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하기

2010.03.20 05:18

백남규 조회 수:819 추천:115

낯설게 하기




  사람들은 낯선 것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하고 이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리 저리 살펴보고 그런 뒤에 아 이건 뭐구나, 뭐하는 데 쓰는 거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낯익은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 잘 알고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생각, 습관을 알아내기 위해 극도로 주의를 집중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별로 주의를 끌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낯선 것은 주의를 집중시키고 낯익은 것은 관습적인 지각을 야기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들이 미장원에 다녀와서 뭐 달라진 것 없어요? 하고 묻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뭔가 달라졌는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남편은 부인을 매일 보는 대로 관습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것이고 부인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여기서 여자들의 분노가 폭발되기 마련이다. 여자들의 치장은 남편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고 주의를 끌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외양의 변화나 머리 만지는 미장원 아줌마의 미적 감각을 알아채는가 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운 본질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머리를 지지고 볶고, 언니 옷도 빌려 입고 마음껏 차리고 나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새롭게 보이고 스쳐보게 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운 본질에 주의를 끌기 위해서이다. 외적 형식, 즉 옷이 좋다거나 머리 모양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형식 속에 녹아 있는 내용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동서식품 커피 광고 중 하나인 <여자와 커피는 새로울수록 좋잖아요>라는 광고문안은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문학 작품과 일상언어를 구분해주는 차이도 여기에 있다. 문학의 언어는 낯선 언어이며 일상언어는 낯익은 낡은 언어이다. 매일 사용하는 일상언어는 이미 익숙해져 있고 그만큼 진부하기 때문에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것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이다. 일상적인 담화에서는 정보만 얻으면 되지 그 말이 어떤 형식을 통해 전달되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정보, 즉 내용만 전달되면 그 형식은 잊혀지고 버려진다. 인식이 기계화, 자동화 되는 것이다.

  벽암록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선승이 조사를 찾아가 도를 물었다. 조사가 물었다. "나룻배로 강을 건넌 뒤 너는 나룻배를 버리고 가겠느냐, 그것을 머리에 이고 가겠느냐?" 조사의 물음에서 강 이쪽과 저쪽은 미혹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를 뜻하며 강은 그 두 세계를 갈라놓는 경계선이다. 나룻배는 여기서 그것을 건너기 위한 화두이다. 조사는 도를 묻는 선승에게 이미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그 화두(즉 언어)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은근히 깨우쳐주고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이미 깨달았으면 모든 것이 진리인데 왜 깨닫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던 화두를 진리 그 자체로 생각하고 그 구멍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어리석음을 범하느냐는 것이다.

일상언어는 나룻배와 같은 것이다. 내용이 이해되면 그 뿐이지 그 매개 수단은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언어는 다르다. 문학의 언어는 낯설게 된 언어이다. 따라서 일상언어를 지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일상언어가 내용에만 관심이 있다면 문학의 언어는 형식 자체에 주의를 집중시키게 한다. 그리고 형식은 내용과 구분되지 않는 구조화된 언어인 것이다.

일부 문학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언어가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형식주의이며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예를 든 생활 속에서의 경험을 모두 쓸모없는 유희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학이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언어로는 경험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의 언어가 갖는 정보량과 일상언어의 정보량을 비교하면서 시 한 줄이 두꺼운 철학 책 한 권 분량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란 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러시아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러시아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문학과 다른 학문(즉 사회학, 철학, 심리학, 역사 등) 사이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무엇인가 연구하던 중 그 차이는 문학과 다른 학문들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발견해내게 된다. 즉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영역과 문학연구 영역을 변별시켜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그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말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그것은 바로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보행과 발레를 비교, 걸음을 걸으면서 자신의 걸음걸이의 의미를 하나 하나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낯설게 만들고 구조화한 발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시는 "발성기관의 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발레는 걸음 하나 하나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 의미를 생각케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행은 그렇지 못하다. 문학의 언어 역시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 생생한 지각과 의미에 접하게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흔히 지나치게 형식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다른 비평유파로부터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식이라는 개념을 오해한데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형식이라는 말은 내용이라는 말과 대립쌍으로 사용된다. 그런 개념으로 사용될 때 내용은 알맹이, 형식은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 공간적인 개념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문학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즉 그들은 문학 텍스트의 내용은 형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건축물을 생각할 때 건물은 형식이고 그 내 내용은 건축가의 아이디어 내지는 설계라고 할 수 있지만 건축가의 아니디어는 건물의 어느 곳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부분 부분에 실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유기체를 유기체로 만들어주는 생명을 내용이라고 할 때 그 생명은 유기체의 특정 부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에 실현되어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내용, 형식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형식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지각되었던 바로 그 내용의 새로움, 내용의 생생한 전달, 즉 핍진성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의 여러 가지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 지각의 과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되도록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란 한 대상이 시적임(시성)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대상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쉬클로프스키, 기술로서의 예술, 한기찬역, 러시아 형식주의, 월인재, 1980, pp. 21-51)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적 형식을 통한 지각이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과 경험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심은 주로 문학적 형식에 있었다. 야콥슨은 문학연구의 대상은 작품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답게 만들어주는 특징, 즉 문학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텍스트를 문학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기법, 즉 구성원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시와 소설 등 각 장르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어주는 장르적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에서는 시어와 일상언어의 대립에 의해, 소설에서는 이야기와 플롯 사이의 대립에 의해 그것은 구분된다. 시에서는 일상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결합규칙을 드러내며, 소설에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플롯을 통해 낯설게 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형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자동화된 지각을 방해하고 사물과 세계를 생생하게 지각하도록 만들기 위한 문학적 장치들이다.
여기서 김소월의 금잔디를 예로들어 이 시가 어떻게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시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지 살펴보자.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김소월,금잔디>

1922년에 발표된 <금잔디> 전문이다.
<금잔디>는 일반적으로 봄의 소생하는 생명력을 노래한 시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 시의 3, 4행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님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쉽게 보여준다.
1∼3행의 "잔디/잔디/금잔디"는 행을 구분해 놓음으로써 마치 잔디가 돋아나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3, 4행의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님 무덤가의 금잔디"는 은유적 구조를 보여준다. 일상언어에서 불은 금잔디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시에서는 일상언어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강제로 결합시키고 새로운 문법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시의 언어를 낯설게 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넘어선 시적인 의미로 전환시킨다. 김소월은 불과 금잔디를 강제로 결합시킴으로써 금잔디를 일상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불이 금잔디가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불과 금잔디 사이에는 거의 유사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에서 금잔디가 돋아나는 곳이 "가신님 무덤가"라는 정보가 주어져 있다. 이 정보는 우리로 하여금 시인은 현재 죽은 님의 무덤가에 와서 금잔디가 돋아나는 것을 보고 있다는 상황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며 실제로 산에서 불이 나는 것이 아니라 "심심산천"으로 비유되고 있는 어떤 곳에서 불이 난다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은유 구조에 따를 때 심심산천은 무덤가와 대응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불은 산에 나는 것이 아니라 무덤과 같은 어디(심심산천으로 비유된)에 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화자의 님이 죽었다는 상황을 고려할 때 불이 나는 곳은 다름 아닌 화자의 가슴, 즉 님의 죽음으로 인해 무덤 속처럼 황폐해진 화자의 가슴 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화자의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불길은 님의 죽음으로 인한 허무의 불길 내지는 그리움의 불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화자는 봄철에 님의 무덤가에 와 금잔디가 불쑥 불쑥 돋아오르는 것을 보고 있으며 그 금잔디의 소생하는 모습은 죽었던 금잔디는 살아나는 데 한 번 가신 님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허무감과 님에 대한 그리움을 불길처럼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앞서 1∼3행의 "잔디/ 잔디/ 금잔디"가 단순히 금잔디가 돋아나는 것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님의 죽음에 대한 허무감과 죽은 님에 대한 그리움이 금잔디가 돋아나는 것처럼 불쑥 불쑥 솟아나고 있는 것을 표현한 구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6∼9행 역시 봄에 소생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예찬하는 내용이 아니라 님의 죽음에 대한 허무감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유재천의 문학교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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