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이 더 좋은데

2017.12.12 12:04

조형숙 조회 수:169

  연못가의 나무는 위로 오르지 않고 연못 물 위로 길게 드러누웠다. 물을 가르며 다니는 청동오리와 이야기를 하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나보다. 오늘도 자맥질 하는 오리를 내려다 보며 웃느라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길 옆으로  눈에 익숙한 풀이 있다. 희안하게 냉이가 보인다. 초등학교 가기 전 유년 시절에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살았다. 동네 언니들을 따라 바구니를 안고 들로 산으로 나물캐러 다닐 때 보던 그 냉이다.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쪼그리고 앉아 냉이 잎만 싹뚝 잘라 바구니에 담는 나를 본 언니들이 가르쳐준다. "이렇게 하는거야 나 하는 것 잘 보고 해봐." 얇은 칼 끝으로 냉이있는 둘레의 땅을 파서 뺑 돌린 다음 냉이 밑둥을 잡고 잡아 당기면 희고 긴 뿌리가 주욱 딸려 올라온다. 놀라며 신기해 하고 있는 사이에 언니는 뿌리에 달려있는 흙을 툭툭 털어내어 바구니에 담고 얼른 옆으로 가서 다른 것을 뽑아 올린다. 언니들의 바구니에는 금새 한 가득 냉이가 쌓인다. 내 바구니에 조금씩 나누어 주는 언니들이 좋았다. 나도 한 바구니 만들어 할머니에게 칭찬을 들었다. 냉이 잎은 정갈하고 신선했다. 마음은 아스라이 먼 그 옛날이 그리워지고 추억에 울렁거린다.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향연을 벌였던 정원이다. 같은 가든인데도 갈 때 마다 볕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다. 나무도 풀도 흐드러진 동백도, 라일락도, 연못의 물 빛 조차 때 마다 다르다. 우수수 떨어지는 잎들이 함께 가져온 싸늘한 바람이 내게로 와서 온 몸을 감싼다. 나무들은 껍질을 벗고나도 몸을 그대로 버티어 또 다른 준비를 한다. 정원의 화사한 꽃들은 뿌리조차 뽑혀 어디론가 버려졌다. 오늘은 거기에 인공꽃이 만들어져 수 천 개의 봉오리로 가든을 채우고 있다. 세개의 조각으로 유리꽃을 만들고 그 가운데 전구를 연결하여 인공 튜립의 형상을 만들었다. 차가운 기온을 따라 세월속으로 가버린 꽃 대신에 마련한 가든의 프로그램이다. 장미가 시든 쓸쓸한 가든에는 오렌지 빛의 등이 수없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마치 바닷가의 성게처럼 생긴 등은 뾰족한 유리를 연결하여  만들어졌다. 지난 여름  화사했던 장미를 떠올리며 다시 인공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어두운 장미 가든을 밝혀주니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형광 불빛 아래서 장미는 봄의 소리를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데스칸소 가든은 매 달 둘 째 화요일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변해가는 바람과 꽃을 느끼기 위해 가능하면 매달 찾아간다. 오늘은 나무들의 색갈이 이상하다. 파랑, 초록, 빨강, 진한 노랑도 있다. 귀기가 서린다. 해가 산을 넘어갈수록 나무 기둥의 색이 더 진해진다. 무슨 일일까? 자세히 보니 나무밑에 조명을 달아 위로 쏘아 올리고 있다. 조명이 나무 줄기와 잔가지를 둘러 싸고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색색의 잎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미 꽃들이 져버린 정원을 인공으로 만들어 안 늙어 보이려는 설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 마치 세월을 보낸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아닌 척,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인공미가 느껴진다. 더러는 눈에 칼을 대어 늘어진 껍질을 잘라내고, 더러는 코를 올려  독일 병정만큼 날카롭고 뾰족하게 만든다. 주름 없앤다고 살을 끌어 올리다 보면 배꼽이 가슴까지 가는게 아닐까 걱정도 된다. 이제는 주사로 주름을 편다. 연예인이고 일반인이고 즐겨 맞는다. 주름은 펴지는 듯 하지만 얼굴은 퉁퉁 부어 마치 늦은  밤 라면 먹고 잔 다음날 아침의 얼굴이다. 그 것을 보고 신조어로 라톡스라고 한다. 한 번 시작하면 육개월마다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는 그 주사를 맞은 사람을 보면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그저 얼굴 빵빵한 인형이 서 있는 모습이다.
 
   작년에 시작한 설치는 금년에는 더 구체적으로 계획되어 진행되고 있다. 곳곳에 크고 검은 텐트를 치고 커피와 음식을 팔려는 준비로 한창이다. 숲과 숲의 연결을 막는 검은 덩어리들처럼 보여 흉한 모습이었다. 일반인이 5시에 퇴장하고 나면 5시30분에는 야간 가든이 열리고 입장료는 35불이 된다. 11월부터 1월까지 해가 빨리 지는 시기를 이용하여 가든을 불 빛으로 장식하고 관리비를 충당하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시작되면 이곳 저곳의 숲에서는 드라이 아이스를 쏘아 안개속을 헤매는 형상을 만들고 형광 불빛은 사람의 눈을 신비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데스칸소 안에 특별하게 자리잡은 일본 정원에는 수 십개의 붉은 등을 달아 놓아 얼핏 홍등가를 연상시키고 있었으나 가까이 가니 연못과 정자와 다리가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인공이 아닌 자연이 아름답다. 그 들 나름대로 지닌 특성을 잘 지키며 살기 때문이다. 냉이가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시기하지 않고 도토리가 참나무에 기죽지 않고 스스로 다람쥐의 먹이가 되어주는 아름다움이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름이 생기던지 두 턱이 되던지 자연현상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오늘 데스칸소 가든에 많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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