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세미콜론

2015.07.22 18:59

김학천 조회 수:406

   음악에는 멜로디를 나타내는 음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하라는 기호가 있는가 하면 쉼표도 있고 숨표도 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데도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문장부호이다. 문장부호 사용에 따라 문맥이나 의미 전달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특히 생소한 것이 세미콜론(;)이다. 한글에는 없는 구두점이어서다. 세미콜론은 콜론(:)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용법은 다르다. 콜론이 다음에 따라오는 것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라면 세미콜론은 문장을 끝냈으나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세미콜론 다음으로 이어지는 뒷 문장이 그 맛을 제대로 더 나게 돕는다. 

  헌데 최근에 이런 세미콜론의 속성을 이용한 세미콜론 문신(;)이 SNS상에서 유행으로 퍼지고 있어 화제다. 주로 손목이나 목 혹은 등에 세미콜론을 타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데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는 추세다.  

  이 문신 파급은 비영리 정신건강 단체인 '더 세미콜론 프로젝트'가 주도한 캠페인으로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약물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운동으로‘당신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한다. 

  헌데 이 말이 비단 여기에만 국한된 것일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86세의 번역가 김욱 선생이다. 30년간 신문기자 생활에서 정년퇴직한 후 월간지 편집위원으로 10 여년을 더 일했다. 그 후 일흔이 다 되어 시작한 사업이 외환위기를 맞아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되고 그 울분으로 협심증까지 걸려 남의집살이 신세로까지 전락했다. 그러나 그 몰락을 딛고 젊어서 책장이 닳도록 읽었던 일본 문학을 바탕삼아 일어 전문 번역가가 되어 10년 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하고 8권의 에세이집을 펴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최근에 펴낸‘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라는 책 속에서 김 욱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야구 명언 중에‘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끝이 없는 인생과의 싸움에서 도망쳐 숨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9회 말 2아웃의 상황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고 역전의 인생을 다시 만들어 간다는 뜻일 게다. 그러면서 나이 든다는 것은‘낡아버린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늙으면서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로튼 교수도 나이는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시계바늘과는 관계없는 것이라 했다. 비록 육체의 변화 속도는 좀 늦을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라고 했다. 가끔 건망증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해도 통찰력과 투시력은 더욱 발전한다는 얘기다. 

  일본어에 노년을 가리키는‘적추(赤秋)’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는 없는‘붉은 가을’을 뜻하는 이 단어는 젊은 청춘에 대한 제2의 청춘을 이르는‘황금의 시기’란 뜻이다. 이 나이가 되면 비로소 삶을 바르게 판단할 나이가 되었고, 삶에 집착하지 않아 자유로울 수 있고,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할 나이로 접어든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세미콜론의 메시지가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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