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이웃

2017.08.23 12:49

조형숙 조회 수:212

#1

   최 장로님 장례식장이다.  이 방은 오기 싫은 곳이다. 1년 전에 이곳 바로 이 방에서 남편을 보낸 기억이 너무 아파서다. 그 동안 장례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오고 싶었다. 영상 화면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 번창한 가족인가보다. 행사도 많고 식구도 많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성가가 배경에 깔리면서 영상은 계속 반복하여 돌아간다.

   폐암으로 수술하시고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신다는 교회 광고를 듣고 궁금했다. 말씀을 나눈 적도 없고 가까이서 뵌 적도 없었다. 다만 그분의 신실한 고백은 마음에 와 닿았다. 성가대가 무대위에 있을 때 가끔 최 장로님이 기도 순서를 맡으시고 씩씩하게 걸어 나와  기도 하신다. 열정적으로 진실로 간구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었다. 62세로 이제 시작인 나이에 가셨다. 하늘나라에도 귀히 쓰실 일이 있으신가 보다. 왜 그렇게 빨리 데려가셨는지 하늘의 뜻이 궁금했다.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뵙고 싶어 오늘 일찍 와서 앉아 있다.

장로님은 더 많은 일을 하시고 싶어 하셨다. 고쳐주시면 힘을 다해 충성하겠다 하셨단다. 두 달 동안 폐암 뼈암 간암으로 전이하는 고통을 보면서 이젠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가족들은 생각했다. 장로님은 죽음 보다는 죽어가는 과정을 두려워하셨다 한다. 가족과 친지, 교회 건축과정을 더 염려하셨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은 자는 것이다. 자는 사람은 깨어난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장로님도 내 남편도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아내집사님의 두 손을 잡고 "장로님의 기도가 항상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첫 만남이고 첫인사였다.

#2
김 권사가 딸을 잃은 것을 아무도 몰랐다. 혼자만 슬픔을 간직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주리는 딸아이와 동갑이었다. 어느 날 딸이 " 주리가 갔어요" 하며 울며 들어왔다. 수학 선생을 하고 있던 주리가 학교를 그만두고 선교하겠다고 한국에 나가 신학교를 다녔다.  공부하다가 잠시 미국에 다니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난 얼마 후의 일이었다. 알아도 아는 척 할 수 가 없었다. 늘 만나면서도 그 깊은 아픔을 마음으로만 가늠해야 했다. 남편의 소천 소식을 들은 김 권사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사실은 나도 우리 주리를 잃었어요."  "알고 있었어. 그 슬픔을 마음에 품고 8개월이 되도록 말을 안 했어? 정말 너무했어. 주리는 어디에 있어? 나와 같이 가자."
글렌데일을 지날 때 여기냐고 하니 아니라면서  L.A 동물원을 끼고 빙 돌아 묘지 앞에 도착했다. "여기야?"  백합과 해바라기를 한 다발씩 준비하고 다시 차를 몰아 납골당이 있는 왼쪽으로 돌았다. "여기가 맞아? 맞아요?" 가까이 갈수록 놀라웠다. 처음 생각했던 글렌데일이 아니었다. 차를 세운 곳은 바로 남편이 있는 곳이었다. 많은 납골당이 넓게 자리하고 있고 여러 개의 방이 있다. 놀랍게도 주리는 남편과 같은 방 같은 벽 쪽에 있었다.  주리와 한 동네에 살게 된 남편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3
최 장로님의 장례식이 있고 난 뒤에 김 권사와 함께 납골당을 갔다. 차를 세워 내리는데 납골당 쪽에서 한 무리가 내려오고 있다. 순간 아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최 장로님 댁이 아니신가요?" "네 맞아요"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여기 모셨어요?" "네 바로 저기예요. 000459번이요." 정말 놀라웠다. "저희 남편도 작년에 여기 모셨어요. 이 분의 따님도 같은 방이에요." 김 권사랑 번호를 찾아보니 우리 맞은편 아래쪽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몇 번 기도하는 모습만 뵈었던 분의 장례식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우연은 아니었다. 사람이 무엇에 끌리거나 켕길 때는 다 이유가 있는가보다. 남편과 친구 되려고 그랬나 보다. "여보! 친구가 생겨 외롭지 않으시지요?" 김 권사 딸 주리도, 최 장로님도 하늘 동네 이웃이 되었다. 언젠가 나도 함께할 정다운 이웃이다. .(10/9/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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