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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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Chuck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하나요.| 짧은 글 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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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맘과 결혼하겠다는 내 아들... - -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말보다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이, 엄마처럼 살겠노라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가라면 못 갈 그 길을, 자식이 가겠다 할 때, 부모는 무어라 말해줘야 할까요? 자식 앞에선 애써 감췄던 눈물과 한숨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출렁이는 사연입니다. 제게는 아들이 셋 있습니다. 위의 둘은 장가를 들였는데, 이번에 드디어 막내가 결혼 얘기를 꺼내더군요. 엄마도 만나보면 틀림없이 마음에 들어하실 거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아들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았습니다. 더구나 마음에 걸리는 소리까지 한마디 덧붙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그 친구를 이해해주셔야 한다고요.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두루 갖춘 것이 많은 '재원'이었지만, 제가 바라던 평범한 신붓감은 아니었습니다. 짧으나마 이미 결혼 경력이 있고, 아들도 하나 둔 엄마라는 겁니다. 다른 훌륭한 엄마라면 일단 쿨한 척이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조차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그런 한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저는 전 남편을 떠나보냈습니다. 남편 앞으로 나온 보상금을 시집 식구들에게 빼앗기고, 아들 하나만 업은 채 친정으로 돌아왔지요. 요즘 세상 같으면, 우리 같은 모자도 그럭저럭 살아갈 방도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 남편 잡아먹고, 시집에서 쫓겨난' 누이를 오빠들은 어디론가 치워버리지 못해 전전긍긍했습니다. 물론 동생의 앞날을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재산도 좀 있고 인심도 야박하지 않은 재취 자리로 얼른 시집을 보내는 것만이 오빠들의 해결책이었지요. 부끄럽게도 저는 그렇게 등 떠밀려 가듯 재혼을 했습니다.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키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호인이었지만, 자기 아들 일이라면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남편 눈치 보며 아이 하나 거두는 일이 호된 시집살이 못지않게 고되었습니다. 그나마 아내 대접을 제대로 받게 된 것은 우리 사이에도 아들이 하나 태어나고부터입니다. 그 뒤로 남편이 세상을 뜰 때까지, 우리는 사랑보다 정으로, 주어진 연분을 귀하게 여기며 살았더랬습니다. 그렇게 좋은 인연으로 끝맺음이 되긴 했지만, 자식들은 우리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만은 이해해주어야 한다고요? 그건 어미 된 마음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내가 그 가시밭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기에, 누구보다 매몰차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제발 내 자식에게 그런 길을 같이 가자 하지 말라고요. 저는 아들에게 간곡히 말했습니다. 내가 낳지 않은 자식을 키우는 일은, 선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요. 가닥이 다른 세 아들을 키우며, 엄마·아빠도 남모르는 갈등이 많았다고요. 오해와 의심으로 서로 눈 흘기곤 했고, 때로는 부끄러운 밑바닥을 서로에게 들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들 셋에 대한 제 마음이 한결같지를 않았습니다. 층이 져 있었지요. 그 차이를 감추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대목에선가는 불쑥불쑥 드러나곤 했습니다. 아마 남편도 평생을 스스로와 싸워왔겠지요. 그러고도 우리는 좋은 부모가 못 되었습니다. 저는 첫째에게 엄마의 따뜻함을 주지 못했고, 남편은 둘째에게 유독 엄격했죠. 저의 고백과 만류에 아들의 마음도 흔들렸던 걸까요? 며칠간 별말이 없더군요. 부디 마음을 돌이키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제 앞에 꿇어앉아 꺼내놓는 말이 또 한 번 충격이었습니다. 엄마가 정히 반대한다면, 아이를 두고 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둘이 의논 중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들의 말은 저를 곧 멍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아이를 두고 올 수도 있다니, 그게 진심일까? 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한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꼭 결혼을 해야 하나? 막내아들은 모르는 이야기지만, 삼십년 전, 저도 그런 짓을 했습니다. 시집올 때,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왔었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내 자식은 배를 곯는지도 모르는데 남편의 아이 밥상을 차리는 그 마음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이 나섰지요. 아이를 데려와 제 품에 안겨 주더군요. 지금도 저는 남편에게 그 일을 고마워합니다. 그 한 가지 은덕으로 다른 모든 미움을 녹여버릴 수 있었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들을 끝내 받아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한 가지 미움으로 다른 모든 은덕을 불살라버리고도 남았겠지요. 그게 어미의 마음이고 여자의 마음입니다. 아들은 지금 남다른 인생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런 아들의 선택에 대해 저는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아들의 각오가 지금보다 열 배는 더 굳세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여자를 내 사람으로 맞아들이려면 그녀의 아이도 내 자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제 눈에는 아들과 여자친구의 조급함이 더 크게 보입니다. 부디 그 조급함을 떨치고, 각자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인데, 아들의 눈에는 무조건 결혼을 반대하는 걸로만 보이겠지요. 어떻게 우리 엄마가 이럴 수 있느냐고 하겠지요? ,,, 마음이 아주 착찹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 (scrap)

music/ 패트 킴,,, 눈이 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