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56,636

이달의 작가

닭의 해를 맞으며

2018.03.30 07:42

라만섭 조회 수:6

닭의 해를 맞으며

내가 태어난 해의 십이(12)지간은 닭이다. 내 어머님도 닭띠, 아내도 닭띠 동갑이다. 선친께서도 은퇴 후 한때 양계장을 경영하신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닭이라는 새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올해(2017, 정유년)는 닭의 해 라고 한다. 닭의 입장이 돼서, 닭의 삶을 한번 조명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 한다. 닭 콤뮤니티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소회를 밝히는 일이 되겠다.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 인간들은 내가 새벽을 불러온다고 생각 했다. 만물이 다 잠들어 있을 새벽에, 나는 눈과 피부로 빛을 흡수 하고 새벽 1시쯤이면 나의 첫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시간에 맞추어 인간들은 제사를 올렸고, 새벽 5시경의 우렁찬 두 번째 울음은 어둠을 거두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됐다. 그들은 나를 새벽을 알리는 영물이라고 여겼다. 삼국 시대에는 나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도 불렀고 고구려의 무용 총 천장에는 내 그림을 그려 역사에 남겼다. 그들은 내가 대보름날 새벽에 열 번을 울면 풍년을 예고해 주는 징조라고 좋아했다.

인간들은 수탉인 나에게 계유 오덕(鷄有五德)이라 하며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칭송한다. 나는 십이지(12)중 유일한 조류로서 머리에는 벼슬을 상징 하는 관()이 위용을 풍기고(), 발톱과 주둥이로는 적과 싸우고(), 외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 하고(), 식솔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노력하고(), 어김 없이 세상에 새벽을 알리는() 것이 그것이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 가운데는 문()을 중히 여긴 닭띠 출신이 많은데 이황(퇴계, 1501辛酉生)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겠다. 한 평생 덕을 쌓으며 군자의 길을 걸었던 그들의 삶을 한번쯤 헤아려 봄 직하다.

나의 조상은 공룡이다. 학자들은 6천만년전에 살았던 공룡의 단백질이 나의 것과 같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나의 조상들은 원래 동남 아세아의 밀림에 살았는데 인간들의 가축으로 차츰 길들여 졌다. 기원전 이집트의 도자기에는 내 모습이 그려 져 있는데 고대인들은 나를 잡아먹기 보다는 나의 신체 일부를 잘라서 점() 보는데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언제나 내가 보람으로 생각하는 바는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가 인간에게 꾸준히 기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지구 구석구석까지 우리를 데리고 갔다. 인간의 인구 증가율이 식량 공급을 훨씬 초과할 것이라는 말사스( Malthus)의 경고는 내 종족의 희생적 정신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다. 우리의 꾸준한 산란(産卵)은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의 결과가 아니라 배신을 모르는 우리의 희생에 힘입었다고 본다. 인간 때문에 우리가 타고난 자연 수명 10년을 다 채우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종족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다른 조류들과는 달리 우리가 전통적으로 일부 다처제를 택하는데 있다고 한다.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 때로는 내가 다소 허풍을 떤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수탉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었다는 일화를 들어, 내가 악을 물리치는 새라고 믿는다. 한때 나폴레옹은 내가 위대한 프랑스의 상징이 되기에는 자격 미달이라고 폄하란 적도 있으나, 그의 실각 후에 나는 다시 옛 자리를 되 찾게 되었다. 아침을 불러오는 새, 군대 나팔 소리와도 같은 우렁찬 나의 울음 소리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나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 때문이다. 이렇듯 프랑스인들은 내가 아침과 희망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혁명기간에는 내 모습을 닮은 모자를 쓰고 싸웠다. 또한1998년의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나를 닮은 마스코트가 세계에 널리 알려 지기도 했다.

5천년전만 하드라도 나에게는 억센 날개로 날아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들쥐를 낚아 채며 창공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 어쩌다가 인간들에 길들여져, 지금은 매일 그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들은 우리를 사정 없이 잡아 먹는다. 우리를 죽여서 요리해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 이다. 우리 종족이 그들에게 희생 당하는 숫자는 너무나 가공할 천문학적인 것이어서 굳이 구차하게 밝힐 생각조차 없다. 우리가 생산하는 계란만 해도, 미국 인구를 3억으로 치고 하루 1인당 소비량을 1로 가정할 때 1년이면 무려 1천 억 개가 넘는 엄청난 숫자가 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가혹 하다. 수난의 연속이다. 조류 인푸르엔자(AI)의 창궐은 우리의 비운을 재촉한다. 대량 학살로 떼죽음을 당한다. 만약 나의 종(Species)이 멸종 된다고 가정할 때, 인간이 타조 알이나 메츄리 알로 만족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인간이 주는 항생제 먹이를 열심히 먹으며 살아 남았다가, 종국에는 그들에게 잡아 먹히게 마련인 것이 우리의 타고난 숙명이던가.

 

() () () () () 타고 난 덕성으로

한평생 인간을 위해 온몸을 사르건만

삼계탕에 목숨 거는 처량한 신세

전생의 업 지고 가는 도리 만당한 내 족속들

이리도 아리아리 서러울 소냐

두어라! 말못하는 속사정 뉘라서 알리오

윤회에 희망 걸고 영혼 찾아 구 만리

 

2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