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다녀왔다. (2007년) 1

2007.11.01 10:06

성민희 조회 수:845 추천:104



라스베가스를 다녀왔다.(2007년 9월 24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라스베가스로 간다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오가는 5시간이 재미있 었던 기억도 있지만 슬랏 머쉰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돈을 땄었다는 사실이 더욱 내 마 음을 덜뜨게 한다.  '작년에 배운 실력으로 올해도 또------' 하며 혼자서 실실 웃어본다. 아침 9시. 가든 스윗 호텔 앞에 세워둔 대형 버스로 여행 가방을 챙겨 든 동지들이 모 여들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나타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회장님을 비롯하여 작년에도 가족 모두 동반하여 소리 없이 뒷일을 하시던 총무님이 올해도 역시 아들을 데리고 왔다. 아들은 작년보다 훌쩍 더 여물어져서 청년 같은 모습으로 무거운 짐들을 들고 왔다 갔다 바쁜 모습이 땀이 막 배어날 것 같다.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모여 차가 출발하자 몇 명이 탔나 대략 둘러보니 3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자리에 앉으니 대선배님 뒷모습이 보여 인사차 다가갔다. 그런데 얼굴 표정이 심상챦다. "선배님, 오셨어요?" "응, 내가 못 올 것 왔다 아이가. 며칠 전에는 죽을 뻔 했다." 아닌게 아니라 열이 오르는지 얼굴이 발갛고 앉아 계시는 모습이 영 편치 못하다. 옆 에 앉으신 형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지난 일요일의 난리통을 재연하셨다. 한인 축제 구경갔다가 막걸리랑 국수 사 잡숫고 또 집에 와서 찬 맥주를 드시더니 배탈이 났 는지 식중독인지 “내가 누고?” 자신이 누구인지 옆의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 겠다며 기억 상실증 걸린 사람처럼 이상해 지셨더란다. 병원에 응급으로 들어가 고생하 셨는데 아직도 정상이 아니시라고.  여행할 수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셨으니 역시 ROTC의 기둥이자 또한 모든 ROTCian들의 대부이심을 올해도 역시 보여 주셨 다. 듣고 있는 모든 여행객들.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짝짝짝. 버스가 동부 한남 체인에 들러 몇 명을 더 싣고 본격적인 사막으로의 질주가 시작되었 다. 올해의 MC도 역시 우리 남편이다. 회장이란 죄목이 없는데도 또 잡혀 나갔다. MC 가 서로들을 돌아보며 인사를 하란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는데 가족들이 많이 참여했다. 딸 둘만 데리고 온 동지, 처형을 모셔온 선배님, 장인 장모님을 모셔 온 동지, 심지어 본인은 못 오고 장모님과 와이프만 보낸 동지도 있었다. "모두 처갓집 식구들 대동이다." "ROTC가 원래 기사도 정신 끝내준다니까. 와이프 위하는데는 누가 못 따라 온다. 저번 골프 대회 때도 장모님 모시고 온 사람이 있더라." "우리도 저런 사위를 맞이 해야 할텐데. 그자?" 여기가 한국이라면 두말 안하고 ROTC 중앙회에다 사윗감 찾는다는 광고를 낼 텐데-----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ROTC 출신 아버지 밑에서 엄한 교육과 훈육으로 잘 자란 지성과 미모를 갖춘 27살 꽃다운 딸 있음. ROTC 출신이면 무조건 환영함) 이라고 말이다. 전문 도박사가 올해는 행방불명이 되었는지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아 모시지 못했다는 회장님의 말에 이어 한 선배님의 조언이 있었다. "슬랏 머쉰을 좋은 것 잡으려면 돈 따고 있는 사람 쫒아  내고 앉아야 하는기라. 그랄라몬 마늘 같은 것 먹고 가서 뒤에서 후후 불어야 되는기라." 발갛게 열에 덜뜬 얼굴이지만, 후배들 주머니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構?자리에 서 일어서서 하시는 강의에 조용하던 버스 안에 슬슬 웃음꽃이 피기 시작한다. 도박사 는 아니지만, 도박사 못지 않게 라스베가스에만 갔다 오면 주머니가 두둑해진다는 강 선배님이 강의를 시작하셨다. 이 동네에서 제일 명심해야 할 것은 많이 건질 욕심 을 부리지 말란다. 20% 정도 즉 1000불로 200불 정도만 따겠다는 마음으로 나서야지, 1000불을 가지고 2000불을 벌겠다고 나서면 절대 실패란다. 그건 절대 불가능. 그야말 로 도박 수준이라 위험하다. 그리고 블랙 잭을 할 때 내가 가진 카드의 합이 11이상이 되면 더 받지 말라고 하신다. 받지 않고 그냥 패스를 해버리면 결국은 딜러가 21을 넘 게 되어있다고. 확률계산상으로도 이기는 확률이 더 많으니 어떤 경우에라도 11이상 되 었을 때는 받지 말란다. 모두들 눈이 초롱초롱 도(道)를 깨치고 있는데 자칭 도박으로 패가망신 했다는 농담으로 자기 소개를 한 김 고문(모 회사 고문님)이 뒤에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꼭 교과서대로만 하면 무슨 재미야. 기분 날 때는 팍팍 질러도 봐야지.”   이런 반동 분자들이 있어야 세상이 균형을 잡고 굴러가지 모두 교과서대로만 살면 무 슨 재미일까. 열강 하시는 강 도박사님 뒤에서 우리는 킥킥거렸다. 웃다 보니 라스베가스에 도착이다. 휘황찬란한 불야성을 지나 한참을 가니 나타난 ‘Arizona Charles Hotel’.  이번 주말은 대형 컨벤션들이 많이 있어서 호텔 방을 못 구한다는 책임감 없는 여행사의 배신(?)으로 호텔 예약은 물론 식당까지 모두 회 장단에서 직접 했다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짐작이 되었다.  작은 호텔이었지만 우리들의 놀이터로는 손색이 없었고 객실 또한 깨끗하고 좋았다.  모시고 간 손님 2부부를 합하여 우리 일행 6명은  짐을 풀고는 Treasure Island Hotel에서 하는 야외 쇼를 보러 갔다. 공짜라서 그런지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미국에 와서 그렇게 짐짝처럼 이리저리 밀려보기는 처음이었다. 큰 배 위에서 늘씬한 미녀들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해 적들과 함께 하는, 스토리가 있는 쇼 같았지만 배 귀퉁이만 보이는 자리에서 까치발을 하고 눈이 사팔뜨기가 되어 보고 있으려니 이 쇼가 언제 끝나나 하는 마음 뿐이었다. 다음에 와서 정식으로 다시 보리라 서로를 위로하며Bellagio 호텔로 갔다. 호텔 입구 호수를 둘러싼 난간에는 water show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자리를 잡으려 서성 이는 사이 어느 새 쇼가 시작되었다. 호텔을 중앙에 두고 펼쳐진 거대한 호수에서 타이 타닉 주제가 “Power of Love” 노래에 맞춰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우리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발레리나의 연기보다 더 섬세한 율동. 높게 낮게, 강하게 약하 게, 길게 짧게. 선율에 맞춰서 춤추는 은빛 줄기들은 높은 호텔 꼭대기까지 새처럼 가 볍게 날아올랐다가 햇살처럼 수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 봄바람에 날리는 아카시아 꽃 이 되었다가 한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가 되었다가 가을 바람을 흔드는 코스모스가 되었 다가 환희처럼 쏟아지는 눈꽃도 되었다.  곧이어 Clive Griffin 과 Celine Dion 의 이중창 “When I fall in love” 노래가 흘러 나왔다.  호수에 가득 찬 은빛 발레리나들이, 감미로운 이중창에 취해 초가을 밤하늘에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또 그렸다.  사람이, 음악이, 바람이 너무 좋아 행복한 밤을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즐겼다.         잠은 우리 호텔에 가서 자더라도 작업(?)은 환경이 좋은 곳에서 하자는 의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 벨라지오 호텔 카지노로 올라가 남자들은 블랙잭 홀로 가고 여자들은 슬랏머쉰 코너로 갔다. 새 호텔은 투자한 돈 건질 욕심으로 기계를 잘 터지지 못하게 해 두었다는 사람들의 말이 귀에 쟁쟁하지만, 그래도 작년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기계 저 기계를 어슬렁거리다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본격적으로 열심을 내보려는데 “에구, 아줌마. 그래가지고 무슨 돈을 따요? 그 기계는 안 되요. ” 돌아보니 어떤 한국 남자가 곁에 와 선다. 이 기계론 안 된다니 그럼 잘 터지는 다른 기계가 있단 말인감?  멀뚱멀뚱 쳐다보니 자기를 따라 오란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그래도 정체는 알아야지 싶어서 물었다. 벨라지오 호텔에서 옛날에 일하던 사람인데 지 금은 다른 곳에서 일한단다. 자기 동생은 아직도 여기서 일하고.  동생 만나러 왔나 보다 생각하니 왠지 믿어도 될 것 같아 따라 나섰다. 이왕 노름판에 나선 몸, 대박 터지 게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따라가 보니 1불짜리 기계한테로 간다. 옛날에 는 10전 짜리로 시작하여 오늘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25전짜리까지 올라왔지만 아 직 1불짜리로 할 만큼 간이 커지지 않았는데------. 멈칫거리는 내게 “아줌마. 돈 딸려면 그렇게 째째하게 하면 안되요. 많이 넣어야 많이 따지요. 한 1000 불은 넣고 3000불 정도 터蔘?계산을 해야지.” 에구 1000불이라니 이 아저씨가 나를 진짜 노름꾼으로 보셨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뭇머뭇 지갑에서 20불짜리를 한 장 꺼내니 실망한 아저씨의 목소리. “100불짜리 없어요? 한 200불 넣고 시작해야지. 20불이 뭐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돈 을 따요?” 자존심을 팍팍 건드린다.  에라 모르겠다. 20불짜리 5장을 꺼내서 기계에 밀어 넣었다.  드르르륵 돌다가 꽝!  아저씨가 옆에 붙어서서 maximum으로 3불씩 넣어야 잭팟이 터진다고 계속 다그친다. 드르르륵 도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하는데 또 꽝! 100불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에고에고 피 같은 내 돈. “아줌마. 조금도 아깝다 생각 말고 100불 더 넣어 보시요. 한 1000불은 들어가야 3000 불 정도 따지요.” 즐기지도 못하고 기계에 매달려 맹목적으로 돈을 쑤셔 넣으려고 하니 좀 찜찜하긴 하지 만, 그래도 나를 위해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니 얼마나 고맙 고 죄송한가 하는 맘에 시키는 대로 또 100불을 넣었다. 두어 번 돌리고 있는데 잘 되고 있냐며 친구 미세스 리가 옆에 왔다. 그녀를 본 아저씨 어느새 소매 끝을 붙잡고 다른 기계로 끌고가 앉힌다. 그리고는 나한테 하던 식으로 시끌벅적 하다.  후다다닥 눈 깜짝하는 사이 내가 100불을 또 다 잃었다. 20불짜리 세 장을 더 빼앗기고 슬쩍 그 쪽을 넘겨다 보니 아저씨는 아직도 가지 않고 미세스 리를 붙들고 돈을 더 넣으라고 성화를 대고 있 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30분은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자기 가던 길도 가지 않고 우리 곁을 서성이다니.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바람잡이?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나 얼른 두 사람 곁으로 가니 미세스 리는 시키는 대로 또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귀에다 대고 살짝 말했다. “미세스 리, 아무래도 이상한 아저씨 같애. 그만하고  일어나세요.” 뒤로 돌아 나오는 뒤통수를 아저씨가 노려보는 것 같았지만 친구를 구하는 일에 무슨 희생인들 못하랴.  아니나 다를까 한참 뒤 200불을 잃었다며 피곤한 얼굴로  미세스 리가 다가 왔다. “나는 우리 일행인줄 알고 너무 친절하다고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했지. 미세스 류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염치 불구하고 일어나 나왔다. 근데 그 사람 자 꾸 나보고 째째하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해서------” 쥐꼬리 만한 자존심을 사수하느라고  순진한 두 여인들이 벨라지오 호텔에 뜬 바람잡이한테 거금 460불을 갖다 바친 격이 되었다.. 그러나 그 분 말대로 1000불 정도 넣었으면 3000불을 땄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잊기로 했다.  밑천이 두둑하지 못한 우리의 가난이 죄라고 하면서. 두 여자 패잔병이 바깥으로 나오니 라스베가스의 발전을 위하 여 적당히 세금을 갖다 바쳤노라면서 남자들도 초췌한 얼굴로 걸어 나온다. 택시를 타 고 우리 호텔로 돌아와 카지노로 들어가니 군데군데 우리 식구들이 앉아서 열과 성을 다해 블랙잭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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