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딸의 가구 리폼

2019.10.08 22:37

서경 조회 수:80

딸의 리폼.jpg



놀라운 변신이다.
아키아에서 사 온 대수롭잖은 서랍장이 완전 고가구로 변신했다.
일 마치고 온 시간 틈틈이 무언가 꼼지락거리는가 싶더니 이렇게 변모를 시켜 놓았다.
150불짜리가 거의 $1500 짜리로 보인다.
하하, 엄마라서 좀 부풀렸나?
딸은 어릴 때부터 무언가 꼼지락거리며 노는 걸 좋아했다.
박스로 담을 칠망정, 거실 한 모퉁이에 자기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림을 그리거나 잡지를 오리거나 붙이며 자기 왕국을 즐겼다.
선물을 주거나 카드를 선물할 때도 항상 제 손으로 만들어 주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크리스마스를 2주 정도 남겨 두고 딸이 바빠졌다.
헌 옷감을 속에 집어 넣고 무언가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 프로젝튼가보다 생각하며 버려 두었다.
한 주가 지나자 베개 비슷한 것을 만든 뒤, 그 위에 색깔 다른 옷감으로 스펠링을 만들어 한 자 한 자 테잎으로 붙였다.
스펠링은 I,L,O,V,E,M,O,M 여덟 자였다.
그 다음 날부터 테잎으로 자리 잡은 글자를 바느질로 꿰매기 시작했다.
바느질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애는 홈질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옷감을 다른 옷감 위에 붙일 때는 아프리케수 기법으로 마무리해야 깔끔하다.
손재주 없는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나는 여고 가사 시간 때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한 뜸 한 뜸 떠 나가는 폭과 높낮이가 맞아야 가지런하고 예쁘다며 시범을 보였더니 신기해 하고 좋아했다.
일일이 바늘질로 꿰어 붙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곧 방학이 올 텐데 그때까지 프로젝트 못 마치면 어쩌나 싶어 서둘라고 채근을 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학교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말했다.
한 편으로는 감동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체 모를 이 물건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딸 아이는 ‘elbow pillow’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엄마를 위해서 팔꿈치 받침개를 만들어 준단다.
침대 위에 앉아, 베개로 팔을 고우고 책을 읽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 왔던 모양이다.
선물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 모습이 대견했다.
고사리 손으로 완성한 글자는 다섯 자, 이제 M,O,M 석 자만 남았다.
크리스마스가 목전에 다가 오고 있었다.
그 날도 아이는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저만의 작품을 찾았다.
아뿔사, 이게 웬 일인가.
눈 씻고 봐도 없다.
나는 손을 댄 적이 없는데.
수수께끼는 저녁에 삼촌이 온 뒤에야 풀렸다.
집안 대청소를 하며  별 거 아닌 거 같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거다.
총각 삼촌에게는 그것이 그저 그런 허접 쓰레기로 보인 모양이다.
그날따라 바깥 큰 쓰레기통이 나가는 날이라 청소차는 이미 아침에 다녀간 뒤였다.
근 열흘을 공들여 만들어 온 ‘작품’이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렸다.
아이는 울고 또 울었다.
“이제 나는 엄마에게 줄 선물이 없잖아! “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돈 $10을 주며 카드는 만들고 이걸로 선물 사 오면 된다고 해도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결국, 딸은 자기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 안에 현금 $10을 넣어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대신했다.
딸아이가 꼼지락거리며 무엇을 만들 때마다 그때 받지 못한 ‘미완의 선물’이 떠오르곤 한다.
서너살 때부터 시작한 딸의 꼼지락 놀이는 커서도 변함이 없었다.
첫집을 장만하고서도 로프트를 두 개나 만들어 올리며 리모델링에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에 고양이 티거를 봐 주러 갔을 때는 부엌을 리폼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릴 때부터 하던 놀이는 직업으로 이어져 결국 패션 칼리지를 나오고 지금까지 패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창작하고 꾸미며 손놀림이 부지런한 딸이 부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내가 해 줄 일은 그저 격려 한 마디다.
“잘 했네!
“수고했네!”
“예쁘네!”
오늘도 나는 즐겨 쓰는 감탄사로 호들갑스럽다 할 정도로 리액션을 해 주었다!
“와우! 멋지네!”
“와우! 완전 엔틱이야!”
“와우! $150이 아니라, $1500은 되겠다야!”
딸아이는 어깨를 들썩하더니 함박 미소를 지었다.
비밀스러운 얘기지만, 손재주 없는 나는 죽다가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다.
관심은 있지만, 늘 바라만 보는 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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