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2 12:04
연못가의 나무는 위로 오르지 않고 연못 물 위로 길게 드러누웠다. 물을 가르며 다니는 청동오리와 이야기를 하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나보다. 오늘도 자맥질 하는 오리를 내려다 보며 웃느라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길 옆으로 눈에 익숙한 풀이 있다. 희안하게 냉이가 보인다. 초등학교 가기 전 유년 시절에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살았다. 동네 언니들을 따라 바구니를 안고 들로 산으로 나물캐러 다닐 때 보던 그 냉이다.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쪼그리고 앉아 냉이 잎만 싹뚝 잘라 바구니에 담는 나를 본 언니들이 가르쳐준다. "이렇게 하는거야 나 하는 것 잘 보고 해봐." 얇은 칼 끝으로 냉이있는 둘레의 땅을 파서 뺑 돌린 다음 냉이 밑둥을 잡고 잡아 당기면 희고 긴 뿌리가 주욱 딸려 올라온다. 놀라며 신기해 하고 있는 사이에 언니는 뿌리에 달려있는 흙을 툭툭 털어내어 바구니에 담고 얼른 옆으로 가서 다른 것을 뽑아 올린다. 언니들의 바구니에는 금새 한 가득 냉이가 쌓인다. 내 바구니에 조금씩 나누어 주는 언니들이 좋았다. 나도 한 바구니 만들어 할머니에게 칭찬을 들었다. 냉이 잎은 정갈하고 신선했다. 마음은 아스라이 먼 그 옛날이 그리워지고 추억에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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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 선생님과 손들기 시간을 갖던 때가 있었지요.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 들어봐.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손 들어봐. 피아노 있는 사람 손 들어봐" 그 대목에서 손 드는사람은 나 하나였지요. 경제가 어려운 시절이었는데도 아버지가 음악을 하셨기에 아주 어릴 때 피아노를 접할 수 있었어요. 우리 6남매는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면 서로 먼저 치겠다고 아웅 다웅을 했어요. 물론 큰 언니 부터 시작하면 문 밖에서 순서를 기다렸어요. 바이엘과 소곡집을 병행하여 떼고 나면 체르니, 하논, 명곡집과 소나티네로 갑자기 연습할 책이 늘어났어요. 보내 주신 멜로디는 다 그 소나티네 책에 수록되었던 것들이어서 감회가 깊어지네요. 멀리 지나온 그 세월의 경쾌함속으로 잠시 들어가 즐거웠습니다. 늘 좋은 음악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