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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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을 놓치다/ 이해원

 

 

실꾸리처럼 풀려버린 퇴근 길

오늘도 졸다가 역을 놓친 아빠는

목동역에서 얼마나 멀리 지나가며

헐거운 하루를 꾸벅꾸벅 박음질하고 있을까

 

된장찌개 두부가 한껏 부풀었다가

주저앉은 시간

텔레비전은 뉴스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핸드폰을 걸고 문자를 보내도

매듭 같은 지하철역 어느 난청지역을 통과하고 있는지

연락이 안 된다

하루의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졸음이 한 올 한 올 비집고 들어가 실타래처럼 엉켰나

헝클어진 하루를 북에 감으며 하품을 한다

 

밤의 적막이 골목에서 귀를 세울 때

내 선잠 속으로

한 땀 한 땀 계단을 감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현관문 앞에서 뚝 끊긴다

안 잤나

졸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 왔다

늘어진 아빠의 목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힘이 없다

 

- 2012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 시는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여러 면에서 오늘의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평화스럽고 행복한 서민의 가정 풍경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예리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흠을 가졌다.’고 평가했지만 따듯하고 애달픈 시라면서 

시의 완성도에 무게를 두고 뽑았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개성이나 참신성 측면에서는 

미흡하고 안이한 느낌마저 준다. 심사위원들의 특정 선호 정서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가장의 고단한 일상을 통해 가족의 끈끈한 정을 잘 농축한 한편의 공익광고 같은 이 시에서 오히려 문학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예순을 훌쩍 넘긴 여성시인의 연륜도 아울러 감지된다. 

한때 적당히 낯선 상상력에다가 과잉 수사를 입힌 신춘문예용 시 공법이 유행했었지만 

신춘문예라 해서 모조리 심오하고 난해할 필요는 없다. 

신인의 패기와 실험성을 높이 사는 관문도 필요하지만, 이처럼 현실적 소재를 설득력 있게 

다룬 시를 쳐주는 신춘문예도 두어 개 쯤은 있어야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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