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문 믿는자의 가을은

2017.09.08 03:27

paulchoi 조회 수:9102

 

 

 

믿는 자의 가을은

 

 

가을은 슬프다고들 한다. 가을바람이라든지 낙엽이라든지 하는 것이 우리의 비애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벌레소리, 그 중에도 밤새도록 머리맡에 밤새도록 씰씰거리고 우는 귀뚜라미 소리도 어째 세월이 덧없음과 생명과 영화도 믿을 수 없음을 알리는 것 같이 여름에 자라고 퍼져 싱싱하게 푸르던 초목이 하룻밤 찬 서리를 맞아 축축 늘어지는 꼴은 아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난 데 없는 찬바람이 뒤를 이어 누렇게 말라버린 나뭇잎을 그냥 떨어버리는 것만 아니라 이리 날리고 저리 굴려 지접할 곳이 없이 휘몰아 가는 소리는 사람을 잠 못 들게 한다이상은 춘원 이광수의 병창어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네가 보통 생각하고 느끼는 가을이 담겨 있다. 낭만적인 가운데 극히 센티멘털한 부분도 들어 있다. 그래서 두 눈에 눈물이 쑥 빠지도록 가을이 묘사되어 있다.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 시들어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유리알처럼 파랗게 갠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까닭 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에 눈물이 어리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이다. 섬돌 밑에서 밤을 새워가며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구슬픈 울음소리며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창문에 고요히 흘러넘치는 푸른 달빛이며, 산들바람이 문풍지를 울릴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서글픈 소리며, 가을빛과 가을소리치고 어느 하나 서글프고 애닯지 아니한 것이 없다. 가을은 흔히 열매의 계절이니 수확의 계절이니 하지만 가을은 역시 서글프고 애닯픈 계절인 것이다이상은 정비석의 들국화에 나오는 가을이다.

 

가을밤은 왜 이렇게 길고 길까요? 울고 싶은 밤, 누구의 노래를 듣고 싶은 밤이외다이상은 노자영 시인의 슬픈 가을 밤이고

 

귀가 멍해지는 소음 속에서도 완전히 정지된 내면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나는 뼛속까지 내가 혼자인 것을 느낀다. 정말로 가을은 모든 것의 정리의 달인 것 같다. 옷에 달린 레이스 장식을 떼듯이 생활과 마음에서 불필요한 것을 모두 떼어버려야 겠다이상은 수필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이어령 평론가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 나오는 짧막한 부분을 본다.

가을은 전쟁을 치른 폐허이다. 그리고 가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침몰한다. 하나의 모반, 하나의 폭동, 들판의 꽃들과 잎과 열매와 모든 생명의 푸른 색채가 쫓긴다. 쫓겨서 어디론가 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그 자리에서 침몰한다이어령 평론가는 이렇게 가을을 쓰고 있다.

 

여기 기록한 글 말고도 가을을 소재로 한 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한 점이 그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물론 가을을 이렇게 비애적으로만 보지 않는 글도 더러는 있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서글프고 눈물 나고 쓸쓸하고 외롭고 잠 안 오는 계절이 가을이다. 무엇인가를 몽땅 잃어버린 듯한 계절,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일지라도 문자로 표출된 이것들은 모두 글쓴이의 심령의 편린이며 그의 인격이다. 물론 이런 글들은 문예사조의 영향도 없지는 않아서 낭만주의의 감상성이 농후하게 배어 있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글은 곧 그 사람이다.

 

과연 지금은 가을, 가을이다. 더욱 깊은 가을밤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서글프고 눈물 나는 계절이어서는 안 된다. 인본적 감상에만 매어있는 가을이어서도 안 된다. 믿는 자들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첫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계절이다. 분명히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영혼의 추수기이다. 봉사와 수고에 대한 보수와 축복과 그 상급을 받는 계절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가난한 자를 돕는 계절이다. 내일을 위하여 양식을 모으는 때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잠자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며 죄에 대한 형벌과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계절인 동시에 눈물로 자신의 삶을 맑게 닦아내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가을은 믿음으로 영혼의 눈을 뜨는 깊은 의미의 계절, 인생을 한층 더 깊고 넓게 사유하는 계절이다.

 

지금 우리는 이와 같이 절실한 가을을 맞고 있다. 믿음으로 맞는 가을이야말로 참으로 값진 순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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