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기둥 마음 기둥

2008.03.14 03:43

성민희 조회 수:1006 추천:102


 


  

몸 기둥 마음 기둥

 

 

   지난주부터 체했다며 몹시 고통스러워하시던 어머니. 약해 보이지만 강단이 있어서 병치레 한번 하지 않던 분이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누우실 때도 어구구 신음이 대단하다. 등뼈로 시작하여 갈비뼈를 빙 돌아 허리 전체가 아프다며, 등을 두드려 달라 쓸어 달라 몸부림을 치셨다. 평소 위가 좋지 않아 소화제랑 위장약을 드시던 터라 당연히 체한 줄 알고 등을 쓸어드리고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며 열심히 간호를 해 드렸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작년 봄부터 몇 달에 한번은 이런 고생을 열흘 씩 했다.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하면 싫다고 손을 내젓던 모습에 또 체하셨구나 지레짐작만 했을 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병원을 들락거리며 정부 돈 낭비하는 것 싫다고 하던 어머니도 이번에는 견딜 수 없으신지 자진해서 위내시경,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위도 장도 깨끗하여 도무지 아플 이유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하며 돌아온 며칠이 지나도록, 검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계속 힘들어 해서 또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의 호소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의사. 이번에는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했다. 커다란 필름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선생님이 등뼈가 조금 내려앉은 걸 발견했다. 골다공증이 심하면 이렇게 등뼈가 부서져 내리고, 그것에 신경이 눌려서 아픈데 2주 정도 지나면 적응이 될 테니 걱정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작년 봄부터 조금씩 등뼈가 무너지느라고 그렇게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어머니의 작은 육신을 80 여 년이나 지탱하고 견뎌준 그 존재가 새삼 고맙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다. 의사 선생님은 골 밀도를 높여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주사를 2년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생전 처음 들어본 뼈주사와 매일 만나는 친구로 살아야 한다.

 

   쇠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간호사를 집으로 보내주어 링거를 맞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틀 날 방문한 간호사에게서 주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한 달간 맞을 양의 약이 들어 있는 주사기로 매일 한 눈금씩 주사해야 한다. 주사기를 돌리고 공기를 먼저 빼 내고, 또 돌려서 주사를 하는데 약이 들어갈 때는 띠띠 소리가 난다. 의료 행위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조금 복잡했다.

   첫 날 배울 때는 뭐가 뭔지 모르겠더니 이틀째에는 서툴게 놓아 드렸고 사흘째에는 능숙하게 놓아드렸다. 유난히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를 싫어하는 분이 매일 아침 문을 두드리는 내가 부담스러운지 사흘째에는 당신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당뇨병 있는 친구들도 인슐린을 자신이 주사한다던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떼를 썼다. 어제도 내가 하는 것을 유심히 보며 방법을 되뇌시는 어머니께 마음대로 기동하실 때가 되면 가르쳐드리겠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 일찍 전화를 주셨다. 혼자서 주사를 했으니 오지 말라고. 너무 뜻밖이라 말문이 막힌 내게 간호사가 일러준 말을 그대로 외운다. 아니, 오히려 간호사보다도 더 쉽게 설명을 하신다. 마지막에 '따다닥' 하며 약 들어가는 소리도 들었단다. "별라다~ 별래. 우리 할매 우째 이리 별날꼬. 할매가 좀 할매다우셔야지. 진짜 못말리는 할매네." 이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며칠 주사를 맞았는데도 옆구리가 계속 결려 오늘 또 병원에 갔다. 의사선생님이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야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만, 이왕 오셨으니 확실히 검사를 하자며 CT 촬영을 해 주었다. 결과는 여전히 '모든 장기에 이상 없음'이었다. 집에 돌아오며 어머니는 당신의 몸에 대해 정리를 했다. "나는 말이다. 집으로 칠 것 같으면 인제 다 낡아삐린기라. 창문이 부서졌거나 찌그러졌으면 갈아끼우면 되는거제. 대문이 부서졌으면 새로 고치면 되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집에 큰 기둥이 무너진기라. 집에 큰 기둥이 무너지면 우찌되노. 벽이 갈라지고 지붕이 새고 창문이 깨지고 난리가 안 나겠나. 천장에 전기 다마도 떨어지고 말이다. 그라니까 부서진 등뼈가 아프고 옆에 갈비뼈도 아프고 주위에 모든 등허리도 아프고 하는 거 아니겠나. 그자?" 비유가 어찌나 적절한지 핸들을 마구 두드리며 웃었다. 더 이상 어떻게 어머니의 몸 상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오장육부 모두 깨끗하고 노인병도 없으셔서, 잘 잡숫고 원기만 돋우면 된다는 내 말에 기분 좋아진 어머니는 앞으로의 계획도 명쾌하게 세운다. "내 몸 구석구석 뒤적여서 병이 어데 숨었는지 인제는 다 찾아봤다. 이래 들여다보고 저래 들여다보고 찾아내는데 지 놈이 어데 숨어있을끼고. 내 몸에 병은 없다 아이가. 인자부터 무조건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호호호호"

 

   몇 주간의 고생이 꿈이었던 양.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따사한 햇살 사이로 꽃잎처럼 날아간다. 어머니의 활짝 펴진 얼굴을 보며 나는 속으로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엄마 하나님께 가시는 그 날까지 지금 이 건강 상태 그대로, 조금도 변치 않게 지켜주세요. 비록 몸 기둥은 조금 무너졌지만 마음의 기둥은 튼튼히 서 있게 해주세요.’ <사람이 고향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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