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de to joy,


99A556335A1A98B82A2008


이제됐다문인수

 

"우물쭈물하다가내 이리 될 줄 알았다"

"공연히 왔다 간다잘 아시다시피 이 말들은 각각

버나드 쇼와 중광스님이 임종 전에 남긴 단 한 마디다.

새삼 무릎을 탁치고 싶지 않은가이에 질세라,

개그우먼 김미화는 또한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직업정신(?)을 살린 '묘비명'을 예고,

웃음을 선사했는데...

반 웃으며반은 또 찡한 마음으로 쓸쓸히

뜯어먹고 싶은 말들이다그래 나는 아직

이만한 식욕이 남았으므로

시인 이경림의 말, "시절하나 온다잡아먹자"가 더

구미를 당긴다만감이 뒤섞이는 비빔밥인 것이다.

 

정말이지뜻밖에도 또 가을이 오곤 했다.

 

나 태어나산 적 있다고죽었다고다 잡아먹었군.

그러나 그 모두 '본의'가 아니었나니아무튼

나도 단 한 마디 "이제됐다." 해야겠다.

 

- 2014년 시와 사람》 여름호

........................................................


 사람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대체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줘 봐도 별 것 아닌데... 왜 나누지 못했을까’라는 후회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라는 후회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졌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게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더 다정하게 살지 못한 것. ‘왜 그리 팍팍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라고 한다.


 그러나 생을 다 살고 난 뒤에 이런 후회란 당사자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버나드 쇼와 중광이 남긴 한 마디는 후세에 이렇듯 회자하며 사람들을 성찰토록 한다. 원래 묘비명의 의미는 당사자가 죽고 난 뒤 남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생애를 요약해서 표현하는데 있다. 고인이 죽기 전에 당부했던 말이나 고인을 기리는 좋은 말을 산 사람이 새겨 넣는 게 일반적이다. 대개 심오한 의미나 생애를 함축한 재치 있는 비문들이다. 그런데 ‘버나드쇼’의 비문은 지나치게 의역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실은 “오래 살다보니 이런 일을 당할 줄 알았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들이다. 어쨌든 어영부영 하지 말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만은 일맥상통한다.


 최근 우리도 서양의 비문 형식을 본받아 짧은 시적 수사로 비명을 새기는 경향이 있다. 삶의 성찰 수단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서 남기거나 ‘예고’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란 묘비명은 ‘직업정신’을 살린 것이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그녀의 전력과 연결지어면 일부 사람들에겐 자칫 조롱의 의미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 평생 처녀로 산 할머니 우체국장의 묘비명은 ‘미개봉 반납’이었다. 이 땅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죽으면 그저 ‘고인’일 따름이지만 출세한 사람들은 관직을 새겨 넣는 것으로 묘비명을 대신한다. 이런 관습은 지금껏 남아있어 사무관 이상 공무원은 묘비에 직급을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년을 앞둔 6급 주사들은 묘비명 때문에라도 기를 쓰고 승진하려는 풍조마저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전해지듯이 그 욕망은 오래된 인류의 습속이라 하겠다. 비명에 글을 남기고자 하는 속뜻은 산 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고픈 욕망 때문이다. 묘비명을 나무가 아닌 돌에다 새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삶을 반추하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는 묘비명 써보기 강좌도 개설되어 있다고 들었다. 이는 자서전 쓰기, 유언장 작성처럼 수필 강좌에 연계해 유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기록해 남기고 알찬 삶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인식한다면 나쁘지 않은 문화 현상이다. 다만 남은 삶을 더욱 알차게 꾸려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허명을 남기려는 욕망이 개입되었다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름은 남기려 한다고 남겨지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잘 살다보면 남들이 자연스레 그 이름을 기억하고 새겨주기도 하는 것이다. 군자는 무릇 세속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스스로 묵묵히 길을 가는 모습이라야 아름다운 법이다. 노자도 무위가 자연스러운 도라고 가르쳤다. 사람의 입(口)이 돌(碑)보다 더 낫다(勝)는 뜻의 ‘구승비’가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칭찬과 존경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돌에다 새겨 넣은 명성보다 훨씬 의미가 크다는 뜻이다. ‘아직, 이만한 식욕이 남았으므로’ 몇 번의 뜯어먹을 계절은 남아있으리라. 이번 겨울은 ‘만감이 뒤섞이는 비빔밥’이다. 나서 계절을 살아내며 죽고 하는 일이 모두 '본의'가 아니었나니. 아무튼, 나도 단 한 마디 "이제, 됐다." 해야겠다.( 권 순진 )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