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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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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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패셔널 포토그래퍼 BUSAN 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사흘째 쏟아지고 있다.

마치, 지구별을 쓸어버릴 듯한 기세다.


옆 방에선 아직도 애정유희가 한창이다. 

부실한 방음 탓인가?

여인숙 방을 투과해 전해오는 색음(色音)이 현악기인 아쟁의 산조(散調)가락처럼 고저(高低)의 음으로 부유(浮游)하며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사랑이란 저토록 열락(悅樂)의 진리를 득해야 만 비로소 여물지는 것인가 보다.


아무런 불평없이 세찬 폭우를 받아 들이는 진공 속 공간은 화선지에 스미는 먹물처럼 그렇게 조금씩 어둠속으로 침참하고 있다.


스트리트 인(Street Inn).

하룻 밤 여장을 푼 싸구려 모텔 이름이다.


화가 모딜리니의 그림을 모사(模寫)해 걸개그림으로 내 건 모텔 프론트 데스크로 다가갔다.

순간 마치 만삭의 임산부처럼 엄청나게 배가 튀어나 온 배불뚝이 백인 사내가 게슴츠레 한 시선으로 나의 전신을 훑으며 말했다.                                                                            

메아 핼프 유?”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시선으로 흘끔 나를 훔친 배불뚝이가 퉁명스런 억양으로 픽쳐 아이디(신분증)를 요구했다.


나는 청바지 뒷 주머니에서 사용 기한이 한창 지난 운전 면허증을 꺼내 건넸다.

신분증을 받아 쥔 배불뚝이가 건성으로 훑어 보고는 이를 복사해 사본을 숙박인 명부에 넣은 뒤 열쇠를 주었다.


동으로 주조한 열쇠는 오렌지 색 플라스틱 홀더에 고리 채어 있었다.

홀더 끝부분에는 숫자 9가 음각 됐다.


배불뚝이가 턱으로 가리키며 알려준 9호실 입구는 여러차례 색칠을 덧칠한 두터운 철재문으로 잠겨 있었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니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궁상맞은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비위를 건드렸다.


나는 살인현장을 탐문하는 감식 계 형사처럼 한동안 방 안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이내 침대 모서리에 엉덩이를 내려 놓았다.


흰 석회를 잘게 반죽해 팝콘처럼 장식한 천장과, 인조 실크 벽지로 마감 처리한 벽은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을 연상케 하는 음습한 얼룩들로 그로데스크 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낡은 침대 맞은편에는 삼성 로고가 선명하게 부착된 색 바랜 구형 아날로그 텔레비전이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묵언수행(默言修行)하는 구도자처럼 침묵속에 놓여 있었다.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자 드릴 러 무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헐리웃 감독 데이빗 핀처의 수작인 세븐(Seven)이 클로즈업 됐다.


나의 시선은 화면에 전개되고 있는 무비스타 모건 프리먼과 브렛 피트의 불꽃 튀는 연기를 좇고 있었다.

허나, 머리 속에는 여전히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감성을 마구 충동질함으로써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고 세면대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시며 붙박이로 고정된 대형 거울에 모습을 비추었다.

순간, 나는 거울속에 반영된 낯 선 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랬다.

기괴하게 생긴 여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 였다.

모습은 피폐했고 을씨년스러웠다.

진정 저 모습이 나란 말인가!


나는 이내 화장실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 내어 흐느끼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아를 깨웠다.


티나 한.


이 글을 기록한 나의 이름이다.

한학자이셨던 친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은 한아름.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동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과정을 종로구 일대에 산재한 교욱기관에서 마쳤다.

그러고는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한 뒤 미국에 눌러 앉았다.


42세 여성이며, 현재 직업은 카지노 뒷전이다.


뒷전?

생소한 뜻 말일 것이다.

다름아닌 카지노에서 통용되는 속어다.


라스베가스 카지노 군락을 비롯한 미 동부지역 뉴저지에 위치한 애틸랜틱 시티 카지노 등 전 미주지역에 산재한 카지노에서 도박꾼을 상대로 구걸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서는 뒷전을 앵벌이 꾼이라 부른다.


카지노 뒷전 경력3년 째인 나의 작업장(?)주무대는 이 곳이다.

애틸랜틱 시티 카지노 겜블장에서 시설과 규모가 가장 화려한 B카지노를 필두로 T카지노와 C카지노 등 모두 15곳이다.


나는 매일 밤 7시가 되면 깔끔하게 몸단장을 한 차림으로 룸메이트 아파트를 벗어나 카지노를 순례한다.


그 날도 나는 어김없이 내가 가장 선호하는(벌이가 좋은 장소라는 뜻) 초특급 도박장인 B카지노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늘 그러하 듯 카지노 도박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잠잠하던 심장이 요란스레 박 동치며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슬롯머신이 쏟아내는 야릇한 기계음과 저절로 몸을 흔들게 만드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 그리고 도박꾼들이 환호작약하(歡呼雀躍)하며 질러 대는 괴성 등이 아드레날린을 마구 솟구치게 한다.


비록 나의 처지가 구걸 행각에 나선 비루한 인생 이기는 하나, 이같은 본능은 달리 억제할 수가 없다.


나는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포크 록 그룹 버즈(The Birds)의 아름다운 연가 곡 턴!!!(Turn! Turn! Turn! : 복음서 구약 시편에 서술된 시어)을 청음(聽音)하며 바카라와 블랙 잭 겜블 테이블이 즐비하게 늘어선 객장으로 들어섰다.


주중인 수요일 밤 평일임에도 카드 게임 객장 안은 도박꾼들로 넘쳐났다.


나는 하이리밋(고액 베팅)겜블 테이블이 즐비하게 들어찬 구역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선행(적선)을 베 풀만 한 대상을 꼼꼼하게 물색했다.


한참을 그렇게 탐색하다 순간적인 승리에 도취해 박장대소하며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코리안 계 도박꾼들이 자리한 테이블로 다가갔다.

이 가운데 혼자서 블랙 잭 겜블 테이블을 차지하고 벳을 하고 있는 동양계 사내 곁으로 접근했다.


곁눈질로 통해 본 이목구비가 반듯한 것으로 보아 심성이 고약한 도박꾼은 아닐 것이라는 예단이 앞섰다.

나이는 대략 40대로 추정됐다.


사내는 블랙 잭 겜블에 몰입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사내의 등 뒤에서 그의 겜블을 엿보다가 딜러가 셔플(카드를 섞는 일)을 하는 틈을 타 그를 향해 나자 막히 속삭였다.


유아 코리안?”


순간, 사내가 고개를 젖히고 나를 올려 다 보았다.


사내가 대답했다.

예스! 아이엠 코리안.앤 유?”


사내가 순순히 반응했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코리안이예요.”


사내는 나의 느닷없는 출현에 잠시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자신의 스팟(도박꾼들이 차지한 자리)앞에 놓인 겜블 칩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내는 카지노에서 현금처럼 다루는 다양한 액수의 겜블 칩을 만리장성처럼 빼곡히 쌓아 놓고 베팅 중이었다.


나는 사내의 겜블 칩에 눈독을 들이며 작업을 펴기 시작했다.

오늘 선생님의 끗발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을 거예요.딜러가 건네는 카드의 십중팔구는 모두 완승이니까요.하지만 그럴수록 심사숙고하면서 겜블을 해야 한다구요.”


세치 혀에서 쏟아내는 상투적인 조언이기 했으나, 웬일인지 사내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수긍한다는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사내의 승낙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의 옆자리에 덥석 앉았다.


때마침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주시하고 있던 카지노 플로어 매니저(딜러와 겜블 테이블의 운영을 관리 감시하는 직책) 가 나를 향해 입술을 움직이려 다 이내 고개를 돌려 딴전을 피웠다.


플로워 매니저가 내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낸 이유는 다름아닌 나의 정체가 뒷전이란 사실을 그가 꿰뚫고 있기 때문 였다.

헌데, 오늘은 웬일인지 내게 아무런 제제도 가하지 않고 모른 체 하며 등을 보인 것이다.


카지노 운영자 측은 객장내 도박꾼들이 안락한 겜블을 즐길 수 있도록 온 갖 정성을 다 쏟는다. 물론 카지노 측의 이같은 상술은 도박꾼들의 호주머니를 최대한 털어내기 위함 에서다.

따라서 카지노 측은 도박꾼들을 귀찮게 하거나 해를 끼치는 뒷전 들에게는 가혹 하리만 큼 제제를 가한다.

처음에는 도박꾼들을 향한 접근 불허와 이를 불이행할 경우 카지노를 경비하는 씨큐어리티를 동원해 강제로 내쫓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당해 카지노 출입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이같은 해프닝은 비일비재하다.


왜냐하면 애틸랜틱 시티에서 영업중인 15군데 카지노 측이 확보한 명단에 나의 뒷전 기록이 고스란히 등재돼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신상 리스트는 카지노 마다 운영하는 보안실(카지노 홀 전체를 CCTV로 감시하는 장소)벽 한 켠에 10x10 크기의 실물 사진과 함께 등재 돼있다.


때문에, 플로워 매니저가 마음 먹기에 따라 나의 하루 일수가 좋고 나쁨으로 갈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방금 플로워 매니저가 보여준 그같은 행동은 내게 있어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혹시 저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사내 곁에 엉덩이를 내려 놓자마자 그가 말했다.


저녁 식사를 거르다 보니 속이 너무 허전 해요.만약 가능하다면, 선생님한테 저녁 식사 대접을 받고 싶은데……. .”

“…….”


잠시 후 사내는 나를 카지노 호텔 5층에 위치한 이태리 식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값비싼 와인을 반주로 한 해물 스파게티 등 다양한 음식들을 주문 했다.


8대2로 깔끔하게 머리를 빗질한 웨이터가 음식 주문을 마치고 등을 보이며 사라진 뒤 잠깐 동안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를 의식했음 인가?


사내가 식탁 위에 놓인 크리스탈 유리잔을 만지 작 거리며 말했다.

얼굴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보기 드문 미인이시군요!”


사내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출했고, 나는 이에 걸맞는 대답 대신 단지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사내의 형용처럼 내가 빼어난 미인이라는 것은 카지노 세계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따라서 나는 금전적으로 매우 궁핍한 경우 나의 유일한 자산(?)인 미인계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나의 이같은 행위가 과연 도덕적이냐 아니냐 하는 설왕설래는 단지 배부른 자들의 언어유희 일 뿐이다.

당신도 노름이라는 지옥구덩이에 빠져 보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단언컨 데, 클레오파트라도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면 자신의 몸이라도 팔아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 할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바로 도박 중독의 결과다.


아무튼 사내가 나를 향해 지난 시절 한국 영화계를 풍미했던 여배우 문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을 때 민 대머리 웨이터가 음식을 나르는 수레를 끌고 와 주문한 음식과 와인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오래 만에 마주한 산해진미였다.


나는 우선 사내 앞에 놓인 크리스탈 유리잔에 다소곳한 자세로 와인을 따라준 뒤 방금 접시에 담아 내 온 음식들을 게 눈 감추 듯 먹어 치우기 시작 했다.


사내는 나의 이같은 몸 눌림을 유심히 관찰하며 내심 줄기는 눈치였다.


정식인 해물 스파게티는 물론, 후식으로 내 온 아이스크림과 과일 한 접시 마저 말끔히 비워낸 뒤 잔에 가득 채 운 와인을 들이키는 순간 사내가 말했다.

실례지만 어떤 일에 종사하시는 여성입니까?”


자신을 50대 초반이라고 밝힌 미남형의 사내는 비록 카지노 도박에 몰두하는 꾼이었으나, 한편으론 세련된 매너도 갖춘 호남이었다.


내가 말했다.

보다시피 카지노에서 도박꾼들을 상대로 빌어먹고 사는 뒷전 이예요.”

나의 단도직입적 답변에 대해 사내는 눈을 크게 뜨며 강한 호기심을 부추겼다.

사내가 말했다.

뒷전이라뇨? 무슨 뜻입니까?”


내가 대답했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서는 뒷전을 일컬어 앵벌이라 하더군요. 말그대로 구걸인 이란 뜻 이예요.”


사내가 덧붙였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씀해 주시죠?”


예를 들어 말씀드릴께요. 조금 전에 제가 선생님에게 접근 했듯이, 도박꾼 스팟 앞에 칩이 많이 쌓여 있는 대상을 타킷 삼아 접근한 뒤 은근히 말을 건네고는 상대가 호의적으로 나올 경우 작업을 걸어요. ‘정신없이 겜블을 하다 돈을 다 잃고 나니 승용차에 기름을 채울 돈이 없다. 며 도와달라고 읍소를 하거나 또는 곁에서 아양을 떨며 박수를 치는 등 온갖 응원을 하죠..이렇듯 전혀 마음에도 없는 수작을 펴며 얻어내는 구전이 재수가 좋은 날의 경우에는 수 백 달러에 달하기도 해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 앞에 놓인 유리잔에 와인을 가득 채웠다


나는 포도 향이 물씬 배어난 와인을 단숨에 비우고 말 고리를 이었다.

물론 아양을 떨며 응원을 한다 해서 코리안 도박꾼들 모두가 흡족해 하지는 않아요. 어쩌다가 재수가 없는 날은 도박꾼 곁에 다가서기 무섭게 육두문자가 섞인 험악한 꼴을 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도박꾼이 이미 저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거나 상당 액수의 도박 밑천을 겜블에 빠뜨려 상심해 있을 경우와 또는 카지노에 코리안 출신 뒷전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이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 예요. 어쩌다 성깔이 고약한 코리안 도박꾼에게 걸려들면 온갖 욕설은 물론, 얼굴에다 침을 뱉는 못된 놈들도 있죠. 심지어는 욕정을 채우고 나서 약조한 대가는 커녕 오히려 윤락행위를 카지노 측에 알리겠다고 겁박하며 뻔뻔스럽게 사라지는 코리안 남성들도 있어요. 차이니스 또는 백인들은 이처럼 야비한 짓은 절대 하지 않죠. 백 프로 약속을 을 지켜요. 헌데, 유독 코리안들만 인면수심의 야수 짓을 해요.”


나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사내의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마지막 행간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했다.

드문 경우이긴 하나, 여러 날 카지노를 전전하며 뒷전을 해도 단 한푼 수입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헌데, 이럴 때 일수록 특히 돈은 더욱 필요하더군요. 룸메이트 랜트비도 밀리고, 유일한 통신 수단인 스마트 폰 전화요금도 채납돼 심적 고통을 겪죠.”


사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처럼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십니까?”


내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앞서 잠깐 언급 했듯이 사면초가에 몰리면 저의 유일한 수단을 활용해요.”


그게 뭡니까?”

여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 무엇이겠어요?”


나의 선문답같은 장황 설에 고개를 갸우뚱 하던 사내가 뒤늦게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가 좋은 날은 후한 인심의 코리안으로부터 수 백 달러를 받기도 해요.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흥정한 가격은 고사하고 오히려 거친 폭력과 협박을 감내하는 어처구니를 맛보기도 하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어떤 용도에 쓰입니까?”

배운 도둑질을 어찌 하겠어요. 그것을 판 돈으로 도박을 하죠. 선생님도 느끼시겠지만, 도박꾼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순간이 언제일까요?다름아닌 겜블 테이블에 앉아서 도박을 즐기고 있을 때죠.그 시간 만큼은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인 냥 착각의 늪으로 빠져들어요.이같은 환상은 마약에 취한 중독자들의 황홀한 느낌과 별반 다름 없다구요.딜러에 카드를 연거푸 꺾고 이길 때에는 앤돌핀이 마구 솟구치고…… .”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잠시 말을 중단한 채 침묵했던 나는 다시 잔을 집어 들고 절반 가량 담긴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내가 말했다.

선생님! 하지만 그같은 환희도 잠시 예요. 결국 손에 쥔 판돈을 카지노에 모두 털리고 겜블 테이블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허망할 뿐이죠. 주체 할 수 없는 절망과 자책감이 쓰나미처럼 파고들어 가슴을 마구 할퀴며 괴롭혀요. 이럴 때면 자살충동을 느끼죠, 뿐 만 아니라, 강도짓이라도 해서 도박 밑천을 마련하고 픈 비틀린 허영을 불러 일으키죠.이것이야 말로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노름쟁이들의 황폐한 영혼의 단면 이예요.”


단 한번의 쉼표도 찍지 않고 장황 설을 늘어 놓은 나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내프킨으로 찍어내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내가 말했다.

카지노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동안 도박장을 드나들며 귀동냥을 통해 대충 들어 온 터였습니다 만, 막상 그 실제 주인공과(사내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어휘 인용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마주한 자리에서 얘기를 경청하다 보니 마냥 몰골이 송연 해지는 기분입니다.”

사내는 기왕지사 말이 나왔으므로 내가 그동안 카지노에서 채득하고 실제로 행한 일들을 상세하게 들려줄 것을 나에게 주문했다.


사내는 이같이 말하고는, 덧붙여 귀하의 귀중한 경험담에 따른 충분한 보답을 하겠다.”는 언급도 잊지 않았다.


사내의 보답운운에 귀가 솔깃해 진 나는 전쟁터에 나선 전사처럼 자세를 고추 세우고 지난 3년 여간 카지노 도박장에서 몸소 느끼고 체험한 일들을 재생 해냈다.


내가 말했다.

선생님! 도박은 인간의 영혼을 황폐화 시키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유혹 이예요.”


사내가 대답했다.

“한아름씨의 표현이 마치 철학적 사유를 뜻하는 것처럼 심오함이 묻어 있습니다.”


티나 한이 사내에게 들려주는 카지노 체험담을 따옴표안으로 옮겨 재구성하면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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