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검둥이

2016.12.11 10:13

최선호 조회 수:7

 

 

검둥이

 

 

 

  1.4후퇴 당시, 피난길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 집을 찾아 들어갔다. 내가 살던 집이었기에 망정이지 어디 집이라고 할 수 있으랴 싶을 정도로 집 꼴은 말이 아니었다. 마루며 가구들, 문짝이란 문짝…, 땔감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패 때고 천장 벽지, 장판지까지 뜯어 때었는지 집은 온통 발가벗겨져 있었다.

 

  뿐이랴!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디 빤한데 하나 없이 똥이 켜켜로 쌓여 추위에 얼어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똥이 아니라 분명 사람 똥이었다. 남녀노소를 구별할 수 없는 이 행실의 주인들을 찾을 수도 없지만 찾아 무엇하랴! 못 올 곳을 왔구나 싶어 왈칵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집안의 아늑함이란 이름뿐이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혹간 사람들을 만나면 '이 난리 통에 당신도 살아 있었구나!'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를 찾아갔다. 종기라는 친구. 그는 나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주었다. 나는 다짜고짜 싫다고 했다. 강아지를 가져가면 또 우리  집은 똥 천지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키워보면 정도 붙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혹시나'하고 안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며칠을 지내며 보아도 강아지 똥을 볼 수가 없었다. 신기했다. 틈만 있으면 강아지를 따라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똥을 어디에 누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나 쉽사리 똥누는 때를 맞춰 따라다닐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강아지를 데리고 가기로 작정하고 불렀더니, 꼬리를 흔들며 졸래졸래 따라 나선다. 조금 따라오더니 되돌아 골목으로 빠져버린다. 옳다! 지금이구나. 살금살금 미행을 했다. 강아지가 찾아간 곳은 집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거름더미였다. 뒤로 돌아서더니 눈을 두어 번 부릅뜨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후 용변을 마친 강아지를 덥석 안아 올렸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여간만 귀여운 게 아니다. 누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검둥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털 색깔을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비록 똥개이지만 같은 부류의 개들치고는 훨씬 더 영리하고 사랑스러워, 나와 내 동생들은 '내 검둥이, 내 검둥이'해가며 서로 자기의 몫으로 차지하려고 울고불고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는 검둥이가 없어져서 집안이 온통 북새통을 놓았다. 막내 동생은 눈알이 빨갛도록 '검둥아 검둥아'부르면서 찾아다니다가 지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저녁  때가 되어서야 검둥이가 들어왔다. 헌데, 목 언저리에 벌겋게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개들한테 물렸구나 싶어 막내 동생은 여덟 살 나이에 긴 바지랑대를 끌며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검둥이의 목에서 피를 흘리게 한 개들을 찾아 분풀이를 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허탕을 친 모양이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우는 것이다. 우는 앞에 쭈그리고 앉은 검둥이는 꼬마 주인에게 잘못이라도 비는 양 두 눈을 꿈벅이고 있었다.

 

  1958년 4월, 우리 식구들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짐을 간단히 꾸리기 위해 가구들 중에 반반한 것들은 이웃 분들에게 잘 보관해 쓰시라 하고 떠나기로 되었다.

 

 문제는 검둥이었다. 그 마을 아버지 친구의 청에 의해 그 분네 주기로 했다는 아버지 말씀에 우리들은 넋 나간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엄하신 점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눈에도 우리들과 비슷한 것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난다는 안타까움도 안타까움이지만 검둥이와 나누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구나 검둥이가 남의 손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떠나는 날 아침, 검둥이도 눈치를 챘는지 안타까운 시늉으로 꼬리를 뱃바닥으로 말아 넣고 안절부절이다. 모두 차에 올랐다. 배웅 나온 사람 중에 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리와 검둥이 사이를 우는 게 아니다. 우리가 떠남을 서운히 여긴 것 뿐. 나는 그 우는 분이 검둥이를 위해 울어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차가 시동을 걸고 차장(남자)이 문을 닫았다.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검둥이도 탔어요!.' 차는 다시 멈췄다. 차장은 육중한 군화를 신은 발로 검둥이를 마구 찼다. '이 개새끼 내렷!' 꼼짝 않는다. 사정없는 발길질이다. 아버지가 검둥이를 달래어 내리라는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젠 운전수까지 검둥이를 쇠막대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하는 것이다. 막내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차를 타고 있는 사람 중에 운 사람은 막내 동생만이 아니다.

 

  서울에 와서도 검둥이 생각뿐이었다. 어서 방학이 되길 기다렸다. 고향에 가서 검둥이를 데려올 참이었다. 아직 살아 있을까?

  막내 동생은 검둥이를 만나면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며 사진도 찍어 준다며 D & P점을 연신 들락이며 사진 찍는 연습을 했다.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하루를 거르고 고향으로 직행. 며칠 머물렀다 온다던 동생들이 당일로 돌아왔다. 방문을 들어서자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고향에 같이 가지는 못했으나 알만 했다. 우는 동생들이 밉지 않았다.

 

  우리가 서울로 이사 온 날부터 검둥이가 며칠을 두고 밤낮없이 울더라는 것이다. 개 울음을 들어보지 못하던 동네사람들이 도리를 해 먹었다는 것이다.

 

  검둥이는 지금도 어느 알 수 없는 주소에서 나를 향해 소리 없이 짖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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