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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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복날에/ 이길원

 

 

어린 시절에 목격한 야만의 추억

 

바로 그 대추나무다

설핏 부는 바람에 곤두박질치던 내 연(鳶)을

관처럼 쓰고 있던 그 대추나무다

검둥이는 목이 비끌린채 매를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목소리라도 높이면

으르렁 기세를 세우던 목을

수천 번도 더 쓰다듬었던 목덜미를

머슴들은 매달았다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교문을 나서는 내게

바지가랑이 잡으며 꼬리치던 검둥이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더니

거기 매달려 사정없이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울며 몸부림치는 내 어깨를 짓눌렀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검둥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혼절하고 말았다. 매달린 검둥이처럼

 

오늘같은 복날이면

친구들은

뛰는 메뚜기처럼 젓가락을 움직이는데

40년 전 검둥이 눈물이나 떠올리며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린다

 

- 시집『계란 껍질에 앉아서』(시문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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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여름이 절정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초복이었다언제나 그랬듯이 복달임으로 삼계탕집은 붐볐고 마니아들은 삼삼오오 보신탕 맛집을 찾았다닭 공장에서 출하되는 닭들은 그렇다 치고 개 도둑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멀쩡한 집안 견공들마저 수난을 겪고 있다복날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으뜸으로 꼽은 연유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한여름 기력을 되찾기 위해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했을 것이고그 옛날 먹을 게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인지라 자연히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닭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개는 나눠먹기 딱 좋은 크기였다는데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조선후기 서양 선교사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도 이 개고기였다그래서 가톨릭과 보신탕은 꽤 깊은 유대가 있다물론 동의보감에도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여 기력을 증진한다.’는 기록이 있다하지만 이 땅의 개고기 도축은 여전히 불법 상태다해마다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왔으나 개는 단순 가축이 아니라 오랜 기간 사람들과 함께한 반려동물이기에 보신탕 문화를 쉽사리 용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시인이 어린 시절 목격한 검둥이를 때려잡는 야만적 장면은 트라우마가 되어 세월이 한참 흘렀음에도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리며 개고기를 입에 댈 수 없도록 했다집에서 애지중지 애완했던 개가 발기발기 찢어져 탕 그릇에 담긴다는 생각만으로 소름이 돋았으리라나도 어린 시절 쥐약 먹고 뻗은 이웃의 개를 불에 거슬려 털을 벗겨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그리고 재래시장 좌판에 놓인 이빨 드러낸 개머리를 수시로 보아왔다그 심정을 알만하다.


 하지만 내가 먹지 않는다고도저히 먹을 수 없다 해서 남이 먹는 것까지 반대하고 혐오하는 것은 온당한가이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오래전 한 프랑스 여배우가 야만국으로 규정하면서 우리들의 입맛까지 관리하려 들었던 어이없는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먹는 음식으로서의 개와 집에서 애완하는 반려동물로서의 개를 동격으로 보는 시각에서 오는 불필요한 마찰인 것이다자기가 기르던 애완견을 잡아먹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시중에 식용으로 유통되는 개는 축견으로 전문 사육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조상들도 아무 때나 닥치는 대로 개고기를 식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산림경제>에는 개날(戌日)에 개를 먹지 말 것개의 형태를 잘 가려서 먹을 것집에서 기른 것은 될 수 있으면 잡지 말 것’ 등 나름의 금기 원칙을 두었다언젠가 먹거리X파일에서도 보았듯이 못된 업자들에 의해 애완견까지 보신탕집으로 팔려나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무릎탈골 수술에 사용된 핀이 보신탕그릇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개고기를 혐오하는 사람 앞에서 쪽쪽 뼈를 빨아가며 과장된 입맛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언젠가 성당 앞에서 벌어진 개고기 파티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몸보신에 개고기만을 고집하나꼭 개고기를 먹어야 하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개고기 합법화 논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지만 당국의 대처는 예나지금이나 미온적이다관련 업계와 식도락가의 반발보다는 반대론자의 눈치를 더 살피는 실정이다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이라 개고기에 대해서는 해결되지 않은 게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개 하나?”라고 누가 물으면 먹긴 해도 별로 즐기진 않아라는 나의 궁색하고 어정쩡한 대꾸처럼 (해설,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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