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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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dc3908d2aca44740009528ec1c3fa719.jpg : 가나의 혼인 잔치(The Wedding at Cana)

사진: 파올로 베로네세 作(1563년) "가나의 혼인 잔치(The Wedding at Cana)"

1

나는 고구려 출신의 승려 현각(玄覺)이다.

 

내가 기록한 이 견문록(見聞錄)은 모두 사실이다.

단 한점의 허구도 없다.

 

동방에서 온 낯선 이방인인 내가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돼 이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아니, 행운이라 하기 보다는, 그 어떤 위대한 힘에 이끌린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서술(敍述)에 앞서 내가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유대아 땅에 오게 된 동기부터 밝히는게 순서일 것이다.

 

승려인 나는 서력(西曆)22년 해에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구도정진하기 위해 고국인 고구려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대승불교의 요람인 쓰촨(四川省)에서 바랑을 푼 나는 이곳에서 해후한 청두 출신의 승려 피우진과 함께 3년 간 도반수행(道伴修行)을 하며 석가세존의 진리를 깨우쳤다.

 

그 후 나는 도반과 함께 인도로 가 2년 동안 펀잡 주 일대를 순행 하며 깨달음을 닥달 했다.

 

때는 서력 27년께 였다.

 

나는 이 해에 인도를 떠들썩하게 한 유대 출신 사내의 기행(奇行)을 접했다.

 

사내는 동서고금을 통해 단 한번도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은 엄청난 일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나는 사내가 인도인들에게 보여준 다양한 형태의  기적과 특이한 어법들을 지근거리에서 듣고 지켜보며 그의 모든 언행을 토씨 하나 소홀이 하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

 

사내는 대중들의 우상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돈과 명예를 거머쥐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사내는 전혀 아니었다.

자신을 추종하고 따르는 수많은 이들에게 단지 ‘’우애(友愛)’를 격려할 뿐, 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마치 초월자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사내의 몸가짐은 차림새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싸구려 면마()로 만든 튜니카 형의 통자루 옷은 곳곳에 기운 흔적이 역력했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맨발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탓 일까?

얼굴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삐쩍 말랐다. 피부는 다소 거칠었고 핏기마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눈동자에서 발하는 빛은 매우 강렬했으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 해서, 그의 눈 빛이 상대를 주눅들게 하거나 거부감을 주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인도인들은 그의 자애로운 눈 빛에 이끌렸고, 사랑했으며 또 한 그 눈빛을 통해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군중들은 사내의 모습에서 천국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내는 주로 인도의 캐시미르 지방을 돌며 불가촉민들과 생활했다.

개돼지보다 못한 형편없는 삶을 사는 이들을 격려하며 병든 자를 고쳐주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예비하는 마음가짐을 설파했다.

 

자신이 몸에 걸친 통자루 옷의 옷섶을 부여잡고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사내는 서로 사랑해라. 미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무리들을 향해 사랑을 강조 했다.

 

이렇듯 애정을 우선시하는 현자는 지금껏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은 사멸하지만, 사랑만은 영원하다며 가족과 이웃이 사랑으로 맺어질 때 비로서 하늘나라가 지상에 펼쳐진다고 말했다.

인도인들은 사내의 말을 채록(採錄)해 구전(口傳)으로 옮기거나 또는 파피루스에 기록해 경전으로 삼았다.

 

인도의 잠무 케시미르 지방에서는 사내의 잠언이 복음서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유명세는 비단 기층 계급 뿐만 아니라 브라만과 식자층 에게까지 파고 들었다.

특히 브라만들은 기층민들이 사내의 설법에 열광하는 것에 주목, 그의 말을 낱알을 가리듯 분석해 나갔다.

 

이렇듯 사내가 짧은 기간 동안 인도에서 펼친 행각( 行脚)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가운데 그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때는 서력 28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서력 29년 초순께 사내가 유대아 땅 갈릴리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나도 황급히 따라 나섰다.

 

인도를 떠나 파키스탄과 이란, 이라크를 거쳐 이스라엘에 도착한 여정은 대략 6개월이었다.

무려 45백여 킬로미터를 횡단한 것이다.

물론 도보 횡단을 하는 길목에서 수많은 아랍 상인을 만났고 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인들과 교역이 활발했던 아랍 상인들은 나를 중국인으로 오인해 융숭한 대접을 베풀었다.

먹고 마시며 낙타를 제공 받은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당초 고달프기만 했던 여독은 씻긴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유대 땅을 밟은 나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귀동냥을 통해 갈릴리로 향했다.

 

때는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 절기(節氣)였다.

 

고향인 고구려의 변방 시골처럼 궁벽(窮僻)한 지방인 갈릴리 유대 마을은 장소를 불문하고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애굽 탈출을 기념하는 축제행사 때문 였다.

 

출애굽.

 

이집트 파라오 통치하에서 무려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 모세에 이끌려 애굽을 탈출한 사건이다.

 

구약의 압권인 모세 5경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그것(출애굽)은 신이 인간사()에 개입한 장엄한 파노라마.

 

유월절 축제는 이렇듯 유대인들에게 치욕과 자부심을 동시에 기리는 큰 행사인 것이다.

 

오순절, 초막절과 더불어 3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 축제는 3월 말에서 4월 초순 사이에 7일 간 펼쳐진다.

 

한편, 유대인들은 유월절 축제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시나고그(회당)에 바칠 현물을 구입하기 위해 장터로 나갔으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눌 음식 장만에 바빴다.

 

갈릴리 호수 인근에 위치한 작은 마을 가버나움의 유대인 가정도 유월절 채비에 한창이었다.

 

집안의 가장인 아빠는 야훼에게 바칠 귀중품을 사기 위해 한해 동안 비축한 양털을 꺼내 나귀 등에 얹혔다.

양털을 팔아 돈을 마련키 위해서였다.

 

여전히 새색시처럼 고운 자태를 드러낸 엄마는 시누이와 함께 갖은 향료로 버무린 음식을 그릇에 옮기느라 비지 땀을 흘렸다.

 

튜니카처럼 생긴 통자루 옷을 몸에 걸친 시아버지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어린 손자 손녀와 함께 하메쯔(이스라엘의 5대 곡식인 밀, , 보리, 귀리, 스펠트 밀로 만든 빵)를 화덕에서 구워냈다.

 

부엌과 연결된 거실에서는 후덕하게 생긴 시어머니가 붙박이장에서 레바논 산 닥나무로 만든 투박한 나무 궤짝을 끄집어냈다.

다윗의 별이 장식된 가구였다.

 

시어머니는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은 궤짝을 조심스럽게 열고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 온 메노라(야훼를 상징하는 촛대)와 토라경전을 꺼내 깨끗한 천으로 먼지를 닦았다.

시어머니는 그러고는 경건한 자세로 두 개의 성물(聖物)에 입을 맞춘 뒤 이를 제례 상에 올려 놓았다.

 

때는, 태양이 작렬하는 한 낮이었다.

 

중근동 지방 특유의 건조한 일기 탓에 체감온도는 더했다.

하지만 축제 주간이 아니던가.

때문에 더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서 3()가 동거하는 이들 가족은 마냥 즐거울 따름

이었다.

 

이렇듯 유대인들의 유월절 행사 준비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분주하기만 했다.

 

같은 시각.

 

나사렛에서 약 7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가나(Cana)에서는 보기 드문 큰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다름아닌 결혼식이었다.

 

내가 가나의 혼인 잔치라는 머리 글로 현장을 묘사한 이 결혼식은 새로운 언약(새 복음)의 아름답고도 숙연한 서사시가 됐

다.


결혼식의 주연은 사가랴와 요한이었다.

아름답고 우아한 요한의 신부는 예루살렘에서 왔다.

신부의 부모는 유대 사회의 최상층 계급에 속했다

아버지는 유대교 최고 의회 기관인 산헤드린 최고의회 의원이었다.

밧세바라 불리운 신부는 신랑보다 나이가 5살 어렸다.

반듯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 과묵하고 신중한 외모를 지닌 신랑은

25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신랑 요한의 집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하객들로 북새통이었다.

 

남녀 모두 합쳐 112명으로 집계됐다.

 

정방향으로 축조된 신랑의 집은 가나의 여타 주택보다 규모가 컸다.

이는 신랑의 가족 재정 상태가 건실하다는 것을 뜻했다.

 

이처럼 풍족 했기 때문일까 연회장으로 개조한 넓직한 테라스도 가나 지방에서는 매우 규모가 큰 그레코로만 스타일로 장식해 집의 우아함을 더했다.

 

하객들로 넘쳐나는 연회장의 풍경은 말 그대로 흥청망청 이었다.

 

피리와 북, ()을 연주하는 취주악대의 신명 나는 가락과 무희들의 현란한 춤, 그리고 하객들이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내뱉는 걸죽한 입담은 연회장의 흥취를 더했다.

 

이즈음에서 잠시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의 이력을 살피고 지나가자.

 

요한은 일찍부터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나이 10세때 율법서인 토라를 통달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요한의 부모는 아들의 뛰어난 감수성과 지적 능력을 진즉에 간파했.

조기 교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부모는 아들을 고향인 가나에서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보냈다.

 

요한은 당대의 석학 사무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사사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던가.

스승이 전수한 윤리학을 비롯한 수학과 역사, 미학 등 각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나타냈다.

 

신분의 엄격함을 따진 그 시대에 신부의 아버지가 기꺼이 요한을 사위로 맞은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렇듯 제자는 스승의 지혜의 원천인 지적 자양분을 마치 모유를 쥐어 짜듯 자신의 것으로 모두 흡취한 뒤 고향으로 낙향했다.

 

요한은 자신의 뛰어난 학문만으로도 부와 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

허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학문을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신념은 단순함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이었.

 

그는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시대를 거스르는 어두움을 거세할 빛이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다.

 

요한이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메시아 출현에 대한 각주(脚註)를 첨언한 이유는 암흑을 밝힐 빛이 올 것이라는 확신에서 였다.

요한의 이같은 믿음은 결코 과대망상이 아니었다.

그 빛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묘(玄妙)한 신성(神聖)일 것이다.

 

요한은 가나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빛의 도래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바란 대로 빛이 마침내 세상 속으로 왔다.

요한은 한 눈에 빛을 알아보았다.

 

그 빛이 지금 요한의 테라스 중앙에 앉아 있다.

 

귀빈석을 차지한 현각은 사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다름아닌 인도 캐시미르에서 성자로 추앙 받은 인물이었다.

현각은 사내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 속에서 사내의 기행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현각은 지근거리에서 사내를 살피며 마치 해부학도처럼 그의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떼어내 파파피루스에 담았다..

 

인도에서 본 사내는 피폐한 외모에 허름한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그의 얼굴은 신비스런 광채로 덮여 있었다.

피부도 혈색도 매우 좋아 보였다.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 탓일게다.

몸에 걸친 옷도 희고 깨끗했다.

과거 인도에서 착용한 통자루 옷과는 비교도 아니 될 정도로 고급스러워 보였다.

모르긴 해도, 그의 옷 매무새는 혼인 예식에 대한 예를 특별히 취한 차림새였을 것이다.

사내는 자신의 좌우를 차지하고 있는 하객들과 간간히 대화를 나눴다.

자신의 오른편 곁에 앉은 중년 여성은 다름아닌 마리아였다.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 해 준 또 다른 빛의 여인.  

그리고 왼편 좌석에는 40대 초반으로 여겨 지는 키가 매우 작은 사내가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떠벌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다. 직업은 고기를 낚는 어부였다.

시몬 옆자리에는 혈기왕성한 청년 안드레아가 과묵한 표정으로 시몬의 입담을 주워 담았다.

키가 작은 사내는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사내를 향해 깍듯이 예를 차리며 그를 라바이(선생)로 칭했다.

그런가 하면, 안드레아는 그를 가리켜 예수님이라고 불렀다.

, 현각은 비로소 사내의 이름이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속)


이산해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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