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mother

2012.11.06 01:16

성민희 조회 수:253 추천:20

Becoming a Mother


  임산부 교육을 받으러 가는 딸을 따라나섰다. 햇볕이 몹시 따가운 한낮. 두 손으로 배를 받친 뒷모습이 내 눈에 낯설다. 질끈 뒤로 묶은 머리와 한 아름이나 되는 두리뭉실한 허리, 맨발가락을 아무렇게나 슬리퍼에 꿰고 우그렁하게 걷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줌마다. 검정색 슈트가 잘 어울리던 훤칠한 키와 날씬한 허리와 뾰족구두 위에 쭉 뻗은 긴 다리, 세련된 걸음걸이의 전문직 커리어우먼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딸은 지금 임신 9개월째다.

         
  강의실에 배불뚝이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든다. 맨 앞자리는 백인 부부가 앉았다. 커다란 손을 배에 갖다 대며 원을 그리는 남편의 손 등에 아내도 자신의 손을 얹는다. 마치 부부란 이렇게 하나가 되어 가는 거야 하는 것 같다. 아직도 얼굴에 앳된 소녀의 모습이 남아있는 히스패닉 여자, 뱃속의 아기 때문인지 살이 찐 건지 분간이 안 되는 뚱뚱한 백인 여자, 그리고 내 딸이 ‘갓난쟁이 응급처치법’ 수강생의 전부다. 강사는 아기 크기와 똑같은 인형을 나눠주며  응급처치법, 목에 이물질이 걸렸을 때의 대처법 등을 강의한다. 저 기술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싶은데 수강생들은 아주 심각하게 연습을 한다.

 

  나도 초년 임산부였던 때가 있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준비도 없던 신혼 초에 임신이 되었다. 그것은 사건이었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은 누군가의 반쪽으로 사는 새로운 환경에 온전히 편입되지 않은 어중간한 때에 임신은 나를 그 울타리 안으로 사정없이 밀어 넣어버리고 말았다.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확증의 마침표. 설레는 한편 두렵기도 했다. 그것은 사랑과 약속만의 관계가 절대로 지울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핏줄로 엮이는 일이었으며 무거운 공동 책임이 덜컥 지워지는 일이었다. 내가 선택한 ‘가정’이라는 배가 넓은 바다를 향해 첫 뱃고동을 울리는 출항 소리였다.

낯 선 서울의 작은 아파트에서 수도꼭지를 거머쥐고 노란 위액까지 게워냈다. 그러나 그 입덧보다 더욱 나를 복대기친 것은 아직 엄마가 될 준비도 안 되었는데 하는 심란한 마음이었다. 임신은 내게 씌워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느낌을 주었다. 뱃속의 생명을 순연히 보듬기에는 내 자아가 너무 뻣뻣했다. 만삭이 되어 출산 준비 되었냐 묻는 친구에게 떠밀려 동네 아기옷 가게를 찾았다. 소매 끝에 손 싸개가 붙어있는 배내옷을 보고서야 뱃속 아기의 꿈틀거림이 신기해지며 아기라는 존재와 비로소 대면할 수 있었다. Garcia Lorca의 희곡 ‘피의 결혼’에서 신랑의 어머니는 아들과 신부에게 말했다. “얘야, 넌 결혼한다는 게 뭔지 아니? 한 남자와 몇 명의 자녀들과, 외부와는 어떤 것이든 폭 2미터의 담을 두고 사는 것이야. 더 필요한 건 없어. 모두가 그저 살아가는 거란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지 위한 첫 걸음을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뗄 수 있었다.

  딸은 나와 다르다. 임신하기 전부터 산부인과를 정해 임신하기에 적합한 건강 상태인가 검진을 했다. 몇 달 뒤 임신이 되었다는 의사 진단이 나자마자 다니는 직장 빌딩 안에서 운영하는 유아원 waiting list에 등록을 했다. 딸과 사위의 차에는 카시트가 각각 실려 있다.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찰서까지 가서 경찰에게 직접 안전하게 장착해 달라고 했단다. 핑크빛 커턴으로 치장한 아기 방에는 온갖 아기 용품이 즐비하다. 젖 짜는 기계는 물론 병원 갈 때 들고 갈 가방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가방 안에는 산통에 시달릴 때 기분 좋아지게 만든다는 라벤더 향수, 얼굴에 갖다 대는 손 선풍기까지 있다. T.V.를 보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딸은 임신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몇 주가 지나자 콩알만 한 점밖에 보이지 않는 초음파 사진을 디밀었다. 암만 자세히 봐도 내 눈에는 시커먼 빗금만 보이는데 딸과 사위 눈에는 손발이 모두 보이는 모양이었다. 의사가 다른 태아들 보다 일주일 정도 더 큰 사이즈라고 했다며 헤벌레한 입을 다물 줄 모른다. 팔불출 증상이 참 빨리도 시작되었다.
5개월째 되는 정기 검진 전날 들뜬 전화가 왔다. 딸인지 아들인지 알고 싶으면 내일 함께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남편과 나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지만 내색도 못하고 약속 시간에 맞추느라 물도 한 모금 못 마신 채 새벽에 집을 나섰다. ‘여기가 눈, 코, 입, 여기가 간, 폐, 모두 이상 없습니다. 손가락도 다섯 개고요. 자, 이제 다리입니다. 어디 어디 딸인가 아들인가 볼까요? 오우, 프린세스 공주님이군요.’ 호들갑스러운 의사의 말에 딸은 보름달 같은 배를 부끄럼도 없이 열어놓고 누운 채로 두 손을 내밀어 사위와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임신 6개월이 지난 딸의 다음 스텝은 DOULA를 정해 매주 사위랑 셋이서 미팅을 하는 것이다. 듈라는 간호사와 의사의 중간쯤 되는 포지션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조산원인 듯했다. 분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벌써부터 함께 호흡 연습을 했다. 부부는 손을 맞잡고 앉아서 하나 둘 셋 하면 셋이서 똑 같이 후우 날숨을 뱉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안하는 호흡 연습을 심각하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뭐하는 짓이고. 치아라 마’ 하고 싶었지만 모른 척 했다. 듈라는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면 집으로 와서 산전 호흡을 돕다가 병원까지 따라가 출산한 뒤까지도 수발을 들어준다고 하니 내 몫을 덜어주는 작업이라 그리 말릴 일도 아니었다.


  7개월부터는 임산부 마사지를 받으러 다닌다. 등뼈와 온몸의 관절, 골반 등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도와주고 음악을 들으며 배를 쓸어주면 아기도 안정되고 편안해진다고 한다. 부모 교실에도 일요일마다 다닌다. 도대체 뭘 배우느냐고 물으니 찍어온 영상을 보여준다. 사위가 인형을 가슴에 엉거주춤 안고 우유병을 들이대고 있다. 인형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기저귀를 채우는 모습도 있다.


  8개월로 들어서며 저녁마다 사위가 대롱 같은 걸 배에다 대고 아기에게 이야기해 준다고 한다.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자라야 세상에 나와서도 아빠를 알아보고 거부감이 없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매일매일 들려줄 이야기가 없어서 요새는 헨젤과 크레텔 같은 동화책을 읽어준단다. 아기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내 핀잔에 깜짝 놀란다. 그 생각을 못했다며 이제부터 어린이 성경을 읽어주겠다고 한다.

  30년 전 내 친정엄마는 침대에 누운 갓난쟁이 내 딸을 보며 ‘너는 참 좋은 때에 나왔구나. 좋은 세월에 태어났다.’고 하셨다. 이제는 내가 똑같은 말을 딸의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한다. 내 딴에는 현명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모습과 비교해보니 많이 어수룩했구나 싶다. 생각해 보면 내 어머니의 어머니도 역시 딸의 출산준비에 경탄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내 딸의 딸도 임신을 할 것이고 한결 더 철저해진 출산 준비에 내 딸도 역시 고개를 흔들겠지.

  몇 년 전 앞뜰에 히야신스를 두어 그루 사서 심었다. 계절이 바뀌며 시들어 없어지더니 이듬 해 봄에 열 댓 송이 꽃무리가 되어 노랗게 피어올랐다.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언제 이렇게 가족을 이끌고 다시 왔니. 장하기도 하구나. 해마다 히야신스는 식구를 늘이며 피어올라 이제는 우리 집 앞뜰이 봄이면 온통 노란 꽃밭이 된다. 갈수록 꽃송이들이 더 커지고 색깔도 짙어진다. 사소한 꽃도 엄숙한 생명의 순환성 안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한다. 그러나 아무리 문명이 절정을 이루고 기존 삶의 가치가 폐기처분 되어도 아기의 탄생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다. 꽁꽁 언 손으로 겨울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할머니도, 수돗가에 앉아 방망이를 두들기던 내 어머니도, 세탁기를 왈왈 돌리고 있는 나도, 모성이란 단어 앞에서는 똑 같은 ‘어머니’이다. 탯줄의 강력한 끌림을 삶 전체에 아우라처럼 두르고 사는 어머니.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딸도 드디어 이 성스러운 대열에 합류하려고 한다.

  응급처치 교육이 금방 끝났다. 40분이나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 왔는데 교육 시간은 겨우 30분이다. 그래도 딸은 흐뭇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으며 묵은 경험을 물어보겠지 했던 기대는 애당초 접고, 열쇠를 짤랑거리는 딸을 따라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탄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2016 단국대학 한국문예창작아카데미 '미주에서 한글로 문학하기'> <한국문예창작아카데리 2016-2 non fiction>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 못말리는 건망증 file 성민희 2008.03.18 869
129 마지막 숙제 file 성민희 2008.03.26 754
128 그게 그냥 그런 맛인가봐 file 성민희 2008.07.23 876
127 부모, 어디까지 가야할까 성민희 2008.08.21 769
126 대책없는 엄마 성민희 2009.01.16 822
125 내가 가꾼 정원 성민희 2009.02.04 991
124 가짜가 더 아름답더이다. file 성민희 2009.07.21 952
123 친구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준 사연 성민희 2009.07.25 1057
122 코코가 다녀 간 자리 file 성민희 2009.09.30 937
121 미안해요 file 성민희 2009.10.09 837
120 그 친구가 사는 법 file 성민희 2009.10.25 1057
119 이상한 여행 성민희 2010.02.15 841
118 밥은 먹었니? 성민희 2010.03.01 1224
117 결혼식 진풍경 성민희 2010.10.05 831
116 우락부락 남자 어디 없나요? 성민희 2010.10.12 951
115 나는 부끄럽지 않기를 원합니다 성민희 2010.10.13 870
114 아버지의 낡은 점퍼 성민희 2010.11.24 824
113 한 칸 너머의 세상 성민희 2011.11.09 543
112 치마 길이 소동 성민희 2011.11.21 493
» becoming a mother 성민희 2012.11.06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