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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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어린애처럼 작은 구구단곱셈 속에서

영원히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게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

항상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 시집 『시인이 된다는 것』(세시,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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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썼던 쿤데라의 첫 시집에 실린 작품이다그는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글쓰기로 옥타비오 파스와 더불어 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위트와 패러독스와 지성이 넘치고 섹스와 정치가 뒤얽힌모든 것은 농담 한 마디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농담>과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 <느림>등도 유명하다그의 시는 우리가 이해하는 리얼리즘 시와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중간쯤에 있다그의 시들은 모두 자기만의 개성적 언어로 한 차원 높은 경지에서 표현된 것들이다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하더라도 결코 알아먹지 못하는 횡설수설과는 차원이 달라 그의 사유는 늘 명민하고 명쾌하다사소하게 보이는 글 한 줄에도 인생의 비밀을 통째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한다너무 일찍 계산하고 너무 일찍 절망하여 너무 일찍 포기하고 일어서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은 늘 후회만 남겼으므로설령 둘레가 또다시 자신을 배신하더라도 가야할 길은 가야하고 끝을 봐야할 것은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시작의 태도가 그러해야 하고 시인은 대저 그런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야 한다이성복도 시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이 담보되지 않은 시는 잔고가 없이 남발하는 수표와 같다그에 반해 가장 아름다운 시는 전 재산을 걸고 떼어주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렇게 무모할 것인가분명한 것은 아무도 발 디디려 하지 않은 조악하고 추잡한 현실의 늪이야말로 시가 자라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 덧붙였다.


  시는 곧 시인이어야 하고 시인의 삶이 곧 시로 표출되어야 함을 말한다이성복은 '바닷가에 시체들이 파도에 밀려온다면 그 시체에 가장 먼저 달려드는 것은 파리다그 파리가 곧 시인의 자리다'라는 어마무시한 비유로 엄혹한 시론을 펼쳤다일상생활에서 불요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예민한 감각을 시인에게 요구한다감각의 사제가 되어 아무런 유익이 담보되지 않고 무엇도 원치 않는 가운데서 끊임없이 정수리를 찧으며 '절망의 끝까지가야한다그의 시론은 빵조각과 찬밥 덩어리 위로만 윙윙거리면서 언어유희에만 사로잡힌 시인들에게 스스로 나자빠지도록 권유하며 휘두르는 파리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그렇듯 설익은 말놀음이 아니라 생각의 줄기를 잡아채 끈질기게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 곧 시다.

 

  시는 사물에 대한 관심 차원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집요한 관찰을 통하여 관통으로 나아가야 한다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시는 자신의 전부를 걸고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 다른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다단순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이성의 힘으로 다스려 치열하게 언어를 조탁해내는 과정이다그 과정을 거쳐 사물이 새롭게 태어난다좋은 시인은 그 과정에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아름다운 몰입 속에서 탄생한다그러나 항상 끝까지 가보는’ 그 도정에는 치러야 할 대가들이 즐비하다고뇌하지 않고 고독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시를 쓸 수는 없으리라.


 여기에 덧붙여 쿤데라는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데 있는 게 아니라존재의 한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하지만 이러한 기준들로 걸러낸다면 살아남을 시인이 얼마나 될까카프카에 한 번도 매료되지 않고 쿤데라에 아무런 영감을 받은 바도 없이 카를교에서 뾰족탑의 건축미에 감탄하며 바츨라프 광장을 거니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가벼운 관광의 다름 아니었다프라하는 보헤미아의 중심도시이다보헤미아 지방에 집시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그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유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들은 모두 보헤미안이다. ‘끝까지 가보는’ 보헤미안 시인은 누구인가.(해설 권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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