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쥐털이슬

2021.12.16 14:26

서경 조회 수:85

쥐털 이슬.jpg

   쥐털이슬! 이름 뒤에 ‘꽃’이란 말을 붙여주기도 어색한 꽃. 처음 보는 꽃이고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다. ‘친구에게 들려주는 우리 꽃이야기’에 올라온 사진이다. 이런 요상한 이름의 꽃도 있었나 싶어 눈여겨 본다.

  사진은 순간의 포착이다. 이 순간을 잡기 위해 사진 작가는 몇 날 며칠을 기다리기도 하고, 한 순간의 동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인다. 대상과 눈맞춤 했던 한 순간은 다시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순간과 영원. 만남과 이별. 이 두 낱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되 서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숙명처럼 이어지는 운명이다. 한 번 만나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운명.
  어찌 꽃과의 만남 뿐이랴.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도 인연법에 따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가슴 시리고 쓰리지만 우린들 어찌하랴. 무릇 생명은 유한하고,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다. 쥐털이슬’이란 꽃이름을 보니, 생뚱맞긴 하나 어감이 주는 풍경이 하나 떠오른다.
  어느 비오는 날 퇴근 길이었다. 거리는 한산하고 오가는 차량도 없는 한적한 시간, 나는 파킹랏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움직이는 건 오직 나와 내리는 빗님 뿐.
  비 내리는 회색 풍경은 자못 감상에 젖게 했다. 비에 젖어 떨고 있는 가로수와 낯익은 명품 건물들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지나는 길 왼쪽 편으로 건물과 보도를 이어주는 대리석 계단이 보였다. 계단도 흠뻑 젖어 번들거렸다.
  무심히 지나치려던 눈길에 새앙쥐 한 마리가 들어 왔다. 회색빛 털에 참새보다 작은 체구의 새앙쥐였다. 어찌 보면 햄스터같이 보이기도 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갈 곳을 몰라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두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겁에 질린 새앙쥐는 고 작은 몸을 달팽이처럼 돌돌 말아 더욱 작아졌다. 여늬 때 같으면 나도 징그러워서 혼비백산 했을 터. 하지만, 왠지 떠날 수 없었다. 비에 젖어 떨며 나를 빤히 바라 보는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왔다.  
 
  ...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길을 잃고 헤매는 작은 새 한 마리 ... 
 
  갑자기 떠오르는 노래 한 귀절도 감상을 자아냈다. 연민의 정이 새앙쥐와 함께 나를 비 오는 거리에 오래도록 묶어 두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눈만 깜빡이며 내 처분을 바라던 새앙쥐는 적어도 자기를 해치지는 않을 거라 믿었는지 몸을 풀고 쪼르르 달아 났다. 내가 가려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저는 산타 모니카 블러버드가 있는 북쪽으로, 나는 윌셔 거리가 있는 남쪽으로.
  그리고 이후로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비 오는 거리에서 만난 한 순간의 눈맞춤. 비록 한 순간의 만남이었지만, 오래 도록 잊혀지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 ‘쥐털이슬’이란 꽃이름을 보자마자 그 영상이 떠올랐다. 왠지, ‘이슬에 젖은 쥐털’이 떠오르고 이슬은 다시 비로 환치 되어 그 날의 만남으로 나를 돌려 세웠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별엔 면역성이 약해진다. 그럼에도 세월은 야속하여, 나이 들수록 더 많은 이별을 예비해 주신다.
  한 두 달 동안 난 세 번의 이별을 만났다. 코로나 상황이라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 중 한 사람은 적어도 내게 ‘안녕’이란 인사 한 마디쯤은 남기고 갔어야 할 정인이다.
  그러나 그도 자신이 빨리 갈 줄을 몰랐던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더 잘 해 줄 걸. “...껄, ...껄’’ 후회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왜 이리 후회만 반복하며 사는지.
  이승에 살면서 인연을 맺었던 모든 정인들과 눈맞춤했던 사물과 풍경들. 순간 속에 만난 짧은 인연들이지만, 나는 영원토록 그들을 기억해 두리.
  나이들수록 이별에 면역성이 약해지는 나. 내 입술로 “안녕!”이란 마지막 인사를 할 자신이 없다.  
 
(사진 : 이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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