷뜰 베란다를 만들거나,  미장원하던 집을 식당으로 개조하거나, 넓은 방을 칸막이 내어 두 방으로 만들어주기 -이런 일로 먹고 살았다. 그러던 중 남편은 달포전에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허리를 도통 쓰지 못하게 되었다. 밤일도 물론 못한다.
-으이구 병신..허리마저 다쳤으니 어디다 써먹을꼬.
-그러면서 사내라고 질투까지 한다면 나는 정말 못 살아. 요즘 세상에 병신 남편 수발하는 -멀쩡한 여편네가 어디 있다고. 감지 덕지 살것이지.

그녀는 사랑 때문에 울고 불고해 가며 끈적 끈적 치사하게 달라붙는 놈을 제일 싫어했다. 여자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뭔 말라빠진 사랑타령하며 ‘혜숙씨 없는 세상은 고무줄 없는 팬티와 같다.’ 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라 다니는 귀찮은 사내 자식은 정말 꼴보기싫다. 물론 치마만 두른 여자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고 덤벼드는 짐승같은 숫컷도 경멸스럽지만 당신은 나의 태양이요, 어쩌고  객쩍은 소리를 심각하게 중얼거리며 쫓아오는 놈도 정신 나간 놈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전부터 그녀가 다니는 식당에 오는 사내가 있는데 이자가 일주일을 거의 매일 드나들더니 어느날 그녀에게 쪽지를 하나 건네었다. ‘별 싱거운 놈이 다 있군.’ 하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 자가 그 날 일이 끝나고 어디서 기다리기로 한 모양이다. 다음날 문을 열자 마자 들어서더니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사람 우습게 보지 말라.’ 어쩌고 주절대더니 훌쩍거리는 게 아닌가. 아이구 남세스러워라. 뭔 이런 개뼉다귀 같은 놈이 있나, 그래 좀 달래서 보내고 오늘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남자는 식당에서와는 달리 점잖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한 잔 했는지 술술 말을 잘했다. 자기는 이혼 한 지 3년인데 여자구경을 해 본지 오래고 외로워서 미치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떡하란 말이냐. 나보고. 그냥 하루밤 자잔다. 돈은 없고  그래도 여자와 자고 싶으니 좀 봐달란다. 이거 완전히 미친 놈 아니냐. 얼굴이 거무데데하고 손이 큼지막한 남자는 소같은 눈을 끔벅끔벅했다. 그녀는 그래도 그 남자가 가여웠다. 여자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럴까 하는 보살같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그 날 그의 아파트에 가서 그와 잤다. 목마른 자에게 물한모금 주듯이. 배고픈 자에게 밥 한 그릇 보시하듯이. 나의 몸을 주었다. 기뻤다.  육에 굶주린  불쌍한 한 사내를 포식시켜주었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딱 한 번이다.

식당에서 혜숙을 찿는 남자는 많다. 왜냐하면 그녀는 섹시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불룩한 젖가슴과 가느다란 허리에 살결은 희고 윤이 났다. 그녀를 본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와 자고 싶어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이상한 매혹과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대책없이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매력이 그녀에겐 있었다. 섬세한 입술때문일까? 너를 안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게다가 남자가 순진하고 때묻지 않아 보이면 쉽게 잠자리를 같이 해준다는 소문이어서 문밖에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하루는 10시가 넘어 퇴근하려는데 식당 파킹랏에서 시커먼 남자가 튀어나왔다.
“미스김 나 좀 봐요.”.
“누구세요?”  “나, 이웃집 남자요.”
“어머 여기 왠 일이세요? ”
“민수엄마 기다렸지요.”
“왜 저를 기다려요.”
  “그냥요. 단둘이 만나고 싶어서요.”
“그래요? 왜지요?”
“한 번 하고 싶어요.”
박은 그녀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다. 일없이 그녀의 집앞을 왔다,갔다 하며혜숙을 보면 눈빛을 빛내곤 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혜숙이가 헤프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놈이다. 남편 친구라는 녀석이 버젓이 그녀에게 동침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침 저녁 문 열면 마주 보고 살면서 참으로 후안무치한 녀석이다. 이 놈아, 마누라에게나 잘 해 줘라.
아침,저녁 남의 문간을 힐끗거리며 침을 흘리는 박가같은 사내는 트럭으로 와도 어림없다.
-에라, 이 빌어먹을 놈아

혜숙은 어려서부터 남자가 주위에 들끓었다. 경상도 낙동강 상류에 자리잡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촌사람같지 않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살결이 희었다. 키도 날씬하고 콧날이 오뚝하고 눈이 서글서글한 모습이 꼭 혼혈아같았다. 엑조틱한 모습에 젖가슴이 빵빵하고 허리가 낭창하게 가늘다. 도도하게 걷는 모습은 한 마리 학이 날렵하게 나는 것 같았다. 남자들이 꼬이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남의 집 농사일을 하셨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허리 펼 사이 없이 밭일과 집안 일을 하였지만 고생하는 여자답지 않게 피부가 몹시 희었고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찿아 오는 거지에게 식은 밥덩이라도 꼭  주었다. 착하고 순박한 어머니는 혜숙이 때문에 속을 많이 끓으셨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의 군복을 빨아주고 다리미질 해 주어서 용돈을 벌어썼다. 성욕에 굶주린 군인들이 눈알이 싯뻘개져서 그녀를 어떻게 해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무서운 오빠가 그녀 곁에 있어서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무시로 드나드는 군인중에서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르는 군인을 오빠라 부르며 미친 듯이 사랑했었다. 그러나 휘영청 달 밝은 밤에 그 오빠는 혜숙에게 아이를 배게 하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편지 한 장 없었다. 혜숙은 그 후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남자로 인해 초라하게 되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묵직해지고 아파지는 그런 사랑은 이제 다시 할 것 같지 않았다. 사랑은 환상적이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배신은 그 환상을 깨뜨렸다.
  
집안이 가난하여 그녀는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돈을 벌고 싶었으나 인문고 졸업한 여자에게 취직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와 오빠 몰래 그녀는  읍내 다방에 취직했다. 그녀는 앳된 얼굴을 감추려고 화장을 짙게 하고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었었다. 담배도 그 때 다방언니에게 배웠다.  군부대에서 휴가나 외출을 나온 국군 장병아저씨의 굶주린 욕망을 해결해 주느라 온 몸이 피곤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즐겁고 후회없는 젊은 시절이었다. 남자에게 굴종적이기보다 자신이 이끌어가는 사랑놀이에 열중했기때문이다.

남편은 혜숙을 처음 보자 마자 미친 듯이 열중했다. 하루종일 다방구석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애인이 있다고 해도 오불관언. 너 아니면 나 죽는다식이었다. 무서운 정열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집착에 그녀는 질려버렸다. 그러나 남편은 보통 사람이었다. 혜숙이 결혼하면 애도 낳고 , 그럭 저럭 살다보면 평범한 아줌마가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처음에는 혜숙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 번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한 남자를 위하여 밥도 짓고 빨래도 하는 그런 생활, 언덕 위에 하얀 집이 그림 같진 않더라도 한 번  집을 짓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고향을 떠나 머나먼 미국까지 왔었다.
시부모 고생하는 걸 보고 이민 후 짐을 풀자마자, 근처 식당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를 닮아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있었다. 오손도손  살아보자고 입술을 물었다. 그러나 식당에 밥 먹으러 오는 남자들이 혜숙을 가만두지  않았다. 혜숙은 첫사랑이후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돌아서도 또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진지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고 위로가 되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남자는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여자인 줄은 남편이 몰랐을 뿐이었다.

결혼식후에도 미국에 오지 않겠다는 혜숙을 찿아서 경상도 그녀의 고향엘 가니 그녀는 외간남자 오토바이 뒤에서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어찌 어찌 그자와 결투까지 하고 간신히 데려온 아내가  보통여자와 같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언제나 아내에겐 외간 남자의 냄새가 뭉클뭉클 났다. 새파란 질투와 아내에 대한 불신으로 남편은 가슴이 썩어문드러졌다. 미칠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이야기 못하고 터질 듯이 가슴만 답답하였다.
하루는 아파트 이웃사람이  일부러 찿아와서  “어이.김형 마누라 간수 잘 하게 , 마누라와  그릇은 내돌리면 깨진다네..어쩌고 하며. 가슴에 불을 질러 놓고 가버린다.
-이놈의 마누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남편은 제 처지가 분하고 가여워 술에 늘 취해 살았다. 스스로 택한 아내이기에 아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견디자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온 가슴이 뻥 뚫린 듯 아프고 괴로웠다.  미늘에 잡힌 물고기처럼 살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은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 이혼을 생각했으나 아내는 생활력이 강하고 자식을 사랑했다. 몸도 성치 않아서인지 그는 떠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자기의 마음이었다. 남자로서의 수치가 몸과 마음을 오그라들게하지만 그녀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를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였다. 오지 않겠다는 미국으로 억지로 데려와서 호강도 못 시키고 이때껏 밖으로 내돌리는 못난 놈이다. 아내가 자기를 떠나지 않고 살아주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야할 것인가?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왠지 혜숙의 기둥서방이 되고 만 느낌이 들었다.


   식당일은 힘들었지만 재미 있었다. 주문받은 메뉴를 주방에다 전해주고 주문한 음식을 손님에게 갖다주면 되었다. 손님들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후 주인아저씨가 나를 내실로 불렀다. 민수엄마,힘들지. 좀 쉬었다 가요. 주인은 오십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급전도 융통을 잘 해주고 혜숙에게 잘해주었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단체손님이 많았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그릇이며 음식찌꺼기를 치우고 나자, 발이 아파왔다. 이제 집에 가야지 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자 문앞에서 주인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평소에 잘 해주는 주인이라 별 생각없이 내실에 들어섰다. 주인은 안에서 문을 잠그더니 다짜고짜 입술을 덥쳤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왜 이러세요” 소리쳤다. 주인은 멋적은 듯이 아냐, 민수엄마를 첨부터 좋아했다면서 손을 꼭 쥐었다. 소파에 앉아서 그는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를 벗겼다. 잘 익은 복숭아같은 빵빵한 젖이 주인의 손에 쥐어졌다. 입술로 젖꼭지를 빨자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날 밤 진정 유쾌하게 주인과 시간을 보냈다. 주인은 마음씨 착한 사내였다.  낡은 혼다시빅이 엔진이 문제가 있어 자주 고장이 났었는데 그는 이것저것 고쳐보다가 안되겠던지, 새 차를 하나 뽑아주었다.  


혜숙이 다니던 식당에 자주 오는 손님중에 한 사람이 혜숙에게 취직시켜주겠다고 제의했다. 어차피 돈 벌거면 돈을 쉽게 버는 데가 있다면서, 밥하고 반찬 대신 술하고 안주를 접대하는 것이라면서 어느날 슬쩍 지나가듯이 말하고 갔다. 그 언니는 룸살롱마담이었다. 혜숙은 집페이먼트며 자동차보험,먹을 것,입을 것을 해결해야하는 책임감이 있었다. 꼭 갚아야할 빚도 있었다는 것이 술집으로 직장을 옮긴 이유의 전부는 될 수 없었지만 빚쟁이에게 시달리던 때라 혜숙은 옮기기로 작정했다. 주인여자가 쌍심지를 돋우고 혜숙에게 닥달질하는 것도 싫었었다.

혜숙은  섹스를 좋아했다. 남편과 잠자리를 한지는 오래된다. 그녀는 한껏 물오른 30대 여자였다. 남자의 몸이 자기 몸에 들어와 움직일 때, 사타구니가 얼얼할 정도로 세게 해주는 남자를 좋아했다. 오럴 섹스도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순진한 남자들이 오히려 어색해 하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좋을 지 몰라서 당황하는 걸 보면 그녀는 남자의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며 격려하곤 했었다. 남자들은 터질 듯이 팽팽한 그녀의 유방을  만지기 좋아했다. 큼직한 두 유방은 어떤 때는 멍청해보이기도 했다. 화통하고 직선적인 그녀는 예스,노가 분명했다. 오로지 육체관계로만 허위적거리는 끈적끈적한 사랑을 좋아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돈이 개입된 연애는 왠지 구지레하게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약해서인지  처녀적부터 지금까지 줄줄 따라 다니는  그 많은 남자들 모두와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그들의 소망(?)을 들어주려했다. 일이 끝난 후 서로의 눈을 마주치기가 거북한 상대가 아니라면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에게 몸을 주었다. 19살 어린 나이에 순수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배반당한 후,사랑이란 덧없는 것이라는 걸 희미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를 무시하고 억압적으로 당하는 것은 몹시 싫어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봄날 그녀는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가 되었다. 첫날부터 재수가 옴붙었는지 첫손님이 식당때부터 줄곧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추근대던  김사장이 룸에 떡 버티고 있었다. 그는 자바시장에서 여자옷도매상을 하는 사내이다. 부리부리한 눈빛이 항상 번들댔다. 그녀가 들어서자 정사장은 반갑다는 듯이 손을 들며
“어이.미스 김 어서 와. 그래 돈을 벌려면 화끈하게 벌어야지”
“메뚜기도 한 철인데 피부가 탱탱할 때 한 밑천 잡아야지.”
하며  옆자리를 내어 주었다. 일순 못 올 때를 온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뒤돌아서서 나와버렸다. 정사장은 몇 달 전부터 나에게 이상한 제의를 해온 사내다. 일주일에 한 번 자기집으로 오면, 생활비를 대 주겠다고 했다.
“미스김,한 달 생활비가 얼마냐?”
“한달에 서너 번만 만나주면 돼.”
집요하고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 놈이다.

마담이 뒤쫓아와 왜 그러냐고 했다. 김사장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팁도 후하고 매너 좋고 신사야. 어쩌고 흰소리를 늘어놓았다. 술집이 어떤 곳인줄 몰랐느냐? 그렇게 비싸게 굴면 돈 못 번다. 다 그렇고 그런 거지.뭐 특별한 사람 있느냐, 비싼 돈 내고 여자 있는 술집에 왜 오겠느냐, 뻔하지. 아무리 그래도 혜숙은 싫은 사람과 몸을 섞기는 정말 싫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 김사장이 복도로 나와서 미스김,귀찮게 하지 않을테니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할 수 없이 룸으로 들어갔다.
김사장 친구둘과 여자 둘이 주거니 받거니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야. 박사장, 너 돈 왜 버니?”
“이 자식아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벌지, 왜 벌긴”
“그래 고작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피땀흘려 돈 번단 말이냐.바보자식.”
“그래,넌 왜 버냐?”
“난 돈을 왜 버느냐하면 이쁜 여자하고 질탕하게 놀고 싶어 번다.“
  “천하 난봉꾼이군”
  “베터 섹스(better sex)상대를 만나기 위하여 돈이 필요하지, 임마.”

정사장은 백화점에서 넥타이 고르듯이 여자를 골랐다. 이쁘고 색깔 좋고 감촉이 좋은 걸로.
크라운 로얄 한 병이 새로  들어왔다. 시궁창 냄새가 났다. 룸살롱은 아무리 화려한 조명이 돌아간다해도 음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늪과 같았다. 그녀는 거구인 정사장에게 끌려 여관방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벽하나를 다 메운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티 테이블과 팔걸이가 달린 의자가 두 개, 사이즈가 큰 이인용 침대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어버린다. 그는 단칼에 생선머리를 내려치듯이 나를 갖고 싶어한다. 하얀 비늘을 벗겨내고 내장을 빼내고 투명한 속살만 발라내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부드럽고 쫄깃한 육질이 그의 입속에서 녹아날 것이다.

한 달에 몇 번 그저 눈을 꾹 감고 도마위의 생선이 되면 될 일이다. 그러면 한 달 생활비가 나오지 않느냐, 대단한  유혹이었다. 대책없이 잘려져가는 생선토막처럼 가슴이 쓰리고 아프겠지만, 언젠가는 쓰다버린 기차표처럼 버려지겠지만. 달콤한 유혹이었다.

어릴 적에 TV에서 본 동물의 세계 화면이 떠올랐다. 사나운 호랑이 입에 찟어발겨지는 사슴 속살이 보인다. 먹고 먹히는 세계가 이 더러운 룸에도 현재진행중이다.

혜숙이 처음부터 여러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고향에서였다. 그녀를  따라다니던 동네 순진한 동네 총각이 있었다. 군인오빠와 헤어진 후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 그녀는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었다. 총각은 그녀가 일하는 다방에 술이 잔뜩 취해서 찿아와서 소주병으로 팔뚝을 그었었다.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녀는 도데체 자기가 뭐길레 저토록 남자를 괴롭게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뒷방에 눕히고 붕대로 상처를 감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미개가 새끼에게 하듯이 이리 저리 남자의 몸을 간지럽게 핥았다. 껴안아 주었다. 이마,눈썹, 눈, 콧등,볼,입술에 가볍게 입맞추었다. 촉촉한 혜숙의 입술이 몸에 닿을 때마다, 총각은 경직된 몸이 이완되었고, 평화스러운 표정을 회복하였다. 아마 그 이후부터인가보다. 혜숙은 자기를 좋다고 따라오는 남자를 거절하기 힘들었다.
세상살이에 지친 남자들을 보듬어주고 안아주면 평화로운 표정이 되살아나는 남자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한 번에 한 남자씩만이었다. 자기 품에서 기운을 차리고 세상속으로 씩씩하게 나가기를 바랐다.
김사장도 세상살이에 지친 사내가 아닐까, 사실 누군들 피곤하고 지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런 마음이 슬몃 들었다.

정사장이 손가락으로 혜숙의 배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너, 몸매 하나 끝내 주는구나."
"엄청 섹시해, 오늘 밤 같이 지낼까?"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는 정사장의 불룩한 배가 출렁거렸다. 황갈색의 얼굴이 술과 욕정으로 번들거렸다. 정사장이 나간 후 곧 지배인이 들어왔다. 그는 혜숙에게 귓속말로 정사장이 이차를 원한다고 했다. 싫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복도로 나가자고 했다.

“아니,이런 곳에 오면 거기까지 각오 했을거 아니냐, 괜히 고고한 척 하지마, 재수없게스리.”

그는 정사장에게 두둑한 팁을 받았는지 집요하게 이차를 강요했다. 이건 아니다. 혜숙이 아무리 돈이 궁해도 자존심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혜숙은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돼지하고는 안 해요.”

화장실에서 나온 정사장이 혜숙의 말을 들었는지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말했다.

“에라, 이 날샌 년아, 잡놈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걸 다 아는데 고상한 척하기는.”

혜숙은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어두운 복도를 뛰어나왔다. 하늘엔 별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너들은 모른다. 내 마음속의 별이 따로 있다는 것을.’ 혜숙은 혼자 나직히  중얼거렸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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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열쇠 백남규 2009.03.17 487
37 추은진의 ‘타협의 여왕’ 백남규 2014.04.18 480
36 저울 백남규 2013.07.13 455
35 원의 사랑 백남규 2011.02.22 408
34 이월란의 시세계 백남규 2011.08.08 305
33 위험한 여자 [2] 시스템관리자 2016.07.19 272
32 삶과 죽음 [1] 백남규 2014.10.15 260
31 은폐와 노출 백남규 2013.07.10 246
30 구자애의 시세계 백남규 2014.03.12 242
29 구자애의 시 백남규 2013.08.22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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