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석 줄 단상 - 단발머리 그 소녀+

2022.07.25 23:39

서경 조회 수:59

85. 석 줄 단상 - 단발머리 그 소녀+ (07072022) 
 
장독만 보면, 단발머리 그 소녀가 생각난다.
어머님 여의고 아버님 재혼하시던 날, 장독 뒤에 숨어 진종일 울었다던 그 친구.
도우미로 온 동갑내기 여고생 병식이, 그 앤 50여 년 내 그리움의 깊이를 알까. 

 
 
*** 어느 날, 이모님 댁에 새 도우미가 왔다. 눈이 검실검실하고 입꼬리엔 웃음을 달아 첫인상이 좋았다. 어디를 봐도 가출 소녀같이 보이지 않았다. 외려, 단정한 단발머리는 전형적 모범 여고생으로 보였다. 동갑내기 여고생이었던 나는 금방 친해졌다. 한마디로, ‘케미’가 일어 났다. 학교가 가까웠던 관계로 난 이모님댁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자연히 그 애와 나는 한 방을 쓰게 되었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애는 엄마가 돌아 가시자, 자기가 잘 해 드릴 테니 부디 재혼만은 하지 말라고 아버지께 부탁했단다. 엄마의 자리가 다른 여자 때문에 뺏기는 게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진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새엄마를 들였다. 새엄마가 들어 오시는 날, 그녀는 하루종일 장독 뒤에 숨어서 울었다. 그녀는 그 다음날로 집을 나와 남쪽 도시 부산으로 왔다. 자기가 가지고 나왔던 것은 오직 200자 원고지 1000장이라 했다. 참 특이했다. 보통 가출하는 아이는 돈을 가지고 나오는데 200자 원고지 1000장이라니! 문예반에 있던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그 애 이야기를 들었다. 대전 명문 여고생, 그 애 학교 별명이 ‘굴다리 몸빼’라며 키득대고 웃었다. 그애와 나는 혈액형도 같은 A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소소한 일치도 감격스러워 한다.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루는 한창 유행하던 ‘혈액형으로 보는 인간관계’를 같이 체크해 봤다. A+O는 ‘아주 좋다’였고 A+A는 ‘좋다’였다. 나는 ‘아주’란 말이 빠져 크게 실망했지만, 이내 “야, 병식아! 그래도 ‘좋다’라 하니 좋다야! 너가 만약 남자였으면 우리 결혼했을 걸?”하며 웃었다. 그 애도 “그러게 말야!”하며 활짝 웃었다. 그 애 이름 병식이는 전형적인 남자 이름이었고, 내 이름은 희선이로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었다. 몸매도 그애는 키가 크고 약간 통통한 편이고 나는 작고 날렵한 편이라 남녀라 해도 어울림직했다. 탁구장에 가면 그 애도 따라 나섰다. 하지만, 나를 열렬히 응원할 뿐 그애는 한번도 치지 않았다. 그냥 나하고 함께 하는 게 좋아서 따라 왔을 뿐이다. 이모님이 열심한 불교 신자라, 주일마다 교회 가는 게 여간 눈치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우리의 비밀 장소에 내 성경책과 찬송가를 재빨리 갖다 두고는 몸만 빠져 나가게 도와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게 그토록 고마울 수 없다. 그 애 마음이 담긴 배려였기 때문이다. 그애는 모든 면에서 나의 절대적 지지자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천 년 만 년 갈 줄 알았던 우리의 짝궁 허니문은 겨우 한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온다 간다 말 한 마디 없이 갑자기그 애가 사라졌다. 빈 방을 보자, 나도 몰래 눈물이 났다. 하루, 이틀… 그 애가 두고 간 흔적이 그리움으로 짙어질 무렵, 그 애가 다시 나타났다. 한달만이었다. 오빠가 잡으러 온다고 해서 제주도로 도망 갔다며 내가 보고 싶어 잠시 왔노라 했다. 우리는 어디에 살든지 매년 10월 24일 오전 10시 우리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학교가 없어질 일이 없고 공휴일로 정해진 ‘유엔 데이’도 없어질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어쩌다 못 오면 다음 해라도 꼭 나오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나는 10분 거리에 있는 약속 장소로 해마다 시간 맞추어 나갔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애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 지 3년. 나는 그 친구를 마음에 새겨 두기로 했다. 그동안, 흐른 시간은 세월이 될 정도로 나이테를 불렸고, 나의 그리움도 커져 거목이 되다 못해 고목이 되어 간다. 그 애를 기억하는 세세한 그 모든 것들을 오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잊어 본 적이 없다. 조용필이 ‘단발머리 그 소녀’를 부를 때도 눈물지었고,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하는 가사 때문에 산이슬의 ‘이사가던 날’ 노래를 혼자 흥얼대기도 했다. 오늘 유튜브를 보다,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를 보니 또 병식이 생각났다. 그 애도 나를 어디선가 그리워하고 있을 터이다. 병식아, 어딨니? 보고 싶다. 살아 생전에 한 번 만나자. 신이 우리의 그 진했던 만남을 허락해 주셨다면 또 한번의 만남도 허락해 주지 않겠니? 주님의 자비를 위해 우리 함께 기도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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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유투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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