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석 줄 단상 - 군중 속의 고독 + (07102022) 

 
새 성당 두 번째 미사 후 커피 타임, 전학 온 아이 심정이 이러할까.
사람들은 분주히 오가나, 아는 얼굴 하나 없다.
성당문 굳게 닫히고, 분수는 낮은 키로 솟았다 내려 앉기만 반복한다.

*** 35년 여 다니던 성당을 떠나 새 성당으로 옮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떠난다는 건, 건물만 떠나는 게 아니라 정든 모든 걸 두고 떠나 오는 거다. 게다가, 성 그레고리 성당은 영세와 견진을 받은 내 신앙의 모태가 아닌가. 어미품을 떠나는 병아리같은 심정이다. 마음 한 켠이 무너지는 아픔이다. 다행히, 새 성전이 마음에 들고 신부님도 열성적이라 적응하기가 쉬울 것같다. 꾸르실료 출신이라, 일단 울뜨레아 간사에게 연락을 했다. 서울 대교구 여성 131차라고. 대선배라며 반긴다. 아직은 시간 관계상, 젊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영어 미사에 가다 보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한국말 미사에 나가면 상황은 달라질 게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약간 쓸쓸하긴 해도 마음은 평화롭다.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 뒤에, 차 마시고 묵상에 잠기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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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석 줄 단상 - 고양이 Buddy의 사랑법+ (07112022) 
 
사랑의 속도는 다 다른가 보다.
여름날 소낙비같이 한달음에 오는가 하면, 낙동강 하류같이 쉬엄쉬엄 오기도 한다.
멀찌감치서 간만 보던 Buddy가 오늘은 방문  입구까지 들어 왔다.  

 
*** Buddy는 이 아파트로 이사 와서 처음 만난 고양이다. 아침 출근 시간이면 가는 길목에 지키고 앉아 나를 빤히 쳐다 보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정공세를 해도 곁을 주지 않았다. 며칠 전, 앞집 수잔이 녀석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전 주인의 죽음과 함께 외톨이가 되었으며 이름은 Buddy라고 했다. 난 주인이 이사 가면서 버려 두고 간 줄 알고 좀 분개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별이라니 마음이 짠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주인과 옛집 앞에서 망부석처럼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녀석. 천국에서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는 주인도 가여워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만 같다. 꾀죄죄한 모습에 피골은 상접했고 목 뒤에는 큼직한 상처가 붉은 살을 드러내고 있다. 8년을 돌 봐 주는 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으니 그렇게라도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일단, 영양이라도 보충해 주고 싶어 팻샵에 가서 드라이 푸드와 캔 음식을 사 왔다. 그리고 포근히 잘 수 있는 방석 하나도 곁들여 샀다. 우리 집 문 앞에 물과 음식을 놓고 방석도 입구에 두었다. 냄새가 좋은지 녀석이 이층 우리 집까지 올라 왔다.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이내 캔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방문을 열어 두고 상황을 지켜 보기로 했다. 살그머니 들어 와서 부엌과 거실을 한바퀴 돌곤 이내 나가 버렸다. 난 모른 척하고 부엌일을 계속했다. 이것만 해도 많이 가까워진 셈이다. 서서히 신뢰가 쌓여 간다. 그와 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물리적 거리는 물론,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마켓 들렀다 오느라, 늦게 집으로 왔다. Buddy는 보이지 않았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니면 목에 건 열쇠 소리를 들은 것일까. 어디에 있었는지 녀석이 비호같이 나타나 내 뒤를 따라 왔다. 물건을 내려 놓자 마자 캔 음식부터 하나 따 주었다. 녀석은 맛나게 먹고 예의 탐색전을 펼치더니 오늘은 방문 안 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믿을 수 있나 없나 하고 간을 보는 건가. 나를 보면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던 녀석.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진전이다. 하는 짓이 예뻐, 목을 살살 만져 주었더니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마음 문을 열었다는 증거다. 거의 한달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조만간 문 앞에 둔 방석도 문 안으로 갖다 두어야 겠다. 성하의 계절 7월이라 하나, 밤공기가 차다. 녀석이 모쪼록 더 가까워져 병원에 데려갈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전체적인 종합 검진을 받고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한 뒤 제대로 맡아 키워 주고 싶다. 좀 오래 살 생각으로 4개월 동안 리서치해서 찾은 이 아파트. 그리고 여기서 처음 만난 녀석.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을 때 이루어진다. 일단, 이 사랑의 필요 조건은 갖추어진 셈이다. 충분 조건을 갖추려면 더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 그때까진 또 얼마간의 기다림이 필요하겠지. 머잖아, 녀석은 내 거실에서 자지 않을까 싶다. 한 생명을 살리는 일. 이사 와서 뜻밖에 부여 받은 나의 첫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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