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 보헤미안 랩소디

2018.12.29 15:42

서경 조회 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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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도 오랫만이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본 건 더 오래간만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보헤미안 랩소디>. 제목부터 페이소스를 느끼게 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영국 록 밴드 ‘퀸’과 리더 싱어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이야기다. 난, 영화를 보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천재성보다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더 컸다. 
  그는 인종 차별을 받는 이방인이었고, 도드라진 앞니로 외모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외면하는 성 소수자였다. 게다가, 보수적 종교 신념으로 반듯한 아들로만 키우려는 아버지와의 갈등은 그를 점점 내면의 동굴로 가두어 버렸다. 
  그런 그에게 음악은 내재적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무대만 올라 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치, 여기가 내 있을 곳이란 듯이. 하지만, 삶이란 늘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화려한 스타 생활이 곧 행복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었다. 
  약혼 반지까지 건넬 정도로 사랑한 여자 친구 메리가 있었지만, 프레디는 자신조차 자제하기 힘든 성 소수자로 결혼을 포기한다. 6년간 연인 관계를 맺어 온 메리도 프레디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한 여인으로 그 곁에 머물 수는 없었다. 그녀는 프레디를 떠나는 대신, 영원한 친구로 남았다. 프레디도 재산의 절반을 유산으로 물려줄 정도로 죽는 날까지 소울 메이트로 메리를 사랑했다.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메리를 옆집에 살도록 하고 외로울 때면 등불을 껐다 켰다 하며 창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서야 잠드는 모습은 참으로  짠했다. 평범한 삶조차 비껴간 그들의 인연이 마음 아팠다. 
  수만 명의 청중이 열광하는 공연장을 떠나 집으로 오면 그는 또 혼자 남았다. 일반인도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데 떠나갈 듯한 환호와 스포트 라이트를 받던 그가 한순간에 홀로 되었을 때, 그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하지만, 외로움도 선택이요 그 해소 방법 또한 자신의 몫이다. 
  각각 개성이 강한 멤버들의 크고 작은 다툼과 연이어지는 공연에 대한 회의가 들 즈음, 그는 솔로 전향의 길을 택한다. 물론, 그는 돈을 쫓아 움직이거나 허명을 찾아 움직이는 속물이 아니었다. 솔로 전향은 에너지 충전을 위한 새로운 탈출구였을 뿐이다. 밴드를 떠난 그는 더 철저한 외로움에 휩싸여 고독한 방랑자가 된다. 
  그의 음악 재능은 절정에 올라, 가는 곳마다 환영 받지만그를 빨아 먹으려는 쇠파리 속에서 밤마다 파티를 열며 망가질대로 망가진다. 차원이 다른 기상천외한 파티와 늘 200여 명이 머물며 나누는 문란한 성 파티는 그를 육체와 영혼의 파멸로 몰아갔다. 그는 가서는 안될 길로 들어섰다. 그 댓가는 너무도 커서 생명을 담보로 하는 파탄이었다. 
  어느 날, 그는 정신을 차린다. ‘썪어가는’ 자신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그는 쇠파리들을 내쫓고 예전의 순수했던 자기를 찾아 나선다. 역시, 그가 돌아갈 곳은 옛친구들이 있는 밴드 ‘퀸’이었다. 
  그 곳은 그의 음악적 고향이요 모태가 아닌가. 그 곳엔 무명 시절부터 긴 여정을 함께 걸어 온 친구들이 있다. 기타의 귀재 브라이언 메이, 미남 드러머 로저 테일러, 조용한 베이시스트 죤 디콘. 이들은 모두 명문 대학에서 만난 엘리트요, 음악에 미친 친구들이었다. 
  프레디는 자기를 다시 받아 줄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완전히 내려 놓고 친구들에게 용서를 청한다. 진정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겸손된 행동이다. 친구들은 그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받아준다. 울컥대던 기분이 여기서 한계선을 넘어 어떤 수분을 자극했다. 
  화해의 아름다움. 첫 눈 내린 거리를 다시 함께 걷는 순수 우정에 감복했다. 프레디는 에이즈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고 고백한 뒤, 남은 시간을 음악에 매달리고 싶다고 하소했다. 친구들도 슬픔을 뒤로 한 채,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며 음악으로 함께 한다.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영혼을 불사르는 그 비장함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공연 현장에 있는 듯한 박진감과 함께 연주 중에 주고 받는 깊은 눈빛과 엷은 미소 하나까지 감동이었다. 
  아프리카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한 거대한 콘서트 라이프 에이드에서의 퀸 공연은 그들이 나눈 ‘최후의 음악 만찬’이었다. 1985년 7월 13일, 영국과 미국이 합작한 이 공연은 십 수억의 인구가 시청하고 9억의 청중이 지켜 보고 열광했다. 21분간 보여준 퀸의 신들린 연주와 땀범벅이 되어 청중을 휘어잡은 프레디의 퍼포먼스는 완전 압권이었다. 
  아름다운 우정이 만들어 낸 이 환상적 무대는 “퀸이 쇼를 훔쳐 갔다!”는 극찬을 들을 정도로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공연이 되었다. 결국, 이 신들린 퍼포먼스는 일반 관중 앞에서 보여준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그들은 2001년, 네 명 전원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우리는 부족응자로서 부적응자들을 위해 공연하는 밴드다!”라고 천명한 프레디 머큐리. 마지막 촛불 심지가 다 탈 때까지, 그는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가 죽기 6개월 전에 만든 뮤직 비디오 마지막 장면은 “I still love you!” 라는 말로 끝난다. 그가 남긴 마지막 사랑의 고백이다. 
  에이즈라는 불명예스런 병명은 끝내 천재적인 뮤지션의 이름을 더럽히지 못했다. 그는 에이즈 환자로 죽은 게 아니라, 진정한 뮤지션으로 살다 갔다. 아니, “단순한 뮤지션이 아니라 전설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간 그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1991년 11월 24일 늦가을, 그의 나이 45세 때의 일이었다. 죽기 하루 전날, 온갖 루머에도 비밀로 일관했던 에이즈 병명을 알리며 게이 커밍 아웃을 한 뒤 마음 편히 떠났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즉시 화장해 줄 것과 산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오래도록 울도록 잡아두지 말라는 거였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산 자의 몫’이 있단다. 살았을 때는 산 자로서 ‘몫’을 다 하고 죽을 때는 겨울 동백 한 송이 뚝 떨어지듯 죽음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고 간 프레디. 
  지금도 그의 유골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마지막까지 팬 서비스를 한 진정한 퍼포먼스였다. ‘산 자의 몫’은 그가 우리에게 묻는 물음이기도 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가 간 지 만 17년. 지금도 프레디 머큐리는 열정적 음악으로 살아 있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팬들에겐 전설로 남은 그를 친구들은 수줍음이 많고 젠틀했으며 친절했다고 전한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 되는가는 죽은 자의 몫이다. 젊은 날, 자신의 삶을 잘못 관리한 과오는 있으나 나는 프레디 머큐리를 멋진 뮤지션으로 기억할 것이고 메시지가 담긴 그의 노래를 언제까지나 사랑할 것이다. 
  한 인간으로 살다간 삶은 누구에게나 드라마틱하다. 한 권의 소설로도 부족하여 전집을 내도 시원찮을 질곡의 삶이 있다. 인생은 ‘생,로,병,사’ 단 넉 자로 축약되지만, 한 자 한 자 넘어가는 그 계곡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힘든 지는 다 안다. 예술인들은 제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제 3자가 되어 그들의 삶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프레디 머큐리도 그 수많은 증언자 중 한 명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너무도 안일하게 사는 것같다. 어쩌랴. 문인 반열에는 들어 있으나 재능은 없고 그릇이 작으니. 내 살다가는 점 하나 남기지 못해도 소소한 기쁨을 나누며 살다 가는 것으로 족할 수밖에. 
  턱선이 프레디와 닮아 뽑혔다는 ‘라미 말렉’의 연기는 이인동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발레리나 같이 가볍게 밟는 현란한 스텝과 눈빛, 립 싱크, 행동 하나가 하나가 생전의 프레디와 똑 같았다. 후일담에 의하면, 라미 말렉은 영화를 통해 만난 메리역 루시 보인턴과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되었다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통해 또 한 사람의 명배우를 알게 된 것은 하나의 보너스다. 영화 전편에 흐르던 22곡이나 되는 퀸의 명곡을 다시 감상하게 된 것도 눈과 귀의 호사였다.  
   잠자리에 들었어도 그가 절규하듯 부른 “Mama! I don’t wanna die...” 라는 가사가 자꾸만 이명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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