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 이건 처녀에게 폭력적인 것일까, 언어폭력일까. 내가 알던 처녀는 모두 아줌마로 갔다.처녀가 알던 남자도 다 아저씨로 갔다. 하이힐 위에서 곡예 하듯 가는 처녀도 아줌마라는 당당한 미래를 가졌다. 퍼질러 앉아 밥을 먹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아저씨를 재산목록에 넣고 다니는 아줌마, 곰탕을 보신탕을 끓여주고 보채는 아줌마, 뭔가 아는 아줌마, 경제권을 손에 넣은 아줌마, 멀리서 봐도 겁이 나는 아줌마, 이제 아줌마는 권력의 상징, 그 안에서 사육되는 남자의 나날은 즐겁다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 비상금을 숨기다가 들켜야 한다. 피어싱을 했던 날을 접고 남자는 아줌마에게로 집결된다. 아줌마가 주는 얼차려를 받는다.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란 말은 지독히 아름답고 권위적이다. 어쨌거나 아줌마는 세상 모든 처녀들의 미래, 퍼스트레이디
'아줌마'의 높임말 격인 아주머니란 명사를 사전에서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부인, 아저씨의 아내, ‘형수’를 친근하게 일컫는 말, 자기 또래인 사람의 ‘아내’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이라고 풀이했다. ‘아주머니’의 어원이 ‘아기 주머니’란 설도 있다. 1910년 이후엔 일반 기혼여성에게도 아주머니, 아줌마라 부르게 되면서 처녀가 아닌 결혼한 여성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성 평등과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아줌마라는 호칭은 물론 미혼과 기혼을 구분해 부르는 것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가장 부적절한 호칭 1위가 0양이고, 다음이 아줌마, 3위가 미스 0라고 한다. 직장에서도 김00씨라고 해야지 미스 김은 곤란하다. 경상도에서는 예전의 편안하고 정겨운 '아지매'란 호칭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시골 사는 60대 후반의 여성에게나 간간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되었다. 이러한 호칭들을 함부로 사용하면 싸가지 없고 무례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따라 호칭의 패러다임이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여성뿐만이 아니다. 이러다간 언니, 오빠, 형님, 누님, 선배, 쌤만 남게 생겼다.
그런데 ‘아줌마’는 사회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도 개입되어 더욱 꺼려하는 호칭이 된 듯하다. 이를테면 때깔 좋은 시절이 종식되었음을 규정짓는 말처럼 여겨져, 그 사실을 기피하고 싶은 심리가 개입된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엔40대도 잘 관리만 하면 미혼인지 기혼인지 분별이 어려울 정도이니 외모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다. 50을 넘긴 나이의 여성도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듣는 아주머니는 기분이 언짢다. 그리고 아줌마란 말은 다소 무겁고 뚱뚱하게 들리는데 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가진 맵시의 여성들도 세고 셌다.
이 시에선 ‘아줌마’를 ‘권력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란 말은 지독히 아름답고 권위적’이라고 했다. 의도적 비하만 아니라면 까탈을 부릴 이유는 없겠다. 하지만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흘길 여성도 있으리라. 한 밉상 여성의원이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 돼야 하나, 그들은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라고 한 발언에 ‘밥하는 아줌마’들이 단단히 뿔났다. 여성 급식노동자들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과를 하면서 “경위가 어찌됐든 부적절한 표현으로 혹시 상처받은 분이 계시다면”이라고 했다.
참 싸가지 없고 고약하기 그지없다. 그 ‘아줌마’의원은 얼마 전 여성 비하 발언으로 이미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여성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지금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큰 비판을 받았다. 이런 식이면 여성장관은 여성가족부 하나면 족하다는 말 아닌가. 스스로 양성평등을 부정하는 자폭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아줌마는 세상 모든 처녀들의 미래’이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포용할 줄 아는 위풍당당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짙게 배어있다. 그런데 그 여성의원 때문에 ‘아줌마’란 호칭의 사용이 더욱 위축되게 생겼다. ( 해설 ,권순진)
Ode to joy,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 김왕노
애초부터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 이건 처녀에게 폭력적인 것일까, 언어폭력일까. 내가 알던 처녀는 모두 아줌마로 갔다.처녀가 알던 남자도 다 아저씨로 갔다. 하이힐 위에서 곡예 하듯 가는 처녀도 아줌마라는 당당한 미래를 가졌다. 퍼질러 앉아 밥을 먹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아저씨를 재산목록에 넣고 다니는 아줌마, 곰탕을 보신탕을 끓여주고 보채는 아줌마, 뭔가 아는 아줌마, 경제권을 손에 넣은 아줌마, 멀리서 봐도 겁이 나는 아줌마, 이제 아줌마는 권력의 상징, 그 안에서 사육되는 남자의 나날은 즐겁다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 비상금을 숨기다가 들켜야 한다. 피어싱을 했던 날을 접고 남자는 아줌마에게로 집결된다. 아줌마가 주는 얼차려를 받는다.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란 말은 지독히 아름답고 권위적이다. 어쨌거나 아줌마는 세상 모든 처녀들의 미래, 퍼스트레이디
- 시집『그리운 파란만장』(천년의시작,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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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높임말 격인 아주머니란 명사를 사전에서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부인, 아저씨의 아내, ‘형수’를 친근하게 일컫는 말, 자기 또래인 사람의 ‘아내’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이라고 풀이했다. ‘아주머니’의 어원이 ‘아기 주머니’란 설도 있다. 1910년 이후엔 일반 기혼여성에게도 아주머니, 아줌마라 부르게 되면서 처녀가 아닌 결혼한 여성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성 평등과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아줌마라는 호칭은 물론 미혼과 기혼을 구분해 부르는 것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가장 부적절한 호칭 1위가 0양이고, 다음이 아줌마, 3위가 미스 0라고 한다. 직장에서도 김00씨라고 해야지 미스 김은 곤란하다. 경상도에서는 예전의 편안하고 정겨운 '아지매'란 호칭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시골 사는 60대 후반의 여성에게나 간간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되었다. 이러한 호칭들을 함부로 사용하면 싸가지 없고 무례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따라 호칭의 패러다임이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여성뿐만이 아니다. 이러다간 언니, 오빠, 형님, 누님, 선배, 쌤만 남게 생겼다.
그런데 ‘아줌마’는 사회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도 개입되어 더욱 꺼려하는 호칭이 된 듯하다. 이를테면 때깔 좋은 시절이 종식되었음을 규정짓는 말처럼 여겨져, 그 사실을 기피하고 싶은 심리가 개입된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엔40대도 잘 관리만 하면 미혼인지 기혼인지 분별이 어려울 정도이니 외모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다. 50을 넘긴 나이의 여성도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듣는 아주머니는 기분이 언짢다. 그리고 아줌마란 말은 다소 무겁고 뚱뚱하게 들리는데 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가진 맵시의 여성들도 세고 셌다.
이 시에선 ‘아줌마’를 ‘권력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아줌마는 처녀의 미래란 말은 지독히 아름답고 권위적’이라고 했다. 의도적 비하만 아니라면 까탈을 부릴 이유는 없겠다. 하지만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흘길 여성도 있으리라. 한 밉상 여성의원이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 돼야 하나, 그들은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라고 한 발언에 ‘밥하는 아줌마’들이 단단히 뿔났다. 여성 급식노동자들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과를 하면서 “경위가 어찌됐든 부적절한 표현으로 혹시 상처받은 분이 계시다면”이라고 했다.
참 싸가지 없고 고약하기 그지없다. 그 ‘아줌마’의원은 얼마 전 여성 비하 발언으로 이미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여성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지금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큰 비판을 받았다. 이런 식이면 여성장관은 여성가족부 하나면 족하다는 말 아닌가. 스스로 양성평등을 부정하는 자폭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아줌마는 세상 모든 처녀들의 미래’이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포용할 줄 아는 위풍당당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짙게 배어있다. 그런데 그 여성의원 때문에 ‘아줌마’란 호칭의 사용이 더욱 위축되게 생겼다. ( 해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