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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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 홍종빈

 

 

자동차를 몰고 나서면

어느새 아내가 네비게이션 안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또박또박 하느님처럼 말한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안전운전 하십시오.

그녀가 시키는 대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보이지 않는 아내가 다시 말한다.

전방에 과속단속구간입니다. 과속에 주의하십시오.

나는 언제나 길들여진 의식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어디로 갈까 묻지 말고

그림자처럼 오롯이 따라만 오세요.

당신이 한평생 건너온 그 질퍽하고 굴곡진 삶도

거역할 수 없는 내 힘에 이끌려 왔듯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그녀가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세요. 내가 심심합니다.

제발 담배 피우지 마세요. 내 건강에 해롭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내 포로입니다.

 

- 시집 『가시』(화니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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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고객이 내비게이션 회사의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다 보면 한평생 길치에서 못 벗어난다." 다음날 회사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한평생 길치 되면 일평생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전에는 내비게이션 없이 어떻게 차를 몰고 다녔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요즘은 내비게이션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처음 내비게이션이 들어올 때만 해도 상당한 고가인데다가 그저 고급 액세서리이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이것 없이는 낯선 길을 나서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폰만 갖고도 친절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으니 그조차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나도 버티고 버티다 어느 날 길을 헤매고 난 이후 이러다 돈 버리고 시간 내버리고 성질까지 고약해지겠다 싶어 5년 전부터 이걸 달고 다닌다. 

 

 실로 내비게이션은 상냥하고 똑똑한 여비서처럼 어느 상황에서건 최선의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친절하다. 게다가 하느님의 말씀처럼 절대 거른 말을 하는 법이 없다. (간혹 내비도 바보짓을 할 때가 있고 하느님의 말씀도 갸우뚱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남자는 세 여인의 말은 틀린 게 없으니 잘 듣고 따라야 신상에 이롭고 무사화평하다는 유머 아닌 유머가 떠돌아다녔나 보다. 그 세 여인이란 바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내비게이션에서 나불대는 여자를 일컫는데,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다니다가 낭패를 본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늘 옳지는 않을지라도 언제나 바른 길로만 인도한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적인 믿음의 존재라면 서로 ‘영원한 내 포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부부 사이가 그렇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렇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에게도 그러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국민이 따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 길이 옳은 길인지 그렇지 않은지 아리송할 때는 이끄는 자가 인도하는 길로 따르면 된다. 하지만 명백히 잘 못된 길임을 아는데도 따라오라고 잡아끌면 그 손을 뿌리칠 권리 정도는 국민에게도 있는 것이다. 훤히 낭떠러지가 내다보이는데 지금의 대통령은 혼자만의 신념으로 국민들을 끌고 가려한다.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 국민들이 더 잘 아는데 내비게이션의 기능을 넘어 가속페달까지 밟으려 한다. 지금 국민들은 유일한 자구책으로 가속페달 위 그 유령의 발을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민들이 쳐박히고 국가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내비게이션을 일평생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될까. 아무나 '당신은 영원한 내 포로'라며 우길 일은 아니다.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났고 미쳐도 단단히 미친 그 내비게이션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라고? (해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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