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더 아름답더이다.

2009.07.21 02:55

성민희 조회 수:952 추천:96



가짜가 더 아름답더이다

 

 

 

2주 전이었다. 꽃도매 시장도 공휴일에는 휴업을 한다는 걸 몰랐다. 독립기념일인데 하며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토요일 새벽 기도 후 헌화팀 세 명이 교회를 나섰다. 차를 타는 우리를 본 어떤 집사님이 의류도매상인 자바시장도 휴업인데 꽃시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아차 하며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모든 가게가 불통이다. 난감했다.

 

코스코(Costco)나 트레이드 죠(Trade Joe)로 가서 적당히 꽃을 사와야겠다고 반짝 아이디어를 내었지만, 10시가 되어야 문을 여는 두 곳을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가 않은 연휴였다. 화분을 갖다 놓든지,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조화를 쓰든지 어찌하던 작품은 만들어야 했다. 창고를 뒤졌다. 혹시 부재료로 쓸 수 있을까하여 우리집 뒷마당에서 조금 잘라온 초록 멕시칸팜트리 잎파리들이 갑자기 귀한 주재료가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며 크고 화려한 것들만 골라서 잘라온 나의 선견지명이 대견스러웠다.

먼저 수반에 오아시스를 채우고 양쪽으로 커다란 멕시칸팜트리 잎파리 둘을 눕혔다. 꽃이 없으니 부재라도 뭔가 눈에 띄는 것으로 세워야겠단 생각으로 재료박스를 뒤지니 대나무들이 눈에 띈다. 그것을 중앙에 일단 세우고. 얼굴을 아래로 박고 누워있는 플라스틱 나리꽃들을 일으켜 세워 후후 먼지를 털고 꽂았다. 그리고 보라색, 흰색 초라한 모습으로 섞여있는 이름도 모를 작은 꽃 뭉치에서 희고 깨끗한 것만 골라 플라스틱 이파리를 손으로 요리조리 펴서 하얀 나리꽃 품에 안겨 주었다. 제법 어울리는 모습이 되긴 했지만 초록에 하얀 꽃들만의 잔치가 너무 심심하다. 다른 색깔의 무엇이 없나 또 뒤졌다. 지저분한 박스 한 구석에 오렌지 꽈리 열매가 꾀죄죄하게 꼬여서 누워있다. “옳지 아쉬운데 이거라도.” 꺼집어내어서 두루룩 펴 대나무에 척 엮어 올렸다. 테이프로 뚤뚤 말아 고정도 시켰다. 완성이다.

멀리 떨어져서 눈을 게슴츠레 하고 보니 생각 외로 참 예쁘다. 가까이서 보면 향기도 없고 때가 묻어 지저분한 조화지만 멀리서 보니 생화보다 더 화려한 꽃꽂이다. 예전에는 꽃이 놓인 강단과 교인들 좌석이 너무 멀어서 꽃의 섬세한 질과 향기가 전달되지 못하여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그런 환경이 오히려 고맙구나 하며 웃었다.

 

주일날 아침.

하나님께 향기롭고 싱싱한 꽃을 바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많은 교인들은 칭찬을 해 주었다. 여느 때 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저건 가짜랍니다. 일일이 대꾸를 해 주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사진으로 찍어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보니 내가 보아도 다른 날의 꽃꽂이 보다 훨씬 멋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강단꽃이 좋았다며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가짜들이 이렇게 칭찬을 받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 그건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가짜 생각. 가짜 신앙, 가짜 친구, 가짜 선생. 얼마나 많은 가짜들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을까. 그것들에 속고 있을까. 아니 나 역시 속이며 살고 있을까.

 

가짜가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으니 나는 오늘도 가짜에 속고 사는 부분이 없나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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