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황인숙의 시
ㅡ 슬픔이 나를 깨운다 ㅡ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 지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 
 
 
ㅡㅡㅡㅡㅡㅡ 
 
슬픔은 기쁨과 맞물려 있다
슬픔이 없이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잃음이 슬픔이고 얻음이 기쁨이다
잃음의 슬픔이 없이 얻음의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슬픔이 
나를 깨우면 일어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주면 울고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면 답하고 
 
슬픔이
나를 일으키면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하고
책을 펴고, 전화를 받고, 세숫물을 데우고 
 
슬픔이
조심스레 식사를 하지 않겠냐고 권하면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어라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있을 수 있다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