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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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너, 라는 여자

2019.11.23 15:27

이산해 조회 수: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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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시객 이윤홍의 걸작(傑作) 시 캡쳐



여자는 아름다웠다.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가졌다.

반듯하고 수려(秀麗)한 이목구비는 천하미색(天下美色)이었다.

 

피부는 백옥과 같았다.

몸매도 빼어났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애플힙은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았다.

가슴은 비너스 상의 그것과 같았다.

운동으로 다져진 어깨와 허리, 허벅지와 발목은 건강미를 더했다.

어깨 아래로 흐르는 짙은 흑발은 여자의 깔끔한 성격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키는 대략 1미터 75센티미터 였다.

여자로서는 큰 키다.

그래서일까?

체크무늬 셔츠에 빛 바랜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해 보였다.

신발도 가죽 구두가 아닌 캐주얼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자의 나이 52.

농염(濃艶)한 때다.

 

직업이 눈길을 끌었다.

남성(男性)을 다루는 비뇨기과 의사였다.

여자는 개인 병원을 운영했다.

코리안들이 대거 거주하는 오렌지 카운티였다.

병원 이름은 옥경(玉莖)’.

뛰어난 의료 시술로 병원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자의 손을 거친 시술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엄지 척을 해 보였다.

여자는, 작은 것은 키우고, 처진 것은 단단히 일으켜 세워 줌으로써 구겨진 남성들의 체면을 회복 시켰다.

때문인가?

여자의 명성은 남정네들보다 오히려 여성들 사이에 널리 회자(膾炙)됐다.

 

이유는 이랬다.

 

밤이 다가오면 공포와 두려움에 진저리를 친 남자들을 단 한번의 시술로 변강쇠를 만들었기 때문 였다.

하여, 남정네들은 물론, 오히려 여성들이 더욱 신바람이 나 엉덩이를 흔들며 여의사를 찬양했다.

그동안 남자 구실을 못해 구박덩이신세를 면치 못했던 코리아 타운 내 수많은 남성들이 보란 듯이 고개와 거시기를 빳빳이 세우고 상다리가 휘어지는 아침 밥상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의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지혜로웠다.

아는 것도 많았다.

여자는 시인이었고, 문예 비평가 였다.

정치 평론에도 해박했다.

이처럼 여자는 팔방미인 이었다.

 

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영혼을 겸비한 여자는 독신이었다.

때문에 여자 곁엔 늘 남자들이 득실거렸다.

코리아 타운에서 거들먹 거리는 남자들이 벼라 별 조건을 내걸고 여자에게 추파를 던졌다.

하지만 여자는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였다.

여자가 말했다.

나는 남자의 정분보다 즐거운 지혜를 사랑해.’

, 얼마나 도도하고 오만방자한 태도인가!

하지만 여자의 이같은 당당함은 오히려 남정네들의 가슴을 더욱 애타게 할 뿐이었다.

코리아 타운에서 자수성가한 어느 50대 중반 남성이 여자에게 구애를 했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무비스타 신성일과 독고성을 합성한 얼굴에다 식스팩 근육질 남이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이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그가 여자에게 결혼 조건으로 수백 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비롯한 전 재산을 주겠다며 무릎을 꿇었다.

허나, 여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냉소 뿐이었다.

이처럼 코리아 타운내 남정네들이 군침을 흘리며 여자를 유혹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여자는 남자들에게는 도도 했으나 어질고 겸손했다.

그래서인가.

LA 코리아 타운내 거주하는 코리안들이 여자에게 호감을 드러냈다.

 

여자는 일년에 한 두 차례 시()를 발표했다.

공개된 시문은 걸작(傑作)이었다.

절제된 운율이었으나 장엄했다.

쉬운 재료로 버무렸으나 독보적 이었다.

여자의 시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여자는 시를 완성 했어도 무언가 허접 스럽다 생각되면 매몰차게 글을 버렸다.

버려진 시의 문장이 빼어 났음에도 가차없이 뭉갰다.

 

여자의 이같은 완벽함 때문일까?

그가 세상에 내보낸 시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여자의 시를 통해 어떤 이는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천국을 보았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또 다른 이들은 여자의 시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게 됐다며 존경을 표했다.

 

여자는 뛰어난 의술로, 밤을 두려워 하는 남녀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그리고 시를 통해 사람들의 삭막한 가슴에 단비가 됐다

 

한편, 로컬 언론들은 최근 들어 윌셔가와 올림픽 블러바드 선상에서 주행 차량들의 잦은 접촉 사고가 빈번 하다는 소식을 톱 기사로 다뤘다.

다름아닌 여자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냐?

보도를 걷고 있는 여자의 빼어난 몸매에 현혹된 코리안 운전자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다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 팩트였다.

 

또 언론은 기획 기사를 통해 여자를 지독히 흠모한 어느 유명 시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 했다.

이와 함께 유명 시인이 여자에게 헌사(獻辭)한 마스터피스를 덧붙였다.

 

시제(詩題)는 이랬다.

 

, 라는 여자

 

맘에 들어

, 내 스타일이야

글에 매어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야무지게 끌고 가는 모습

좋은 말, 찾았다고 좋아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단호하게 잘라버리는 저 직성

독자들이 멋있다 환호해도,

뭔지, 알 듯 모를 듯

아무래도 한 표현이 맘에 안 들면,

무더기 아쉬운 환호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제 맘이 만족하는 그것을 찾아

목매듯 매달리는 저 시인의 자세

두 사랑

둥근 하나 사랑 속에 담아도

제 빛깔 제 모습 또렷이 빛을 내고 있는

, 라는 여자,

맘에 들어

, 내 스타일이야

 

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