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2017.07.10 10:23

조형숙 조회 수:116

 

   늘 아침 6시에 가게를 연다그 날은 문을 열려고 하니 열쇠 구멍은 무참히 찌그러져 있고 문은 쉽게 밀린다. 하얗게 질려 안으로 뛰어들어가 빙 둘러 살폈다. 황당했다. 먼저 금전등록기부터 보니 통은 활짝 열렸고, 안에 있던 잔돈이 하나도 없다. 휴 한숨이 나왔다. 라디오랑 스피커도 없다. 그 안에 좋아하는 음악이 여러 개 들어 있는데 함께 가져가 버렸다. 무척이나 급하게 나갔는지 테이블이 다 흩어져 있고 바닥은 어지럽혀져 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나는 어쩐 일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도둑이 들어온 일로 인하여 내가 너무 만만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도둑이 자주 오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일 할 때 들어와 협박하거나 생명을 빼앗지 않았으니 감사하고, 금전등록기안에 있는 돈만 없어졌으니 다행이다. 도둑이 나를 따라오지 않은 것이 감사하고 내가 도둑맞는 입장이어서 더욱 감사했다. 금전등록기가 있어 장사할 수 있으니 다행이고 텍스 계산이 되니 안심이다.

   리틀 도쿄에서 가게를 하는 친구가 전화했다. 어젯밤 도둑이 들었다는 거다. 상황이 똑같았다. 우리 가게와 그리 멀지 않으니 아마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구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화를 펄펄 냈다. 나는 사람 안 다친 것에 감사하라 하고 내가 느낀 감사의 조건들을 말해주었다. 친구는 네가 하나님이냐 예수님이냐 흥분했다. 어떻게 그런 일에 화부터 내야지 감사기도를 할 수가 있냐 하며 웃긴다 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미련 없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툴툴 털었다. 온종일 손님들에게 더 친절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찬란한 빛이 세상을 밝혀준다. 일 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가 있다. 좋은 교우가 있고 가족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많은 여건이 날마다 감사기도 하게 하니 나의 일상은 늘 편하다.

  가게는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는 아주 작은 곳이다. 테이블은 두 줄로 있고 한쪽 벽은 거울로 되어 있어 자리는 삼십 개쯤 된다. 늘 자리는 꽉 차 있고 기다리는 손님도 있다. 처음에는 신문사와 칼 트랜스 손님이 많이 왔다. 칼 트랜스 빌딩이 너무 낡아 전기량이 부족하여 컴퓨터 작업이 늦어지는 이유로 새 건물을 메인 길에 짓기 시작하고, 빌딩이 지어지는 몇 년 동안은 건축에 종사하는 일꾼들로 더 일찍 열어야 했다. 더 분주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참 성실히 일했다.

  손님에게는 마음을 다해 대접하고 종업원은 식구처럼 대했다. 생일에는 케이크를 준비해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퇴근할 때 가져가게 했다. 추수 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도 과자나 초콜릿을 한 봉지씩 만들어 보냈다. 그들도 스파게티를 만들어 보내거나 선물을 사 보냈다. 몇 년씩 계속해서 일했다. 손님들은 같은 맛을 내는 일꾼들을 좋아하고 그 맛을 즐겼다. 감사하고 배려하는 일터 되고 화평하기를 기도했다.

  아침 메뉴에 3-3-3가 있다. 달걀 3, 베이컨 3, 팬케이크가 3개로 꽤 양도 많고 값도 좋았다. 아침마다 신문사 직원이 오면 그걸 주문했다. 그리고는 책을 읽거나 메모 같은 걸 하다 간다. 거의 같은 시간에 경찰이 3명 함께 오고 그들은 부리토를 주문한다. 그중 하나는 베트남 여자인데 나를 항상 안아 준다. 큰 소리로 손 흔들며 고맙다 한다.

  13년이 지나 가게를 정리하게 되었다. 정든 손님들과 헤어지기 섭섭했으나 문 닫을 날은 다가오고 손님들에게 알려 드렸다. 어느 아침 신문사 직원이 봉투 하나를 놓고 가신다. 열어보니 나는 미스터 3-3-3입니다. 그동안 맛있게 먹고 마음 써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 떠나게 되어 섭섭하고 많이 생각날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깨끗한 100불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다. 지난 일 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다음 날 베트남 여자 경찰이 화분 하나와 카드를 주고 갔다. 너무 섭섭하다며 여느 때보다 더 힘 있게 날 안아 주었다. 고마웠다. 가게 정리 한 일이 잠시 후회되었다. 그립다.

  지금은 내가 오너가 아닌 종업원으로 일한다. 그때와는 생각이 다르고 방식이 다르다. 그래도 똑같은 것은 내가 주인인 듯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 할 수 있음이 감사한 오늘이다.

 이글은 미주문학 2017년도 봄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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