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와 아담

2011.12.09 02:12

김학천 조회 수:606 추천:177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남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라는 유행가가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도로남’ 노래가사이다. ‘님’에 점하나 붙이면 ‘남’이 되지만 모음을 돌려쓰면 ‘놈’도 된다. 안 보면 죽고 못살던 그 님도 남이 되고 종국엔 나쁜 자식인 놈이 되고 만다.
눈에 뭔가 씌어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일 때는 얼굴에 있는 마마자국도 모두 다 보조개로 보여 ‘당신은 어쩜 이뿐 보조개가 그리도 많소.’이지만 미워지기 시작하면 콧구멍도 왜 그리 크게 보이는지 나바론 요새의 거대한 대포 같다고 빈정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살붙이고 살던 ‘당신’도 싸움하고 나면 ‘등신’이라고 욕하고 돌아서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누가 그랬나.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아마도 생판 모르던 남이 만나서 사랑하는 님이 되고 혼인하여 한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는 한 몸, 촌수조차 없는 무촌의 관계여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한 몸이란 의미였겠다.
허나 뭐가 어긋났는지 등돌리면 도로 남이 되니 촌수가 있을 리 있겠나. 속말로 도루묵 아니 도로남인 것을. 오히려 꿈에도 보기 싫은 원수덩어리가 되는 것을. 어째서 그렇게도 그리운 님이 점하나 찍어 남이 되어 돌아서고 정든 님이 멍든 사랑으로 갈라서게 되는가.
그것은 부부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이기 때문이다. 각기 서로 다른 개성의 독립된 두 인격체가 마치 두 개의 평행선과 같아서 조금만 각도가 어긋나도 빗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가 잘 유지되려면 ‘다섯 마리 곰’ 같아야 한다고 한다. 한 마리 곰(bear는 ‘참다’란 의미도 있다)과 네 마리 곰(four는 for와 동음이다.)의 합인 다섯 마리 곰은 이래서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소설 ‘빙점’의 작가가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여 ‘이제 부부가 되었습니다’하고 성혼선언문이 발표될 때 이는 ‘부부가 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부부가 되어가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 말에 수긍이 간다. 웨딩마치에 따라 퇴장하는 그 때부터 싸우고 화해하고를 거듭하면서 양보를 배우고 미운 점까지도 예뻐하게 되면서 검은머리가 휜 머리가 되도록 서로 닮아 가는 것이란다.
허긴 이런 말을 들은 어느 젊은 남녀는 머리를 하얗게 물들이고 이혼을 했다는 우스개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나의 것 반과 너의 것 반을 합하여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것 전부와 네 것 전부를 내놓아 완전한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젓가락 두 개가 있어야 한 짝이 되고 완성을 이루듯이 그리고 서로 협력해야 공동의 목적을 이루어 갈 수 있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부부란다. 아담을 잠재우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이브를 만들었다는 창조이야기. 그 분은 왜 하필이면 갈비뼈를 사용했을까. 다리뼈는 밟는 습성이 있고 손뼈는 삿대질을 하기 쉽고 머리뼈는 가르치려 들것이고 턱뼈는 말이 많아 싸움 잘날 없을 것이고 어깨뼈는 거들먹거리기 십상이고 목뼈는 교만하기 때문이란다. 갈비뼈는 가슴 가까이 있으니 사랑하고 보호하며 나란히 동행해 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기리며 묵상하는 수난절이 시작되었다. 이 기간동안만이라도 절제하고 인내하며 서로를 돌이켜 본다면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는 아담과 이브의 사랑고백이 들릴 지도 모른다. (미주중앙일보, 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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