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문 문금숙 시인의 시 감상-최선호

2017.01.16 12:12

paulchoi 조회 수:291

 

 

 
문금숙 시인의 시 감상



 문금숙 시인의 시 <아주 짧은 착각>, <어느 날의 삼원색>, <나이를 먹지 않기>, <어설픈 풍경>, <한 해의 끝 즈음에서> 등 다섯 편을 읽었다. 이미 쓰인 시를 읽는 데서 그 진가를 알게 된다. 그 안에 쌓인 것들이 모래인지 자갈인지 아니면 보석인지를 분별해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어떤 시이든지 시의 내부에는 무엇인가가 들어 있다. 그 들어 있는 내용이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그 시를 지은 사람 즉 시인의 능력에서 엿보인다. 흙 속에 묻혀 있는 어린 싹이 흙을 비집고 올라오듯이 시인의 가슴 속에서 정서의 의미가 새롭게 내밀려서 문자에 담겨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의 가슴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시를 형성한다. 여기 보인 다섯 편의 시가 모두 그렇다.    
                                                                                                
크리스마스추리 장식에 나섰다

벽 한 쪽 붙박이 테이블 위에
조그마한 소나무 세워놓고
은은히 반짝이는 별. 금빛 종 몇몇 그리고 흰 눈 입힌 솔방울들과
붉은 열매(Holly berry)까지
캐롤에 맞춰
흥얼흥얼 신바람 내며
마트를 돌고 돌아
눈여긴 물건들 잔뜩 담아 
생전 처음 예술가인양 가까이 멀찍이 서성이며
화려하게 장식되어가는 것들에
탐스러운 눈빛 되어
손 놓아버린 청춘과 사랑 찾아
붕붕
골목길을 빠져 나가고 있었던들
빨간 플라스틱으로 뭉쳐놓은 매혹적인 열매
맺힘 뚫고 제풀에 툭 터져
희디흰 속살 내보이며
탁 탁 탁
활짝 벙그는 꽃잎처럼
붉은 저녁노을로 꽃피는 것처럼
잠시 착각되는
불량품 껍질도 아랑곳하지 않게 되는
                         - 문금숙의 <아주 짧은 착각> 전문

 제목에서부터 삶의 단면을 들어내고 있다. 성탄절을 맞는 시인은 크리스마스추리 장식에 나섰다. 둘째 연 전체가 추리장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문 시인의 가슴 속에는 또 한 그루의 추리가 서 있다. 실물 추리가 아니라 실물에서 얻어진 짧은 착각의 추리이다. 이것이 심상이요 시상이다. 내면의 변화이다. 이 변화는 아주 짧은 착각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싶다. 휘황찬란한 모습은 순간적인 장식일 뿐이다. “활짝 벙그는 꽃잎처럼/잠시 착각되는/불량품 껍질도 아랑곳하지 않게 되는” 이 속에 우리 인생이 압축되어 있다. 불량품 껍질은 죄 많은 인생일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엔젤레스 하이웨이로 오르는 산 정상 근처
눈 덮인 숲속에는
침엽수들이 잇달아 늘어서서
스쳐온 날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이면 늘 그랬다
도화지 한 면 3등분으로 그어놓고
하늘, 나무, 땅, 차례로 그려서
마치 묵계처럼 단순하고 산뜻하게 색칠하곤 했었다

높이 솟은 산에 줄줄이 선 키 큰 나무들
코발트 빛 하늘 향해
시린 발 견디며 꼿꼿이 서서
기도하는 듯 엄숙하고
하얀 양털이불융단 펼쳐진
소박한 배경 두르고
순수의 시절을 고집하듯
확고한 존재로 버티고 있는 듯하다

뚫고 지나온 세월 속에 그려 넣던
나풀거리는 무성한 나뭇잎 장식
버벅거리며 채우던 이름 모를 꽃과 나비들
빛과 어둠 겹겹이 섞어 위선으로 덧칠하고 내세운 경건
주제부분에만 집착한 열정 그 무거운 사색
이미지 어지럽게 꾸며 배열하면서
아집에 젖은 언어만 꾸역꾸역 쑤셔 박아
무질서하고 복잡하던 면면들로 점철되었던
오랜 내 여러 풍경화와 겹쳐진다

푸른 하늘과 파란 나무들 하얀 대지의 삼원색(三原色)이 빛나는
맑고 투명한 정적이 머문 산정
햇살 거느린 소소리바람 산뜻해

엄청
고요하고 눈부시다                                     
                      - 문금숙의 <어느 날의 삼원색> 전문

 문 시인은 초등학교시절로 돌아가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회상하고 있는 듯, 삼원색은 문 시인의 삶이 지니고 있는 가슴 속에 수놓인 색깔들이다. 그것이 <오랜 내 풍경화와 겹쳐질까>라 했다. 3연과 4연에 문 시인의 삶의 상징적 상황이 역력하다. 그의 삶 속엔 “서릿발 견디며 꼿꼿이 서서/기도하는 순간도 엄숙하고”의 순간도 있다. 이것은 “하얀 양털이불융단 펼쳐진/소박한 배경 두르고/순수의 시절을 고집하듯/확고한 존재로 버티고 있는 둣하다”는 문 시인 삶의 단면이다. 이렇듯 문 시인은 맑고 밝은 화폭처럼 요동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문 시인의 삶이야말로 “엄청/고요하고 눈부시다”는 노래로 채워질 수 있다.   

가까워진 설날 준비 위해
마켓 한 모퉁이 즐비한 떡국 감 포장 앞에 섰다
머뭇거리며
한 봉지 시장카트에 집어넣으려는데
또 한 살 먹어? 또 한 살 먹어?
내안에 웅크리고 있던 세월나이가 거세게 반항한다
한 번 안 먹으면 안 돼? 한 번 안 먹으면 안 돼?
얇은 귀가 한 소리 또 듣는다
그래? 그래 에?
한 마리 동키호테가 용감하게 튀어나왔다

정말로 
안 먹었다

조금은 슬픈 생각 중인데
기발하게 떠오른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생각
사람들은 뒤에서 뭐라고 할까
그래도 궁금해 하는
                     - 문금숙의 <나이를 먹지 말기> 전문

 문 시인의 속사정을 일반 독자는 모른다. 설을 맞이하면서 떡국 감을 사려던 생각을 아예 접고 말았다. 한 살 더 먹기가 싫다는 생각에서다. 이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 생각이 아닐까. 늙기가 역겨워서 나이를 안 먹겠다는 것인데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떡국을 먹지 않는다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야 오죽 좋으랴만, 어쨌든 문 시인은 딱히 나이를 먹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정말로/안 먹었다”니. 이런 사정을 남들이 공감이나 해 주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사는 문 시인은  세월 속에서 결코 늙지 않을 시인일지도 모를 일.

물만 주면 되는 줄 알았다
쥐눈이콩, 메주콩, 검정콩, 콩나물콩...                                      
아는 만큼 구입해서 물에 담가 불려보았는데
콩알들 커진 듯 보이는데 발아될 기미는 전혀 없는 듯
그래도 콩나물시루에 담아 정성껏 물을 끼얹어주었는데
황금색 음표는 애초부터 벙어리였던가 빽빽한 채 음을 못 낸다

내가 물 붓는 정성 속엔 진실의 싹이 삭제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희망의 뿌리 내릴 수 있는 기한이 지난 건 아니었을까
혹은 청정 씨앗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느 날
지난 실수
미련 없이 스스로 갈아엎고
오가닉 콩을 구한 뒤
옳은 꿈을 꾸기 위해
또는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유기농으로 몸을 가꾸기로 했다
여기저기 보이는
농약이 발려 있는 내 생애
수없이 시행착오를 일으킨 긴 세월이
이렇게 콩나물과 함께 씁쓸할 줄이야
                                  - 문금숙의 <어설픈 풍경> 전문

 문 시인은 누가 보아도 건강한 현대 여성이다. 몸도 건강, 생각도 건강, 그가 품고 살아가는 믿음까지 건강한 여류시인이다. 헌데, 이 여성이 쥐눈이콩, 메주콩, 검정콩, 콩나물콩...을 구입해서 물에 담가 불려보고 콩나물시루에 정성껏 물을 끼얹어 주었지만 콩마다 무소식이다. 헌데, 마지막 연에서처럼 “오가닉 콩을 구한 뒤/옳은 꿈을 꾸기 위해/또는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유기농으로 몸을 가꾸기로 했다”니. 문 시인이야말로 참 사는 법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닌가. 이런 표현은 풍유적 비유로 병들어 가고 있는 현실을 베어내는 문 시인 나름의 날카로운 칼날이다. 그러나 문 시인은 부드럽고 점잖게 병든 환부를 도려내며 치유를 위한 건전한 방법으로 타이르고 있지 않는가.       

어깨와 등이 시린 겨울날
오돌 오돌 떨던 마음이 생각을 확 바꾸었다
하나는 외롭다, 둘 이어야해, 화목을 위해선 하나 더

그래서
한꺼번에 가족 셋을 입양해왔다
좁은 응접실이 켕겼지만
바람이 찬 숲속에서보담 한결 따사로우리라
낑겨서 한 번 살아보자고 얼려대면서

어렸을 적
연탄불로 데운 방구들 위에
이불 하나 뒤집어쓰고
옹기종기 나누던 체온을 떠올린다면

곧 돌아올 봄 그날을 기다리며
목마름을 참던 겨울의 뿌리
땅속 깊이 묻고
후끈한 여름까지 가기 위한 성장을 위해
시린 겨울나는 것 쯤 문제없이 견딜 수 있는 것
그렇게 한 세상 바람 같은 것 날려 보내면
한결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슬쩍
수위치를 누르자 변해지는 세상
휘황한 불꽃
동글동글한 전구알들
데워진 실핏줄 따라 따스하게 빛났다
깊은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떠돌아 발바닥이 부르터진
외롭던 사슴 세 마리
피가 돌자 환하게 몸을 편다

마음속에 늘 품어 안았던
바라던 불가능
어느 날
이루어진 꿈소식
                     - 문금숙의 <한 해의 끝 즈음에서> 전문

 문 시인은 어린 시절을 춥게 살았다. 그러기에 추웠던 그 환경을 떠올려 “곧 돌아올 봄 그날을 기다리며/목마름으로 참던 겨울의 뿌리”가 되어 “마음속에 품어 안았던/ 바라던 불가능/어느 날/이루어진 꿈 소식”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 시인이 바라고 있는 “한 해의 끝 즈음”이다. 그러므로 한 해는 문 시인의 일생이 비유된 언어일 것이다. 가난한 삶의 겨울에서처럼 세상은 고통스럽고 가족들은 “깊은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떠돌아 발바닥이 부르터진 외롭던 사슴 세 마리”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토록 “외롭던 사슴 세 마리/피가 돌아 환하게 몸을 펴”는 때야말로 “한 해의 끝임에랴! 우리네가 세상에 머문 동안은 고통의 때, 그것이 끝나는 즈음에야 고통을 벗는다. 이로 보면 문 시인은 아늑하고 평화로운 삶의 환경을 지극히 염원하는 소망을 끝없이 데워내고 있다. (필자: 최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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