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론

 

 송상옥 문학과 그 주변             


 

필자가 송상옥을 처음 만난 때는 1958년 봄이었다. 그는 1938년 일본 토야마현(日本富山縣)에서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8년에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곽종원 김구용 김동리 박목월 서정주 등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문학에 정진하였다.

59년 1월, 단편소설「검은 이빨」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었으나 작품을 지상에 발표할 수 없다는 동아일보 측의 입장을 전달받은「思想界」가 그해 9월「바닥없는 함정」으로 개제하여 발표하였다. 송상옥이 신인으로 인정되기는 59년 5월「제4악장」이「思想界」에 발표되면서다. 이는「바닥없는 함정」을 발표하기에 앞서 그를 신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송상옥과 같은 과 학우들 중 등단한 문우로는 김문수(소설) 김민부(시) 김사림(시) 김은숙(시조) 김주영(소설) 박경용(시) 박이도(시) 박종태(소설) 백도기(소설) 서영수(시) 송상옥(소설) 오재철(시) 오찬식(소설) 유현종(소설) 윤석진(시) 윤혁민(드라마) 이규호(시) 이근배(시, 시조) 이리화(시) 이재녕(시) 이창연(시) 조대현(아동문학) 조상기(시) 조장희(아동문학) 천승세(소설) 최계식(시) 최권흥(시조) 최선호(시, 평론) 홍기삼(평론) 등이다.

 

송상옥의 문학열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약관의 아리따운 모습에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를 물고 캠퍼스를 거니는 그의 모습은 진솔한 예술가 타입이 아닐 수 없었다. 수업시간 특히 작품을 분석하거나 토론을 벌일 경우 송상옥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작품으로 토론을 벌일라치면 유별나게 칭찬이 오고갔다.

군 복무를 마친 송상옥은 62년 국가문제연구소(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기관) 근무를 시작으로 66년「일요신문」기자를 비롯하여 조선일보사, 한국일보 미주본사 등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장, 단편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82년 9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김호길 전달문 시인 등과 미주한국문인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2대 13대 14대 15대 회장 역임의 공로로 2번에 걸쳐 공로패를 받았다. 몇 차례에 걸쳐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창작의 기치를 더하였으며 약 160여 편의 장, 중, 단편을 창작 발표함으로써 15권의 창작집을 내놓은 이야기꾼 중의 이야기꾼이다. 그야말로 송상옥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있을 수 있는 일로 실감나게 꾸미는 재사 중의 재사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우수작이 여러 편이지만 역시 초기에 발표한「흑색 그리스도」가 압권이라 생각한다.

 

송상옥의 소설집「흑색 그리스도」의 책머리에 그의 작품세계는 자아발견 추구에 공헌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서두의 짧은 글이 암시하듯 '이 소설(흑색 그리스도)은 자아발견에의 과정을, 무위한 일상과 지난날의 방황을 배경에 두고 작자 나름으로 추구해 본 작품이다. 세상에 나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깊은 회의, 세상의 그 어떤 일에도 삶의 뜻을 찾지 못했던 주인공에게는 구원의 손길을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종교에도 뻗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나'가 도달한 것은 무위한 일상 속에서, 혹은 지난날의 방황 속에서 재발견한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거기에 사랑과 미움과 고통이 수반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4기로 나눌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1959년 등단 이후 약 10년을 주기로 작품세계가 변해왔음을 말한다.

초기는 주로 인간의 내면을 다룬 1960년을 전후한 시기이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도피」「찢어진 홍포」「잠복초」「바닥없는 함정」「흑색 그리스도」「열병」「말라리아 섬」등의 중 단편들이 있다.       

1970년을 전후한 제2기는 그의 말대로 작가적인 눈이 외부로 향해져 조직사회, 정치 폭력 등에 마모되고 파괴되어 가는 개인, 그리고 출구 없는 일상에 대한 절망과 무력감, 자아가 상실돼 가는 인간상을 그린「환상 살인」「어떤 종말」「어떤 몰락」「가면부대」「작아지는 사람」「떠도는 심장」등의 중 단편들이 있고,

1980년을 전후한 제3기에는「산타 모니카에서의 죽음」「쌍권총의 사나이」등 소설집「소리」와「기묘한 삶」「말과 아픔으로 시작되었다」등의 단편들이 있다.

제4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세 도시 이야기」장편과「버려진 방」「비밀을 가진 사나이」「불타는 도시」「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산장으로 가는 길」등의 중편, 그리고「흔들리는 땅」「사막 구경」「눈 구경, 또는 알래스카」등의 단편들이 있다. 송상옥은 이 시기를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작품에 주로 그려온  점에서는 앞의 시기인 제3기에 연결되나, 그 시기에는 누구나 겪는 심리적 갈등, 문화 충격 같은 것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 시기(제4기)에는 거기서 좀 더 깊이 들어가 그러한 삶의 의미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의 본질적인 인간문제 등 보다 폭넓은 제재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작품세계를 통한 이런 고백은 바로 작가자신의 인생관의 고백이다. 송상옥은 자신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바닥없는 함정」「흑색 그리스도」와 장편「세 도시의 이야기」를 그의 대표작으로 들고 있다. 송상옥의 초기작들 중「바닥없는 함정」과「흑색 그리스도」가 발표된 직후의 한국문단에서의 그에 대한 관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소설뿐 아니라 문학의 생명은 문장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문장이 따라주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문장력이 부실하면 표현의 정확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작곡된 노래라 할지라도 부르는 사람이 잘 부르지 못하면 감동의 전달은커녕 오히려 불쾌감만 줄 뿐이기 때문이다.

송상옥의 문장은 정확하다. 공을 들인 문장이다. 허구를 말할지라도 사실과 다름없는 솔직한 감동의 문장이다. 뿐만 아니라  시적(詩的) 감동까지 몰고 오는 힘이 문장에 담겨 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네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었다. 방문을 열면 나무들 사이로 일렁이는 물살을 볼 수가 있었다. 맑은 날 수평선은 내 눈에 부셨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오히려 내 가슴속이 출렁이어 왔다.-「흑색 그리스도」의 앞부분에서,

작품마다 흐르는 문장은 힘이 있고 정확하고 때로는 인정이 넘쳐흐르고 따뜻하다.

 

문학은 고백행위이다. 고백에는 호소력이 필수적이다. 호소력의 발산은 일인칭시점이 제격이다. 삼인칭시점이나 전지적 작가시점도 유용하게 쓰이는 수법이긴 하지만 작품에 일인칭으로 등장하여 "나는…", 내가…, 나의…" 등으로 진행함이 간격을 더욱 좁히고 힘 있게 사건을 이끌 수 있다. 송상옥의 수법은 이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송상옥은 「바닥없는 함정」「어떤 덫」에서는 3인칭시점의 능숙한 솜씨로 사건을 이끌고 있다. 발단과 전개과정을 읽을 때는 도저히 불가능하리란 판단이었으나 결국 결말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던 일로 이해되도록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영어권으로 이민을 하여 겪는 문화적 갈등, 특히 언어충격으로 인한 애환을 차분한 문장으로 그린「잃어버린 말」도 1인칭시점으로 애정이 넘치도록 그려내고 있으며, 한 인간의 완성을 향한 의지로 미주에서의 새 삶을 사는 CPA를 주인공으로 그린「부르는 소리」,「흑색 그리스도」등은 1인칭 시점이며,「바닥없는 함정」,「어떤 덫」은 3인칭 시점이고, 이민의 애환을 그린「불타는 도시」는 4 ․ 29 폭동을 소재로 한 1인칭과 3인칭의 복합 시점을 사용하였다. 이는 사건 터치의 개성을 살리는 효과적 수법의 사용이라 하겠다. 

개성 있는 묘사로 인간상 구현에 중점을 둔 소설이 거의이며, 특히 미주에서 쓴 작품들은 미주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민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송상옥 소설에서 치밀한 구성력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을 쓰면서 시를 쓰듯 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글, 복선을 통한 상징과 생략이 세련된 글, 문장에 흐르는 감동을 멈춤 없이 밀고 나간 지구력, 그러므로 소설마다 자리하고 있는 사랑이 따뜻한 감동을 불러들인다.

 

송상옥은 등단 이후, 한국에서 20여 년, 미주에서 30여 년,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전반에 걸친 반세기를 창작일념으로 노력의 세월을 쌓으면서, 특히 미주한국문인협회를 중심으로 건전한 문단형성에 주력하다가 73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작품세계도 그렇지만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가 떠난 지 어언 1년 반이 지났건만 도무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주말쯤엔 그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나를 찾을 것만 같다. 그와 같이 한 세월을 보내며 문학 활동을 하던 문우들 중에는 그를 "문단의 큰 어른, 거목, 존경하는 어른…" 등으로 그를 존경, 추모하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 친구로서의 평자인 나의 심정은 그렇지 않다.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를 문 채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50여 년 전의 그를 "상옥아! 상옥아!" 하고 맘껏 부르고 싶은 뜨겁고 다정함이 지금 내 가슴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계간 미주문학 통권 제56호 2011 가을호 게재)            

                       

- 이 글은 지난 6월 8일, 로스앤젤레스 JJ그랜드 호텔에서 미주한국문인협회와 미주소설가협회가 공동주최한 고 송상옥 소설집 「잃어버린 말」출판기념회에서 발표한 내용의 요약입니다.- 편집자 주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5 평론: 수필이란 무엇인가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382
254 <시평> 이근배의 序歌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18
253 ■평론■ 곽상희의『오직, 사랑함으로』, 은혜로운 영혼의 텃밭-최선호 최선호 2016.12.09 98
252 나의 문학세계 최선호 2016.12.09 27
251 <축사> 미주시문학 제3집 발간에 즈음하여-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98
250 □평론□ 기독교문학 창달을 위한 제언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468
249 □서문□ 시집 발간에 즈음하여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39
248 <평론> 미주 한국문단의 개관-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762
247 축사: 길이 멈추지 않는 종소리로 <미주시문학>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92
246 <평론> 본 대로 느낀 대로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397
245 <시평>-한국일보 제24회 문예공모전 당선작〈시 부문>-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118
244 <시평> 안선혜의 "내가 아는 남자"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66
243 I감상평설I <외로운 영혼의 비상> 한홍자 시인 최선호 2016.12.09 62
242 ,<평론> 문학정신다운 문학정신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86
241 <시 감상> 좋은 시 읽기 - 정희성 한영옥 김모수 이근배 최선호 시인 최선호 2016.12.09 569
» □ 평론; 송상옥 문학과 그 주변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239
239 김주경 시인론-제2시집을 읽고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201
238 내가 아는 최선호 목사님- 김주경 시인 최선호 2016.12.09 146
237 <시평> "사도행전" - 송기한 시인 최선호 2016.12.09 47
236 <촌평> 내가 아는 예아 박복수 시인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