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우리 엄마 (2)

2007.09.18 14:48

성민희 조회 수:508 추천:54

(2.)안전 벨트 이야기


        동생네 막내딸이 유아용 카시트가 필요 없을 만큼 자라, 제 발로 차를 기어오르

고 내리니 얼마나 편한지 살 것 같다는 동생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안전 벨트만 갖다

대면 배 아프다고 칭얼대며 도로 풀어버리니 안전벨트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불안도 하지

만, 지나가는 경찰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티켓감이라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맛있는 것을 준다고 꼬셔도 보고 야단을 쳐보지만 막무가내. 차가 출발하여 엄마의 손이

닿지 못할 때가 되면 어김 없이 풀어버린다고 했다.  

그 날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입원한 친척 병 문안을 가는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과 조카는 차에 타자마자 안전벨트 땜에 옥신각신이었다.  싫다고 앙앙 우는

조카를 봐도 딱하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화를 내는 동생도 딱하고.  보다 못한 나까지

나섰다. “수현아, 조금만 참으면 된다. 금방 도착할거니까 좀 참아봐.”  네 살 박이 아이 보

고 참으라고 타이르는 것도 무리긴 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쟎아도  울고 있는

아이를 윽박질러 더 울릴 수도 없고.  동생은 툴툴대며 계집애가 저렇게 까탈스러우니

다음부터는 집에만 두고 데리고 다니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그 소리에 서러운 조카

는 더 큰 소리로 울고, 아이에게 줄 과자 봉지는 모두 뜯겨져서 의자에 나둥그러져 있고

차가 출발하지 않으니 에어컨은 가동이 안되어 덥기도 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동생이 언제까지 이런 전쟁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니 답답하기도 해서 한

숨을 쉬고 있는데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일어나 뒷좌석으

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리고는 조카의 손을 쓰다듬으며 한 마디 하셨다. “요새 벨트 안하

몬 순경들이 잡아서 벌금 문다고 하대? 그기 비싸다카던데------ 그래도 수현아. 니는 괜챦

타. 벨트 안 하고 싶으몬 하지마라.” 뜬금없는 할머니 말씀에 눈물 그렁그렁한 조카의 눈

이 동그래졌다.  “너그 아버지 변호사라 돈 억수로 잘 벌쟎아.  벌금 나오면 너그 아버지한

테 내라고 하면 되지 뭐.  애미야, 수현이 벨트 안 해서 벌금 나올 때마다 저그 아버지한테

갖다 주거라. 배 아픈 아이 보고 자꾸 벨트하라고 하지 말고. 알겠제?” 할머니 얼굴을 빤

히 쳐다보던 조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물을 닦아가며 벨트를 슬그머니 잡더니 자

기 배에다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모른 척 앞만 쳐다보시는 어머니의 손을 끌어다  벨트를

채우란다. 동생과 나는 백미러에다 눈을 갖다 대고 킥킥거리고 어머니는 멀쩡하신 얼굴

로  “와.  벨트 할라꼬? 안 해도 되는데?”

그 후로 조카는 엉엉 울어가면서도 “벨트 해 줘.” 하는 아이가 되었다.  울엄마는 이렇게

단칼에 상대방을 제압해버리는 영리한 할머니다.  올해 82세이신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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