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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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Chuck

Episode to joy.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자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러시아 작가 푸시킨. 그는 38세의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해 

희곡,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걸쳐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학세계를 펼쳐 보였다. 

러시아의 국민적 작가에서 더 나아가 세계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사랑과 영광과 비극은 어떠했는가?

“장사꾼은 일어나고 행상인은 거리를 지나가고, 마부는 대기소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오흐따에 사는 처녀는 물동이 이고 총총, 발밑에선 밤새 내린 눈이 뽀드득. … 

정확함을 자랑하는 독일인 빵집 주인, 종이로 만든 고깔모자 쓰고서, 

벌써 몇 차례나 쪽문을 열어젖힌다.” ― <예브게니 오네긴> 중에서

그날도 페테르부르크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지만, 오후 4시가 넘어 교외 공터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두껍게 눈이 쌓인 러시아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총을 든 두 남자의 눈가에 분노와 긴장이 갈마들어 감돈다. 정적을 깨뜨리며 발사된 총탄. 한 남자가 배를 움켜쥐며 눈밭에 쓰러진다. 

눈밭을 적시는 낭자한 선혈. 온 얼굴이 눈 범벅이 된 채 겨우 일어난 남자가 소리친다. “브라보!” 

남자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12번지에 있는 집으로 급히 옮겨진다. 때는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남자는 이후 이틀 동안 심하게 앓았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 아내는 남편의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가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방에 들어왔다. “얼음을 달라!” 아내가 갖다 준 얼음을 이마에 올려 굴리다가 얼음을 먹는 남자. 그가 입을 연다. “잘 있어! 친구들!” 곁을 지키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느닷없이 친구라니. 그가 부른 친구란 서재에 있는 책들이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꿈에서 책 더미 위로 올라갔어요. 책 더미가 너무 높아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지요.”

2월 9일과 10일에 걸쳐 모이카 12번지 주변에 2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크게 놀라 명령을 내렸다. “장례식 장소를 비밀리에 변경할 것, 일반인의 장례식 참석 엄금,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 가능, 군대는 비상 대기할 것, 황실 주치의를 보낼 것, 불법 결투를 벌였지만 사면할 것, 신문의 과격한 추모 기사는 엄금.”

결국 남자는 2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러시아 구력 1월 29일. 신력으로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3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법으로 금지돼 있던 결투를 벌인 푸시킨의 상대는 조르주 단테스.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군 장교로 네덜란드 공사 헤케른의 양자였다. 푸시킨이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에게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단테스는 푸시킨에게 결투를 신청한 터였다.

그들이 결투한 곳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결투를 위해 두 사람이 각각 자리 잡았던 곳이다.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렌스키는 오네긴과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는다. 렌스키의 운명이 곧 푸시킨의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소설이 하나의 예언이었던가. 꽃다운 16살 소녀 곤차로바를 처음 만나 ‘아!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게 생명을 불어넣는 여인이여!’라며 정열을 불태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시킨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곤차로바는 1844년에 재혼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푸시킨과 결혼하기 전부터 러시아 상류사회 사교계의 꽃이었던 곤차로바는, 결혼 후 조르주 단테스와의 염문설에 휩싸였다. 단테스는 끈질기게 푸시킨의 아내 곤차로바에게 구애했고 이는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 최대의 화제로 떠올랐다. 푸시킨의 모욕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내와 자신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푸시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지만, 단테스가 나탈리아 곤차로바의 언니와 결혼함으로써 결투 신청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단테스의 구애는 계속되었고, 더구나 푸시킨에게 익명의 편지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배반당한 남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식의 악의에 찬 조롱이었다. 푸시킨은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이 편지를 쓴 것으로 보고 그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고, 결국 위와 같은 비극으로 끝났다(그러나 이 결투가 러시아 궁정 내부 세력이 푸시킨을 제거하기 위해 꾀한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출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최선 옮김, 민음사, 1997)


평소 문학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푸시킨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유명한 시를 접해본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한다. 서럽고 슬프고 화가 나고 우울한 우리의 비루한 삶. 

푸시킨은 그런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라 하면서도 미래의 기쁜 날을 향한 소망을 간직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푸시킨 자신의 최후는 사랑이 푸시킨을 속인 끝에 슬프고 노하여 맞이하게 된 셈이라 하겠으니, 

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