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2019.10.29 10:16

조형숙 조회 수:83

   쉬카고에서 후로리다까지 17시간을 벤을 타고 다녀왔다는 올케의 전화를 받았다. 성결교단의 목사모임이 있었는데 남편을 먼저 보낸  목사 사모 두명을 초청하여 함께 참석했는데 올케는 그 중 한명이었다.

 

   5살이 어린 동생은 잘생기고 노래를 잘 불렀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의 모든 음악활동에 선봉장이었다. T.V.에 나가 노래를 부르면 지금의 아이돌처럼 인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혁신적인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 주에 한 번 노래 대결을 해서 이기면 별을 받았다. 다시 대결하여 별 5번을 받으면 정식 가수로 인정 받고 가수협회 회원이 되었다. T.V.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는 참 듣기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교회 일에도 열심을 다하고 전국 청년회(성청 연합회) 회장을 맡고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동생은 앞으로 나갈 길을 의논하려고 나에게 왔다.  화려한  현재, 잘나가는 가수를 계속해야할지 아니면 신학을 해야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성결교단의 목사 열분이 신학 대학에 추천서를 써 주었다. 나는 말했다. 가수 생활이 지금은 화려하고 돈도 많이 벌수 있지만, 반짝하던 시간이 지나가면 점점 초라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지금은 힘이 들겠지만 나이 들고 인품이 쌓여가면 그 때의 모습은 좋을 것 같다라고 해주었다. 동생이 기쁘게 서울신학대학에 원서를 내려고 언덕 길을 오를 때 하늘에서 엄마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드셨다 했다.
 
   서울신학에 입학한 동생은 유모어와 장난기 넘치던 행동에서 엄숙해지고 믿음 생활에 열심을 내었다. 특히 성결해지기를 노력했다. 과대표를 시작으로 학교 합창단을 지휘하고, 많은 학교일을 맡아했다. 기타치며 팝송을 부르던 사람이 성가곡을 부르며 복음과 은혜를 전하는 신학생으로 변화되어 갔다.  극동방송과 기독교방송에도 출연했다. 졸업후에 연세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중에 올케와 결혼을하고 쉬카고로 유학을 떠났다. 
 
    비행기표만 준비하고,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유학을 떠난 동생을 그 곳에 계신 장로님이 보살펴 주셨다. 12월 말에 도착하고 1월 신년하례식에 참석했다. 쉬카고의 명사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각자 소개를 하고 인사말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제일 뒷 순서가 된 동생은 "이제 막 도착한 막내로 소개드릴  말씀은 없고 대신  노래 한 곡 불러 드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하고 찬양을 한 곡 불렀다. 하례식이 끝나고 5명의 명사들이 나와 함께 일하지 않겠나라고 손길을 보냈다. 쉬카고 한인 방송국과 두 교회의 성가대 지휘를선택하고 바쁜 일정을 채워 나갔다. 방송국은 그 당시 출력이 약했고 빚도 있는 상태였는데 짧은 기간동안 빚도 갚고 출력도 키우며 경제적으로도 발전시켜나갔다. 학교공부와 방송국의 여러가지 일을 도맡아 해내었다. 그 때 조규현 목사를 모르면 쉬카고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었다. 한국에 나오면 빈 틈없이 짜여진 여러 교회의 설교로 형제들을 겨우 한번 정도 만나고 돌아갔다.
 
    내가 미국에 살게 되고 난 후의 일이다. 올케의 전화를 받았다. 열정적이던 동생에게 위암이 왔고 이제 암 세포는 머리로 옮겨져 몸의 벨런스를 잃고 자꾸 주저앉는다 했다. 남편과 급히 쉬카고로 갔을 때는 이미 정신을 잃었고 몸은 장작개비처럼 말라 있었다. 동생의 온유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막 죽음을 준비하고 떠나려는 눈이 쾡한 환자만 누워 있을 뿐이었다. 비통했다. 뜨거운 눈물이 마구 솟구쳐 올랐다.뭐가 그리 바빴는지, 왜 미리 손을 안 썼는지, 연락이라도 자주하지 않았는지  참 기가 막혔다. 워낙 바쁘니 병원 가기를 미루었을테고 누나와 동생들 걱정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음이 분명했다. 우선 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이었다. 한국에 있는 언니가 급히 찾아와  동생의 손을 잡고 울었다. 그리고  며칠 후 동생 조규현목사는 사랑하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하나님 다음이 남편이었던 올케의 슬픔을 어떻게 우리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올케는 우체국을 다니면서 세 아들을 잘 키웠다.  큰 아들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결혼하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고, 둘째는 음악목사로 아버지를 쏙 빼닮았고 결혼하여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셋 째는 수학 선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혼자 힘으로 잘키워낸 올케가 참 대단하고 고맙다. 성결교단은  어느 모임이나  빼놓지 않고 올케를 불러주고 소식 전해주고 있어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언제일지 모르는 동생을 만나는 그 날의 기쁨을 생각한다.
 
  이글은 2021년 5월 월보 '5월 회원 수필 감상' 에 수록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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