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 - 제2막

2011.12.02 03:34

김학천 조회 수:537 추천:186

  ‘아마도 그 옛날 제퍼슨이 이곳을 매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나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무슨 소리인가 해서 귀를 기우리는 내게 노인은 물론 당당한 미국인이긴 하지만 먼 선조의 유산이 흐르는 피의 프랑스인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이곳은 프랑스의 문화와 생활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그 예로 프랜치 코트(French Quaters)나 세인트 미식축구팀의 엠블렘을 보면 압니다.’
   오래 전 미시시피 강을 따라 가는 크루즈 여행길에 만나서 음악과 스포츠얘기를 끊임없이 해주던 노신사의 얘기가 별안간 떠오르는 것은 며칠 전 일어난 감동의 역전승, 그것도 43년 만에 만년 루저의 딱지를 떨어버린 루이지애나 세인트가 승리를 하고 그 팀의 수퍼보올 MVP 드루 브리즈가 아들을 안고 관중의 환호에 답하는 사진을 보면서 기억에서 되살아난 역사의 그림자 때문이었다. 루이지애나와 세인트의 감격과 희열, 이는 결코 우연의 결과라기보다는 미국과 프랑스의 역사적으로 얽혀있는 숙명적 인연의 배경을 미루어 볼 때 어쩌면 투혼의 부활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상의 노신사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수퍼보울의 월계수를 머리에 얹은 세인트의 엠블렘 ‘릴리’가 불어인 ‘Fleur-de-Lis’로 되어있는 것이 루이지애나는 원래 프랑스의 땅이었기 때문에 부르봉 왕조의 문장에서 기인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왕이 세례를 받을 때 얻은 릴리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릴리는 구전에 의하면 이브가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당하면서 흘린 눈물에서 피어난 꽃이어서 가톨릭에서는 순결의 이미지로도 보지만, 창 모양으로 생겨서 ‘앞으로의 전진’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인트’라는 팀명은 루이지애나 축구팀이 창단되어 인정을 받은 날이 마침 ‘성자의 날’이기도 하고 루이 암스트롱이 즐겨 부르던 노래인 ‘성자들의 행진’이 재즈의 도시인 뉴올리언스와도 맞아 떨어져 착안되었다고 한다. 이러하니 프랑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루이지애나의 전통과 오로지 전진만 하는 게임의 행진이 조합된 이 세인트들의 터치다운 성공으로 성자의 왕관이 정녕 승자의 왕관을 쓰는데 43년이 걸렸다니 그 감격이 오죽하고 눈물겹지 않겠는가.
   이는 마치 얼마 전 우리가 축구 세계 4강에 올랐을 때 우리도 그 열광과 흥분을 경험한 바 있어 익히 알고 있으나 이번의 그들의 승리는 아마도 그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도 역사려니와 5년 전 카트리나의 피해로 수퍼돔을 쓸 수도 없는 여건 속에서 완전히 찢어져 조각난 후 절망과 낙심만이 남아있던 이 도시의 모든 이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며 피어난 귀한 꽃, 생명의 이브의 꽃이다 보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의 감격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의 세인트의 승리는 알게 모르게 가진 자에게 잃었던 잃은 자의 자존감 회복이 역사의 자취 속에 숨어있었지 않나 싶다. 마치 2002년 월드 축구에서 아프리카 세네갈의 검은 축구팀이 저들의 식민지 역사 속에서 억압받은 아픔을 경기를 통해 자국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침으로 자기들도 다 같은 신의 자손임을 알리는 눈물겨운 투혼을 보여준 것과 같아서 말이다.
   아무튼 아주 오래된 운명의 유산에서 비롯된 이 땅따먹기 게임은 이미 서문에서도 말했다시피 미국국부들의 영토 넓히는 서진정책이 토머스 제퍼슨이 루이지애나 영토를 사들이는 것을 발판으로 지속하면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명백한 운명(MD)’으로 명명하며 자기네끼리 정당화하더니 그 자취가 오늘 그들의 후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음이다.
   자칭 운명적인 이 루이지애나 영토매입이 얼마나 미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는 5센트짜리 미국동전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앞면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초상화를 넣고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 몬티첼로가 있는 뒷면에 2004-2005년 2년간 영토매입 200주년을 기념해서 잠시 다른 그림을 넣었는데 이것이 바로 미불간의 루이지애나 매매협정의 악수하는 모습이다. 서진정책 시리즈의 일환으로 디자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와 언어가 살아 있는 한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 법.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뿌리는 남아서 맥을 잇고 그의 혼과 얼을 통해 살아 숨 쉰다. 루이 14세를 기리는 루이지애나 주명부터 시작해서, 오를리앙의 이름을 딴 뉴올리언스, 재즈의 발상지라는 프랑스 쿼터(뷰카레: Vieux Carre), 프랑스인이 발전시킨 케이준 음식, 프랑스 문화와 접목된 크리올어 사용 등 그대로 미국 내의 프랑스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지진의 대 참사를 겪은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와 자매도시인 뉴올리언스가 배턴루지와 함께 심장부로 자리 잡고 프랑스인들의 고향노릇을 하는 한 프랑스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잔 다르크의 깃발에 그려있던 Fleur-de-Lis! 3색의 자유, 평등, 박애로 승계된 그 정열과 순백의 정신이 다시 진정한 정의와 평등으로 이 땅에서도 꽃을 피우려나. 노신사의 아스라한 먼 조상의 땅에 피어난 눈물의 꽃이 그려진 왕관이 한층 빛나 보인다. (계속) (아크로, 2-1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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