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도로를 왼쪽으로 돌기 앞을 가로막은 산은 허리에 구름을 휘감고 있다. 친구가 소리친다 "너무 예쁘다. 뭉게구름 같아." 끝없는 양옆에 신기한 산이 많다. 초가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양송이를 엎어 놓은 듯한 바위와 황소가 잠자는 바위를 지나 달리고 달린다. 잿빛 나무들과 바위와 산이 어우러져 삭막한 광야를 지키고 있다. 하늘은 진한 코발트색이다. Death Valley 가는 길에 살아 있는 것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뿐이다.

 오후 1시경 출발해 데스밸리로 떠났다. 요즈음은 오후 5시면 해가 진다. 태양이 지고 나면 빛에 가려진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는 초행길이다. 불빛 하나 없는 끝없는 길을 운전하며 가려니 정말 죽음의 계곡으로 가는 같았다. 우리가 마을은 아직 흔적조차 없다. 빛이라고는 차의 헤드라이트뿐이다. 깊은 산속 900피트 바닷속에 생겨난 이곳은 정말 어떤 곳일까. 약간은 무섭기조차 끝없는 길을 달려 무사히 도착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별이 쏟아져 내린다는 말에 기대를 걸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이곳 죽음의 계곡은 마을이 없다. Hotel 입구에 식당 하나 술집 하나 옆에 선물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3개의 모닥불이 앞마당 쪽에 자리하고 활활 불을 태우고 있다. 모닥불 주위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둘러있다. 모닥불 옆에 부부인듯한 중년의 남녀가 와인을 마시며 정다운 대화를 하고 있다. 넓은 남자의 어깨에 기댄 여자의 얼굴이 불빛 속에서도 행복해 보인다. 가운데 의자에는 친구인듯한 여자 명이 담소하고 있다. 끝자리는 사람이 앉을 있게 되어 있고 앞으로 길쭉한 나무 의자가 비어 있다. 자리가 비어 있어도 사람의 심각한 듯한 이야기 때문에 앉을 수가 없다. 선물 가게에 들어가 돌아보고 한참 만에 나와도 모닥불은 사람들로 인해 차지가 되었다.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의자에 앉았다. 멀리 시간을 운전하고 왔는데 나도 친구와 함께 모닥불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처럼 재를 남기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오래전 박인희가 부른 노래가 떠올라 흥얼거려본다. 친구와의 밀린 이야기는 펑펑 솟아올라 들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알고 싶은 다음 이야기로 있다. 누구 아들은 잘되어 부모공경을 잘한다느니, 합창단에 창단 멤버는 별로 없다느니 누구는 시어머니가 사두신 땅이 엄청나게 올라 그동안 고생하며 살았으나 이젠 허리를 펴고 산다는 이야기가 끝이 없다. 데스밸리의 캄캄한 밤에 모닥불 앞에서 20 동안 못한 수다를 떨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방안의 TV 화면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싫다는 데모를 하느라 101 free way 막혀 있다. 마치 거대한 주차장을 보는 듯하다. 지나던 차들은 그냥 줄지어 있고 어쩌다 차선이 생기면 잽싸게 빠져 달아난다.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이 있는 사이사이로 피켓을 들고 비집고 다니며 트럼프는 대통령이 아니라고 외쳐대었다. 한국도 최순실 사건으로 혼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곳 미국은 투표로 선택해 놓은 대통령이 싫다고 난리다. 한쪽에는 데모하는 사람을 제압하려는 자들이 경비 복장을 총을 들고 있다. 혼란스럽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특히 한인들은 힐러리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한 듯하다. 생각과 기대가 어쨌든지 이미 선출한 결과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 나이에 맞는 정서인 같다. 싸울 용기도 없고 방법도 모르고 그냥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아주 미온적으로 저들의 의견이 수렴될 있을까 염려가 뿐인 시간이 가고 있다.

  죽음의 계곡의 밤은 아침 해와 함께 서서히 소생하고 있다.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도 산도 캠핑카도 많이 모여 있다. 아무것도 없었던 칠흑의 밤이 소생하여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게 마음을 부추긴다. 바람은 기묘한 신선함으로 얼굴을 간질인다. 바싹 마른 나뭇잎들은 바람을 타고 굴러간다. 손으로 잡으려 하면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사막 어디선가 가시 풀도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Artist Drive one way 돌아 나오며 화려함, 신비함에 정말 감동받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산마다 아름다운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 마치 3D 영화 속으로 들어가 양쪽 산이 한눈에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해수면보다 282피트 낮다는 Bad water 하얀 소금밭이다. 정육각형의 아름다운 소금의 결정체가 넓게 펴져 있다. 새하얀 세상 속으로 간간히 구멍이 있는데 속에 물이 들어있다. 조금 찍어 혀에 대보니 짜다. 바닷물이 증발하고 생긴 소금이다. 잿빛 나무들은 비도 없는 이곳 사막에서, 소금이 주는 짠맛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 나간다. Sand Dune 모래언덕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만져보면 바닷가에서 있는 모래처럼 부드러움은 없다. 그렇다고 끈적이지도 않으면서 만지면 부스스 흘러내린다. 모래도 노래하고 있다. 여름날엔 130도로 정말 견딜 없는 더위라 해서 가을에 왔는데 오늘도 93도란다. 오랜 세월의 더위를 모래는 잘도 이겨냈다. 수천 년을 대평원의 모진 바람에 언덕 언덕으로 옮겨 다니면서 지켜온 생명력으로 오늘도 버티고 있다.

   달이 너무 밝아 많은 별을 보지 못하고 떠나온 , 신문에 달이 수퍼문이었다고 했다. 1948 이후 68 만에 가장 크고 밝은 보름달이 것이다. 기존의 달보다 14% 크게 보이고 30% 밝다고 한다. 같은 달은 18 후인 2034년에 11 25일에 다시 뜬다고 한다. 넓은 곳에서 그렇게 밝은 달을 생전 처음 보았으니 오히려 행운이었다. 그믐날의 별은 다음에 다시 있으니 다행이다. 그땐 소쿠리를 가져가야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올려다보면 어떤 것은 움직이고 유난히 밝아 총명한 빛을 내기도 했다. 아주 신기한 별바라기를 했다. Scotty castle에서 별을 많이 있다고 했는데 벼락으로 손상되어 보수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보수 완료되는 2 후에 가기로 하자. 기회는 있으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 내일은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글은 미주문학 2017년 여름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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