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序歌


                                      李根培 (1940-)


 가을의 첫 줄을 쓴다

 깊이 생채기 진 여름의 끝의 자국

 흙탕물이 쓸고 간 찌꺼기를 비집고

 맑은 하늘의 한 자락을 마시는

 들플의 숨소리를 듣는다

 금실 같은 볕살을 가슴에 받아도

 터뜨릴 꽃씨 하나 없이

 쭉정이 진 날들

 이제 바람이 불면

 마른 잎으로 떨어져 누울

 나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과 산다는 것의

 뒤섞임과 소용돌이 속에서

 쨍한 푸르름에도

 헹궈지지 않는 슬픔을

 가을의 첫 줄에 쓴다


자기존재의식에 집착하고 있다. 가장 무성하고 욱어진 녹음을 이루어야 했을 인생의 여름을 생채기로 얼룩진 삶을 살고, 가을에 맑은 하늘의 한 자락을 마시는 들풀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꽃씨 하나 없이 쭉정이 진 날들을 살아온 자신은 쨍한 푸르름에도 헹궈지지 않는 슬픔을 안고 있다.

이런 자신의 삶을 첫 가을에 절절히 고백하는 서럽도록 맑은 가슴을 훤히 내비치고 있다. 전연 16행의 봉투구조의 형식에 높은 서정을 담고 있다.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5 평론: 수필이란 무엇인가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382
» <시평> 이근배의 序歌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18
253 ■평론■ 곽상희의『오직, 사랑함으로』, 은혜로운 영혼의 텃밭-최선호 최선호 2016.12.09 98
252 나의 문학세계 최선호 2016.12.09 27
251 <축사> 미주시문학 제3집 발간에 즈음하여-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98
250 □평론□ 기독교문학 창달을 위한 제언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468
249 □서문□ 시집 발간에 즈음하여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39
248 <평론> 미주 한국문단의 개관-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762
247 축사: 길이 멈추지 않는 종소리로 <미주시문학>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92
246 <평론> 본 대로 느낀 대로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397
245 <시평>-한국일보 제24회 문예공모전 당선작〈시 부문>-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118
244 <시평> 안선혜의 "내가 아는 남자"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66
243 I감상평설I <외로운 영혼의 비상> 한홍자 시인 최선호 2016.12.09 62
242 ,<평론> 문학정신다운 문학정신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86
241 <시 감상> 좋은 시 읽기 - 정희성 한영옥 김모수 이근배 최선호 시인 최선호 2016.12.09 569
240 □ 평론; 송상옥 문학과 그 주변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239
239 김주경 시인론-제2시집을 읽고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201
238 내가 아는 최선호 목사님- 김주경 시인 최선호 2016.12.09 146
237 <시평> "사도행전" - 송기한 시인 최선호 2016.12.09 47
236 <촌평> 내가 아는 예아 박복수 시인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