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파티

2007.10.28 02:12

성민희 조회 수:1079 추천:81

 

프롬파티

  오랜만에 봄바람이라도 쐬자며 친구들이랑 롱비치 바닷가에 갔다. 퀸메리 호가 올려다 보이는 야드 하우스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니는데, 까만 턱시도에 무스로 반들반들 머리를 치켜세운 미남들과 어깨를 다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미녀들 한 무리가 리무진을 타고 들어온다. 아쿠아리움에서 프롬 파티가 있는 모양이다.
"프롬 파티는 왜 하는 걸까? 뭔가 아이들에게 주는 교육적인 목적이 있겠지?"
"그렇겠지. 좀 있음 어른이 될 거니까 쇼셜라이즈하는 훈련을 시키는 건가?"
"사회 생활하면서 가질 파티 문화의 맛을 미리 보여주는 것 아니겠니?"
  우리는 나름대로 정의를 세워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오늘 하루라도 공부에서 해방되어 행복한 신데렐라와 왕자님이 되어 보아라. 열 두 시 종소리가 땡 울리면 뒹구는 호박이랑 생쥐를 뒤로하고 남루한 차림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쌍쌍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요즘에는 프롬 신청을 어떻게 할까 궁금해진다. 옛날 딸아이 때에는 친구들끼리 전화로나 혹은 학교에서 "나랑 프롬 갈래?" 하면 "오케이" 하고 짝이 지워졌는데. 5년이 지난 요즘은 프로포즈 하는 것처럼 거창하게 신청을 한다고 한다.

  남학생이 여학생 집에 꽃다발을 갖고 가 무릎을 꿇고 신청하는 방법은 아주 고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한 아들 친구는 차 트렁크에 쭈그리고 들어앉아 있다가, 친구들이 여학생을 불러내어낸 다음 팡! 하고 트렁크를 열자 벌떡 일어나 꽃다발을 바치며 신청을 했다고 자랑을 했다. 그 여학생 엄마는 무척 기분 좋아 했다지만 아들 가진 엄마들은 정말 속이 다 니글거렸다.
"에이구, 녀석들. 실컷 공 들여 키워놓으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트렁크에 쭈그리고 들어가 앉았다고?"
 

그런데 내가 더 마음이 싱숭생숭 했던 기억은, 우리 아들이 그 중에서도 제일 별나게 신청 했다는 것이다. 아들이 파트너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동안, 친구들에게 붕어 모양 과자들을 파트너 여학생의 방에서 부터 화장실까지 좍 뿌려 놓게 했다. 그리고 화장실 싱크대 안에는 진짜 붕어 한 마리를 담가 놓고 거울에다 스프레이로 'You are the only fish in my heart' 라고 썼대나 어쨌대나. 친구들의 "임무 완수. 오버" 전화를 받고는 모른 척 파트너를 집에다 데려다 주었단다. 화장실에 들어가 그걸 보고 감격한 여자 친구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해 가며 아들한테 핸드폰을 걸고. 밖에서 기다리던 아들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촤-악 가라 앉은 목소리로 "나는 지금 네 집 앞에 있다. 나오라. 오버" 뛰어 나오는 여자 친구를 붙잡아 세우고는 앞에 무릎을 딱 꿇고 앉아 "프롬 같이 가 줄래?" 옆에서 친구들은 박수를 짝짝 쳤다고 했다. 아들이 신이 나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너도 이제 마음의 연못에 누군가를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으로 담기 시작하는구나.) 입으로는 "야, 정말 멋있는 신청이다." 해 주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바람이 휙 지나갔다.


  아쿠아리움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선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떠나가는 너희들의 마음에 손을 흔들어 주었을까. 그래 이제 훨훨 떠나가거라. <사람이 고향이다 2016>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0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 성민희 2017.03.27 22695
149 <7월, 그 여름> 성민희 2017.08.04 18756
148 도우미 아가씨와 I Message 성민희 2017.08.06 10247
147 그대에게는 등대가 있는가 성민희 2017.01.19 8686
146 LPGA 시합을 보다 성민희 2016.12.17 8618
145 [이 아침에] 내 영혼의 풍수 인테리어 성민희 2017.02.15 8533
144 '베이비부머' 세대의 반란 ‘YOLO’ 라이프 [7] 성민희 2017.06.24 8520
143 사랑, 그 무자비한 노동을 성민희 2018.01.04 8492
142 쿠바의 혁명세대와 신세대 janelyu 2018.05.03 8468
141 가난한 사람들 성민희 2016.12.18 8391
140 격랑을 잠 재울 용기 있는 언론인을 기대한다 성민희 2017.01.13 8388
139 [미주통신]‘스키드 로우’ 노숙자 인생역전을 꿈꾸다 성민희 2017.09.21 8383
138 그대 있음에 성민희 2017.03.27 8335
137 [미주통신]거꾸로 가는 미국의 이민정책 [2] janelyu 2018.03.29 8295
136 미술품 경매장을 다녀와서 성민희 2017.09.03 8206
135 하늘의 별과 도덕률 성민희 2017.04.07 8170
134 풋낯과 너나들이 성민희 2016.12.18 8155
133 길고도 외로웠던 그 해 여름 / 성민희 성민희 2017.08.29 8114
132 텅 빈 선물상자 성민희 2016.12.17 8111
131 미국 사람의 톨레랑스 성민희 2017.10.28 7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