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구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23
전체:
13,851

이달의 작가

Chuck


 새로나온 詩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 - 천양희


남편의 실직으로 고개 숙인 그녀에게


엄마, 고뇌하는 거야?

다섯 살짜리 딸아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고뇌라는 말에 놀란 그녀가

고뇌가 뭔데? 되물었더니

마음이 깨어지는 거야, 한다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아픈 말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

꽃잎 같은 아이의 입술 끝에서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이 나온 이 세상을

그녀는 믿을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기듯 시간을 넘기고 생각한다

깨어진 마음을 들고 어디로 가나 

고뇌하는 그녀에게 

구름은 심드렁 

나무들은 데면데면 

그래도 어머니가 있어서 

세상의 밥이 구수하다고 

슬픔 속에 성지(聖地)가 있다고 

응원하고 돌아오는 저녁 


아이들은 엉뚱한 소리도 잘하고 어디서 들은 말을 맥락 없이 옮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이 뜻밖에 사태에 적중할 때가 있다. '고뇌'는 '마음이 깨어지는 거'라고, 

뜻 없이 건넨 한 마디는 정말 엄마의 마음을 깨뜨릴 것 같다. 

그러나 아이의 말은 사태를 더 깊이 고심하게 해준다. 

고뇌는 그녀도 몰래 서서히 '삶'으로 바뀌어간다. 그것은 '꿈'을 통해서다. 

꿈은 상심을 담은 채로 현실의 재앙을 견디게 해준다. 

꿈이 있는 한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끝에는 다른 현실이 기다릴 것이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