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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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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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하나님저에게가 아니에요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이지요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채전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너무 그러지 마시어요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계간 《시와 시학》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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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시골과 소도시 공주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장기초등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던 중 췌장에 이상이 생겼음을 발견하고 병원에 갔더니 수술불가치유불가라는 진단을 받았다시인은 그때의 상태를 담당의사의 말을 빌러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죽을 사람이 왔군요너무 진행되었습니다옛날 사람은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까지는 가지 않습니다수술해봐야 건질 것이 없겠습니다어떤 의사도 이런 환자를 맡기를 원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영정사진까지 준비했다고 한다그렇게 병석에 누워 죽음을 눈앞에 둔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무작정 하나님께 매달리며 살려주십시오살려주십시오.’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기도를 드렸다아내의 기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님 저는 절대로 혼자서는 공주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결단코 저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시인은 자신보다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기에그 마음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이 기도시를 마지막 편지처럼 썼다

 

  두 사람이 떼를 쓰듯 죽기 살기로 기도한 덕택인지 기적적으로 병은 호전되어 급기야 완쾌하기에 이르렀다그 과정에서 시인의 아내가 쓴 것으로 알려진 <너무 고마워요>란 제목의 시가인터넷을 통하여 퍼지면서 이 한 세트의 시는 감동을 배가시키며 독자들의 가슴을 뭉클뭉클 파고들었다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시인 남편에 못지않은 필력을 갖고 계신분이구나 하고 꽤나 놀라워했다얼마나 섬세하고 애틋하며 그 사랑이 간곡하든지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저린 마음이 총동원 범람하여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하나님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하나님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소름 끼치는 시가 나태주 시인의 아내 글이 아니라 이정록 시인이 아내의 답시 인양 쓴 것이란 사실을 며칠 전에야 알게 되었다최초의 감동에는 약간의 스크래치가 생겼으나 이 완벽하고도 놀라운 빙의에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