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전희진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

 

 

                                                                                                                                                  

 

I. 인간탐구

28.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두 남녀의 특징이 상징되어 나타남이 흥미롭다.

30. 방: 방 내부의 것들을 의인화하여 서로의 교감을 나누는 이 방은 살아 있는 방이다.

41. 대숲에서: 마지막 연은 매우 절묘하다. 백미를 이룬다.

44. 봄, 그 거대한 음모: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상징적 철학시. 인생을 한눈에 보는 듯.

47. 어머니: 아름다움과 슬픔 사이에서 딸은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는 엄마가 된 딸을 보며, 슬프고 두터운 역사를 헤아리는 모녀의 따스한 정감.

 

II. 사물을 보는 눈

13. 소쩍새; 소쩍새에서 울음 한 삽으로, 그것이 한 철 한 생으로, 시의 무덤으로의 생략이

            이채로움.

18. 웃음의 뿌리: 탄력성 강한 묘사, 무한으로 뻗히는 시인 기쁨의 세계.

23. 둥근 비: 끝이 모질지 못한 둥근 비를 친구의 손끝으로의 비약은 좋은 표현임.

32. 배려: 인간의 꿈이 우주와 통하는 시각적 대화로 감지하는 배려, 생략이 주는 감동이 대단함.

33. 물들고 있었네: “사실은 내가 길들고 있었네/파랗게 그에게 물들고 있었네” 관찰의 역설이 주는 시적 감동.

34. 무화과: “성의 기원을 다시 쓴다”는 시 전문의 성적 표현.

39. 반경: 반경의 이쪽, 저쪽의 대비가 놀랍고, 특히 "한여름 유리잔에 비워지는 콜라병에선 /이불 홋청 말라가는 소리가 들렸는데“의 표현이 아주 뛰어남. 이채롭기 까지 함.

42. 성묘: 아버지 어머니를 추억하며, 애꿎은 비석만 닦고 또 닦던 딸이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 오늘 저녁은 또 무얼 해 먹을까 하고 소망의 꿈에서 삶의 현실로 돌아 오는 명징함.

46. 도미찜을 만들며: 아버지 입가엔 수평선 같은 침묵, 눈 감을 줄 모르는 물고기 한 마리의 관찰이 주는 의미에서 상반적 시정의 느낌이 강함.

56. 소금사막: 이 시의 3연엔 매우 아름다운 감동이 있음. 인생은 유한하기에 그 안에 소금 같은 짜디짠 눈물 같은 당신 같은 속성이 담겨 있음. 62. 꽃의 울음: “사람이 죽어 나무가 되는 것을”, “썩지 않을”, “한 송이 진화 중인 꽃의 울음을” 시인은 보고 있고, 듣고 있다.

67. 복제 X: 입을 다물고 있어서 소통이 안 되는 대상은 언제라도 세상 밖으로 굴러 나올 듯한데 이는 X를 복제함으로써 가능한 일인가?

68. 붉은 양파를 벗겨라: “관습에 길들여진 저 양파껍질을 벗겨야 해요” 이 시에는 양파를 겹겹이 싸고 있는 껍질들이 제들 나름의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넓은 하늘을 향해/날개 펴는 법을 잊어버렸나 봐요”라고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펴야 할 합리성을 외치고 있다.

72. 정전: 이 시는 어둡고 참혹한 세계가 정전상태로 강하게 나타나 있 다. 행을 읽을수록 점점 강한 상태로 점층 강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묽고 도 굳은/촛농 같은 한 순간 이 또 그렇게 지나가리라” 했다.

76. 어떤 후회: 어떤 후회일지라도 차라리 후회다운 후회라면 어떨까? “터질 듯이 꽉꽉 밀 어 넣은 만두 속처럼/머리에 비계 가득 찬 사람들 무리에 끼어”있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 인가.

78. 스토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무한 감시를 당한다. 인간에게,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 에게, 심지어 신에게 까지 감사를 당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 인간 은 감 시 당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시인은 자기가 감시의 굴레에 갇 혀 있음을 이미 감지하고, 보이지 않는 사물까지를 의식하고 있음이다. 보이 지 않는 어 떤 대상이 나를 질식시키려는 데 그런 수작에 나는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 다. 이는 시인의 사물을 보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80. 문워크 댄스: 시인은 이 시의 끝부분에 “문워크 댄스”를 마이클 잭슨의 댄스뮤직이라는 주를 달았다. 춤추는 장면에서 발상된 시상임을 알 수 있다. “나의 남자가 아내가 되고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날들을/나의 여자가 남편이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날들을” 이 모두는 낯선 대상들이겠지만 “세상은/이미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것이 되어 버렸 지 만요”, 이렇듯 세상은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음에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한 발짝 뒤로 미끄러지는/사는 것이란” 문워크와 같은 것임을 깨우쳐 준다.

82. 밥상: 배고픈 거미가 노려보고 있는 거미줄은 말끔히 비어 있다. 그래서 거미의 밥상은 빈 상이다. 다만 허기의 빈 사발만이 뎅그렁 달려 있다. 가난한 이민 살이의 한 측면이 아 닐까?

83. 레몬나무 아래서: 이래서 이민살이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툭하면 이유를 붙여 추방시 키 는 포크레인 같은 무시무시한 법으로 밀려나는 경우, “소문만큼이나 눈물나게/시큼 시큼한 봄”을 맞게 됨을 레몬나무 아래서 감지하고 있다.`

84. 줄: 시인은 살아오면서 앞길을 개척하느라 많은 고생을 겪고 겪다가, 줄을 다시 서기도 하다가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바람결에/그대가 놓고 간/말씀 한마디”를 “나를 묶는 포승줄”로 알아 그 줄에 묶인 인생을 산다.

86. 어떤 반란: 시인의 사물을 보는 눈은 상당히 비약적이다. 그래서 시인의 눈은 시를 산 출 해 내는 모양이다. 반란이 아닌 것을 반란으로 우겨서라도 시세계를 건설하기 때문 이다. “오늘 아침 이 지구를 들어 올린다”니, 기가 찰 정도의 비약이다.

88. 거미줄: 시의 제목은 “거미줄”인데, 시 전체에는 어디에도 거미줄은 보이지 않는다. 그 러니 사람(한 남자)의 생애가 걸려 있는 줄이 거미줄이 아닐까? 그토록 연약하여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줄이 거미줄인데, 이토록 인생의 사업은 그토록 어려운 경지에 걸려 있음을 우회적 표현으로 고통스럽고 아슬아슬한 삶을 그려낸 듯싶다. 93. 봄 밤: 시인 은 이런 상황을 살피면서 봄과 밤 사이는 어떤 차이일까를 묻는다.

     젊은이들의 불덩이 같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봄이었을까/밤이었을 까”

98. 풍경: 이 시는 풍경 그대로의 시다. 마치 찍어 놓은 커다란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으로 치면 사생화 그대로이다. 이 시를 읽는 독자 누구에게나 파사 데나 콜로라도 길이 떠오를까?

110. 미슬토: 미슬토를 소재로 쓰인 시이다. 미슬토처럼 꼬박 하루를 달려와서 나무 안에 누워 나무가 되면 열매를 맺고, 그늘이 되어 주고, 그루터기가 되어주고 “죽어서도 새들의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다면/죽어서도 한 줄기 햇살을 바라볼 수 있다면/죽어서도 그대를 안을 수 있다면//나무 속에 사는 나무, 미슬 토처럼 그 아래서/ 단 한 번의 키스를 하고/사랑의 말문을 틔울 수만 있다면”과 같이 시인의 시물을 보는 시각이 그대로 시인 에게 내면화가 되어 있다.

112. 병에 대한 고찰: 용감하게 쓰인 당당한 시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병을 앓던 사람이 “수술은 무사히 끝나고”, “새 삶의 의지에 불타는 웃음을 .......근사하게 한 방 날리는 것이었다” 하듯이 누구에게나 이런 기쁨이 온다면 얼마나 좋으리.

114. 서툰 사랑: 어떤 사랑이 서툴지 않고 올찬 사랑일까? 단어의 뉴앙스에서 오는 느낌을 시에 담으며 서룬을 서툰으로 읽었다고 서툰 사랑을 했다는 고백이다. 만약 서룬을 서 룬으로 읽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서툰으로 보일 수 있는 글자로 서룬을 썼겠으나 서룬 이란 말이 무슨 말일까?

115. 물방울 무늬 원피스: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입고 걸어가는 여자를 소재로 삼은 시이 다. 물방울은 무늬에 불과할 뿐이지만 소재를 흥미롭게 살려내는 솜씨를 보였다.

116. 장례식장에서: 고 석상길 시인을 추모하여 쓴 시이다.

118. 가을 메모: 가을 메모는 메모답게 옆집 할머니, 중국인 젊은 남자, 스패니쉬 청소부들, 코스모스의 목들에 대하여 짤막하고 간단간단한 메모를 하였다. 뭉텅 뭉텅 온 가을을 의식한 것은 안마당에 피어난 바알간 코스모스 목들이다. 이것들도 구순 고목이 실려 나가 는 문 밖을 향해 길어져 갔기 때문이 아닐까.

 

III. 가족사

14. 캘리포니아 킹 사이즈: 잠자리에서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장면의 제목과 내용이 흥 미롭 다.

16. 시인과 늑대: 대범한 상징, 시인은 양 치기 소년, 시를 쓰지 않을 거라는 시인의 말을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올 거라는 말처럼 믿지 않는 가족들의 풍경. 양치기 소년 이야기 에의 접목이 탁견임.

52. 살구빛 꽃 한 점으로: 떠나는 딸의 모습이 “살구빛 꽃 한 점이네/아득한 옛집 앞 등불 같네” 라는 엄마의 마음처럼 “이렇게 어느 날/우리 사이/꽃과 꽃으로 남을 것이네” 아 쉬움을 담아냈다.

60. 부재: “어느 노인의 젖은 눈에서 문득 내 어머니를 본다”는 시인은 “오체투지 하듯 기 어 가던/하얀 쌀벌레들”을 보고, “냉장고 안에서 죽어가는 야채들처럼” 꾸덕꾸덕 말라 가는 가을햇볕을 앓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이민의 삶을 생각한다.

65. 로사네 집의 내력: “로사”는 사람의 이름이다. 어감의 느낌으로 보아 남성이 아닌 여성 일 것이다. 사람의 이름을 문법으로는 고유명사라 한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 를 이르는 말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사를 이름으로 가진 사람은 한 사람뿐이 아닐 것 이다.

     그래도 사람의 이름은 고유명사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난 “로 사”는 고유 명사여서는 안 된다. 보통명사라야 한다. 그 이유는 여기에 나타난 로사야 말로 어느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온 인류를 대신한 이름이다. “집”은 house가 아니다. “집안” family이

     다. 그리고 “내력”은 personal history이다. history 라 해서, 과거 이야 기만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가족사를 한편의 시에 담았다. 이 시에 나타난 대로 세 상은 변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변했고, 변하고 있으며, 그와 같이 변할 것은 너무 도 명백하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류사를 꿰뚫어보고, 특히 앞날을 향한 예언자적인  시를 썼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시인은 예언자적 시인임을 알 수 있다.

 

IV.현장검증

19. 바람을 답사하다: 보이는 담쟁이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바람을 답사하는 솜씨가 놀랍 고, 더구나 독자를 절터로 안내하는 시정으로의 의욕이 대단함.

20. 난장이꽃: 놀랍다. 치밀한 관찰에 감동이 온다. 어쩌면 난장이꽃은 그리스도를 대신한 표현이 아닐까? 마지막 연은 큰 충격을 준다. 보잘것없는 꽃인 줄 알았는데.......

22. 멸치의 얼굴: 멸치 얼굴과 엄마 얼굴의 대비에서 감동이 온다.

24. 사랑은 한 줄의 비문이다: 결국 사랑은 이렇게 남는 것인가? "One love, One life, Forever"

26. 각시꽃: 결혼축하 장면이 정적, 동적으로 겹치는데 신부 아버지의 눈물을 본다. 유리화 병에 갇힌 하얀 각시꽃은 신부를 비롯한 인류가 아닌가.

50. 석양을 달리다: 황혼을 사는 노부부의 상황이 숨 가쁜 모습으로 불안스럽게 사람의 가 슴을 달군다.

54. 명절을 명절이게 하는 것: 이 시에 나타난 열거, 반복된 상황의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이 전체를 뭉뚱그린 속에 맺혀있는 정신, 그것이 바로 “명절을 명절이게 하는 것” 아닐까?

58. 바람의 세대주: 인생은 붙박이가 아니다. 유한한 속에 사는 변화무쌍한 존재이다. 그러 므로 잠시 동안만 우리 식구요, 부부이며, 자녀들이다. 집도 잠시만 우리 집, 내 집이다. 시 인은 이미 이런 삶의 윤리를 번연히 터득하고 있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운 신이 주 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틀림없다.

70. 폭력에 관한 소문들: 오늘날의 공포와 폭력을 책임질 대상은 과연 누구이며 어디에 있 는 가?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지고 간 것일까/정말 그런 것일까” “이웃집 울타리 안 에서 장미꽃을 따 먹다/뒤돌아 빤히 쳐다보던 그 순한 눈빛” 같은 순수한 인간이 이 땅에 아 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이 소문만이 아니기를....

 

V. 자기탐구

48. 울음의 강을 건너다: 이 시의 소재가 새롭고 강한 이미지를 불러내고 있음. “따스하고 부드러운 어머니 아버지가/수 십 송이의 작고 노란 꽃잎들이/젖은 몸 위로 끝도 없이 흘러 내렸다”는 울음의 강에서 시인은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 시 속에 시인이 보이지 않는가?

57. 시장기를 느낄 때: 이 시는 3연만으로도 시인의 의미 전달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1 연과 2연이 없어도 3연은 충분한 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74. 현장검증: 현장검증이 상징적 비유로 검증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각도로 검증이 되었 으며, 끝부분 “밀린 방세 대신 내어주듯/대롱대롱 솔향기에 밤 깊도록 파도소리를 매다 는 것이다”의 표현이 돋보인다.

95. 붓꽃: 이 시의 힘줄은 맨 끝 연이다. “한 걸음 크게 떼어놓기 전, 붓이라고 마음물 잔뜩 묻혀 벼룻돌에 잠시 몸을 누인다” 여기서 “마음물”은 과연 무엇일까? 또 붓에 물을 묻 혀 왜 벼룻돌에 잠시 몸을 누이는가. 화선지에누이지 않고.

96. 내 안의 불안을 읽다: 내 안의 불안은 내가 당하는 현실의 불안이다. 김동인의 배따라 기를 펼쳐 시상을 잇는다. 배따라기의 클라이맥스나 내 불안은 상통하는 바가 있어 배 따라기와 내 안의 불안이 맞붙어 시로 환생을 하였고, 그런 속으로 내 안의 불안도 싹 이 트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100. 가을 속으로: 가을이 입체적 각도를 이루어 내고 있다. 특히 “낙엽에 긁히는/울음을 놓지 않았다는 소문입니다/남향집 한 채 지었다는 후문입니다”등의 표현은 “시간의 허물 이 고스란히 벗겨져 있습니다”와 함께 입체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102. 화두: 그녀와의 대화, 외모(노란 코트 자락), 교통사고 등으로 연결되고 있는 화두. 외 로 움이 강조되어 있다.

104. 나의 사랑하는: 이 시는 텀블트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천 달러의 거금이 주인을 맞은 듯, 세상은 자꾸 바뀌는데 바뀌지 않고 잠을 자던 존재,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아 든 자 신의 심리상태.

106. 불화: 시인이 바라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듯, 어 긋난 사랑에 대한 한탄이다.

107. 피었다: 꽃이 필 것 같지 않던 “내 몸에서/동백이 활짝” 피었으니 오죽 좋으랴!

108. 오월이 오는 길목: 아름답고 화사하게 명랑한 격조까지 지니고 경쾌하기까지 한 한창 무르익은 5월의 기상이 살아 있다.

 

전희진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을 읽고

 

먼저, 60편의 현대 서정시를 담은 시집을 출간하시기 까지 남모르는 고생을 하신 줄 알고,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전희진 시인은 늦은 나이에 문학에 입문하신 줄 압니다. 더구나 전공분야가 예술분야이긴 하지만 문학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 시집으로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로 가득 채워 내신데 대하여 문우의 한 사람으로 축하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여기 실린 시들은 예술적 요소를 다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적 조화, 미적 균형, 미적 통일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작품 마다 제 나름의 감동적 기치를 높이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방금 찍은 칼라사진을 지금 막 뽑아 온 것처럼 대단히 선명하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작품마다 독창성이 개성 있는 각도로 돋보입니다. 주로 미주에서의 생활환경을 소재로 선택하였습니다. 작품이 비교적 길지 않습니다. 짧은 편이면서 선명합니다. 초점이 확실합니다. 난해성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잘못 쓰인 시어도 없습니다. 수사력이 풍부합니다. 재주부리려는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정직, 진실하게 정성을 기울인 모습이 감동을 일으킵니다.

이런 점 등으로 미루어, 만나보기 어려운 시인을 이런 기회에 만나게 되었음을 보람으로 자부하고 싶습니다.

60편의 시를 제 나름대로 가름해 보았습니다.

I. 인간탐구(5편) II. 시물을 보는 눈(30편) III. 가족사(5편) IV. 현장검증(9편) V. 자기탐구(11편) 등 다섯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필자 나름의 주관적 관점입니다. 꼭 필자의 주관만이 꼭 이렇다 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만 참고를 위한 자료일 뿐입니다. 그 외엔 다른 무엇이 연관되지 않습니다.

 

제 속을

온전히 비워야 들을 수 있는

그 겨울소리

 

바람인 듯 피리소리인 듯

뼈마디 사이

텅 빈

 

하늘에서 끝도 없이

흔들어 대는 저 손

 

휠 줄도 꺾일 줄도

딸집이라 들어와 살 줄도 모르는

 

대숲에서

물 흐르듯 겨울소리

어머니

                            <대숲에서> 전문

 

마지막 연은 매우 절묘하다. 백미를 이룬다.

또한 <반경>(39)의 이쪽, 저쪽의 대비가 놀랍고, 특히 "한여름 유리잔에 비워지는 콜라병에선 /이불 홋청 말라가는 소리가 들렸는데“의 표현이 아주 뛰어남. 이채롭기 까지 함. 마치 이는 윤동주의 "서시" 중 "잎새에 이는 바람"에의 표현과도 같은 느낌을 갖게 함. 

 

완전범죄라니 그라니

이 거대한 음모의 물결 뒤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새 한 마리 얼씬 안 했는데

엄마가 동백꽃처럼 스러져 갔다

사람들의 추리는 뒷북치듯 한 발짝씩 늦었다

수많은 주검들이

낙엽처럼 바닷물 위로 속속 떠오르고

자연재해라는 알리바이를 신처럼 믿는

사람들은 순수하다

겉으로는

방파제에 짙게 깔린 새벽안개 같은

정작 공포는

마시는 물에서 풀 한 포기에서 검출되었고

입에서 입으로

섬마을 전체로

방사능 퍼져 나가듯 흉흉하게 확산되어 갔다

다 잃을 것이라곤 빈 가슴 밖에 없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불씨가 되어 주었다

굳어가는 손가락으로 눌렀을

이승에서의 마지막 전화

뚜- 하고 끊어지던

거친 신호음 소리로 유추해 볼 뿐

실마리는 하늘에 향수병 엎질러 놓은 것 같은

그 해 봄 밤 속으로

영원히 묻히고 말았다

                                                             <봄, 그 거대한 음모> 전문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상징적 철학시.

인생을 한눈에 보는 듯.

 

슬픔의 솔기들을 박고 봉합하는 치료사가

첫 날 내준 숙제는

몸 속 그늘진 곳에 쟁여 있는

울음이란 울음을 모두 꺼내오는 일이었다

꺼내서 우는 일이었다

갓난아기 적 첫울음부터

전생에 만났던, 내생에 만날

걸어온 길 요소요소에 숨어 있던

예기치 못한 슬픔의 올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왔다

난 여름매미처럼 쉬지 않고 울어대었고

아네모네처럼 근 한나절 눈시울을 붉혔다

하늘로 올라가

하얀 구름이 되고자 했던 울음들과

곤한 새벽잠을 깨우며 유리창문을 흔들고 기던 겨울바람

속으로 삼켰던 이 설움들이

해마라기 샤워기에서 물줄기처럼

나를 적셨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어머니 아버지가

수 십 송이의 작고 노란 꽃잎들이

젖은 몸 위로 끝도 없이 흘러 내렸다

그렇게 난 울음의 긴 하루를 건너고 있었다

                                                              <울음의 강을 건너다> 전문

 

울음의 강을 건너다: 이 시의 소재가 새롭고 강한 이미지를 불러내고 있음. “따스하고 부 드러운 어머니 아버지가/수 십 송이의 작고 노란 꽃잎들이/젖은 몸 위로 끝도 없이 흘러 내렸다”는 울음의 강에서 시인은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 시 속에 시인이 보이지 않는 가?

 

로사네 집에는 대대로

만개한 꽃이라곤 없었다

꽃이 피기도 전에

촉수만 맞으면 남녀 간에 정분이

일사천리로 얽히고 설킨다

화장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영주권의 헛꿈처럼 배가 불러온다

그녀, 멕시코 이민자들의 집엔

남편이 없다 아버지도 없다

고기잡이 나가 파도에 휩쓸려서도

전쟁에 나가서도 아니다

십오 세 성인식이 끝나기도 전에

애가 애를 낳고

애의 아빠는

나비처럼 다른 곳을 찾아 길 떠나든지

달빛 없는 밤을 골라 월경을 하든지

뜨거운 여름날

달리는 트럭

닭장 속에 숨어들어 닭똥 같은 생을 마감하든지

그네 나라 고아원 뜰에는 낙엽처럼

버려진 사연들이 하늘에 별 무덤 같다

그들은 채 피기도 전에

그들 어버이처럼

꽃봉오리 아니면 이미 져버린 꽃이다

                                                           <로사네 집의 내력> 전문

 

“로사”는 사람의 이름이다. 어감의 느낌으로 보아 남성이 아닌 여성일 것이다. 사람의 이름을 문법으로는 고유명사라 한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를 이르는 말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사를 이름으로 가진 사람은 한 사람뿐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사람의 이름은 고유명사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난 “로사”는 고유명사여서는 안 된다. 보통명사라야 한다. 그 이유는 여기에 나타난 로사야말로 어느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온 인류를 대신한 이름이다. “집”은 house가 아니다. “집안” family이다. 그리고 “내력”은 personal history이다. history 라 해서, 과거 이야기만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가족사를 한편의 시에 담았다. 이 시에 나타난 대로 세상은 변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변했고, 변하고 있으며, 그와 같이 변할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류사를 꿰뚫어보고, 특히 앞날을 향한 예언자적인 시를 썼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시인은 예언자적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전희진 시인의 시집에서 이상과 같이 4편의 시를 보기로 옮겼습니다. <대슾에서>, <봄, 거대한 음모>, <울음의 강을 건너다>, <로사네 집의 내력> 등의 전문들입니다. 간단한 생략, 언급을 히였습니다.(2-21-2015.)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5 믿는자의 가을은 paulchoi 2017.09.08 9102
634 3.1 정신 paulchoi 2018.02.24 7324
633 시편 9편 최선호 2016.12.04 7124
632 "오월은 계절의 여왕" [3] 최선호 2018.05.21 2832
631 싱가포르 북미회담의 성과 [1] 최선호 2018.06.12 2092
630 6.25와 아가페 [1] 최선호 2018.06.03 1509
629 <평론> 미주 한국문단의 개관-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762
628 참고문헌 최선호 2016.12.04 646
627 <시 감상> 좋은 시 읽기 - 정희성 한영옥 김모수 이근배 최선호 시인 최선호 2016.12.09 569
626 표절설교/은혜설교 [1] paulchoi 2017.06.12 536
» <평론> 전희진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527
624 시편 119편 최선호 2016.12.02 492
623 "시편의 시학"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490
622 <연구> 히브리문학애의 접근- 최선호 최선호 2016.12.08 487
621 시편 16편 최선호 2016.12.04 484
620 <평론> 민족시인들의 면모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479
619 <평론> 송몽규와 윤동주의 항일투쟁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469
618 □평론□ 기독교문학 창달을 위한 제언 - 최선호 최선호 2016.12.09 468
617 <평론> 목회자 최선호 시인의 삶과 문학 - 조옥동 시인, 문학평론가 [1] 최선호 2016.12.09 441
616 시편 6편 최선호 2016.12.04 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