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리

2018.10.10 14:47

조형숙 조회 수:7922

  귀뚜라미 한 마리가 어디에선가 나타나 마루를 돌고 있다. 한국에서는 많이 보았었는데 미국에서 보기는 오랫만이다. 잡으려 하니 톡 톡 꽤 높이, 멀리 달아난다. 튀는 곳으로 따라가 바닥에 앉기를 기다렸다. 몸이 다치는 상처를 주면 안되겠기에 신문지를 두르르 말아서 살짝 건드려 기절만 시키고 문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 붙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살인죄로 형을 살고 있던 어느 죄수가 살생을 하면 안된다는 뉘우침이 있었다. 옷에 있는 이를 잡아 감옥 창 밖으로 던졌다는 우스개 소리다. 창 밖에서 이는 바로 얼어 버렸을테다. 내가 보낸 귀뚜라미는 정신차리고 살아서 잘 갔겠지. 

 
   귀뚜라미의 몸은 진한 갈색에 복잡한 얼룩점이 있으며 8-10월에 나타나 풀밭이나 인가 주위에 살아 정원이나 뜰 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머리에는 두개의 더듬이가 있고, 몸은 연미복처럼 날씬하게 빠진 삼지창 모양의 꼬리깃을 하고 통통한 다리는 메뚜기를 닮았다. 야행성으로 밤이 찾아오면 수컷이 가을을 알리는 울음을 운다. 아름답고 운치가 있어 가을의 낭만을 만끽하게 해준다. 울음소리는 아주 다양하고 소리에 가까이 가면 조용히 있다가 멀어지면 다시 운다. 어릴적에는 우는 소리를 귀뜨르르 뜨르르라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첩스첩스나  로로로로라고 표현한다. 꼬끼오 하는 닭 우는 소리를 카커둘둘두라고 영어 시간에 배우면서 너무 이상해서 아이들과 깔깔거리고 웃던 중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 어렴풋이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아쉬운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고, 가을 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먼 추억속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자장가가 되기도 했다. 고독한 사람의 벗이 되기도 했다. 동요에는 유독 귀뚜라미의 노래가 많다.
 
  "귀뚤 귀뚤 귀뚜라미 숲에서 울 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에 멀리 떠나간 동무가 그리워져요.
   정답게 손잡고 뛰놀던 내 동무. 그 곳에도 지금 귀뚤인 울고 있겠지."
 
   화곡동 주택에 살 때였다. 그 날은 불을 끄고도 잠이 오지 않았던 가을 밤이었다. 귀뚜라미가 요란하게 울고 있다가 뚝 그쳤다. 사방은 적막했다. 왜 그럴까? 연주가 끝이 났나 보구나 생각하고 다음 연주를 기다리는 틈새로 다른 소리가 들렸다. 아주 조용하게 마루 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긴장하고 귀를 기울였다. 마루 미닫이 문이 아주 천천히 옆으로 밀리는 소리 였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었다. 분명히 잠구었는데 어떻게 열리지? 두려움이 확 몰려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전에도 도둑이 들어 왔었던 일이 떠올라 소름이 확 돋았다.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 용기를 내어 불을 켜고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후닥닥 도망치는 발자욱 소리가 마당을 지나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며 방 바닥에 털석 주저 앉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문 단속을 다시 하고 불을 끄고 누워도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다시 시작되는 귀뚜라미의 분주한 연주를 들으며 스르르 잠에 빠졌다. 소시민의 집에서 무엇을 가져가려고 했을까? 형편이 오죽했을까? 위험을 감수하고 남의 집을 엿보는 것을 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 이었다. 
 
   이제는 귀뚜라미와 낭만에 젖어 있을수만은 없는 것같다. 한국에 이삼구씨는 귀뚜라미를 미래의 대체 식량으로 생각하고 연구한다. 바로  '식용 곤충 귀뚜라미 사업'이다. 전 세계에 닥칠 수 있는 식량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식량 전쟁을 준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식량은 번데기다. 어렸을 때 작게 자른 신문지를 두루루 말아 그 안에 담아 주던 번데기는 서민들의 애호품이었다. 들판으로 다니며 볏줄기에 꿰어 돌리고 놀던 메뚜기도 맛있는 식량이었다. 귀뚜라미도 식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곤충의 생태 현황과 사료 수급, 경제성을 고려하면 한국에 딱 맞아 떨어지는 곤충이 귀뚜라미라고 한다. 귀뚜라미는 지구에서 인간보다 더 적응을 잘하며 많은 영양분을 만들어 낼수있다고 한다. 또한 식용 곤충의 연구는 농가 소득 증대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귀뚜라미는  번식력이 빠르고 생존 능력이 탁월하여 공급만 가능하다면 훌륭한 식량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도 인류의 미래식량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이삼구씨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은 미주문학 2018년 겨울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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