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제7막 (신 권리장전)

2011.12.14 06:51

김학천 조회 수:718 추천:165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버지니아의 초대 주지사였던 헨리 패트릭은 그렇게 외쳤다. 영국으로부터 벗어난 미국의 국부들은 전제정치를 버리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위한 제도마련에 애썼다. 그러나 자신들이 세운 이 나라의 중앙정부가 다시 국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혹시 모를 중앙권력의 독재와 전횡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으로 무기를 소지하고 행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해서 그들은 아예‘규율을 잘 갖춘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정부의 안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 받을 수 없다.’고 무장권을 아예 법에 못을 박아버림으로써 총기논란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1791년에 마련한 수정조항 제2조다.
   이렇게 해서 자유를 찾는 수단이었던 총기는 저항권의 상징으로 되었다.
   그 후 소위 'The Wild West'라고 부르는 미국역사의 초기 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에서 농업과 수렵으로 대체로 안정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에겐 식생활과 치안을 위해 총이 필요했었다. 이제 총기는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자위기능과 사냥을 위한 생계수단의 도구까지 된 셈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실제로 우리가 아는 식의 끊임없는 총기에 의한 살상과 범죄가 일상화 되어있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이야기는 후에 소설이나 매스컴들의 논픽션으로 각색되고 연출되어 실제와는 많이 다르게 악당들을 물리치는 권선징악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총잡이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총기가 생활의 일반적 용기로 등장하고 말았다. 거기에 할리우드가 양산한 많은 서부영화들이 오늘날 미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자리 잡고 정당화하는데 일조를 했다.
   전설의 총잡이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와 닥터 할러데이의 OK 목장의 결투를 비롯해서 존 웨인, 아란 랏드, 게리쿠퍼, 버트랑 캐스터를 비롯하여 수많은 실제의 속사포의 총잡이 배우들이 활약한 할리우드 이야기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총기 문화에 익숙하도록 보탬을 했다. (재미난 것은 근래에 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결투인 'OK 목장의 결투' 사건의 검시 보고서 원본이 125년 만에 다시 발견됐다. 닥터 할러데이는 치과의사이면서 속사포였다)
   그래도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발의 총대결에 사나이답게 폼 잡고 근사하게 결투하고는 떠나가는 멋쟁이 총잡이가 전부였다. 헌데 갑자기 시가를 질근 질근 씹으며 가늘게 눈을 뜨고는 무한정의 총세례를 내어 악당들을 몽땅 죽이는 마카로니웨스턴이 나오면서 몰인정하게 목숨 쫓아다니는 돈벌이 건맨들이 룰도 신사도도 집어 던지는 패턴으로 되면서 총은 자위권이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게 명분 없는 이기적 우상으로 이끌어가는 결과를 낳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미국판 추노(追奴) 라고나 할까.
   영원한 더티해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최고의 옷을 쪽 빼 입은 신사모습의 리반 클립이나 잔인한 기운이 감도는 재크 파란스 등을 통해 이들은 아예 총이 생활의 필수품인양 뿌리를 내린다. 가뜩이나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총기에 대한 적응이 수월해지고 소유가 많아졌던 총기는 거의 모든 이의 휴대품이 되다시피 되었다. 아마도 오늘날의 셀 폰이나 아이파드 같다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보고에 의하면 미국인은 90%가 총을 갖고 있고 49%의 가정이 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인에 있어 총은 살인 무기라는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자기 방어라는 엄숙한 운명적 권리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마도 미국인 대부분이 살인번호 00을 당연히 부여 받고 있는 듯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동물은 새끼였을 때 놀이를 하는데 그 놀이유형이 그 본성과 관련된 양상이라는 것이다. 사자 같은 공격성 육식동물은 새끼들의 놀이가 먹이감을 잡아 기절시키는 과정의 패턴을 연습하는 것과 같고 사슴 같은 피포식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껑충껑충 뛰어 도망가는 모습의 놀이를, 또 늑대 같은 동물들은 먹이를 땅에 묻는 습관처럼 놀이감을 땅에 파묻는 장난을 하고 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이 주로 하는 총을 차고 뱅뱅 쏘아대고 결투하고 죽이고 죽는 시늉을 하는 게임은 무엇을 반영하는 것이겠는가?
   더욱이 이러한 미국인들의 총기생활문화 한가운데에서 자리 잡고 앉아 그들의 의식과 사고를 정당화하도록 주도하고 조정하는 후원체가 있으니 이가 바로 미국총기협회(NRA)이다. 그리하여 2세기 전의 헨리 패트릭의 외침은 오늘날 이렇게 바뀌고 있다.
‘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바로 얼마 전 협회장을 지낸 찰톤 헤스톤의 일갈이다. 그는 회장연설에서 오른 손에 장총을 높이 치켜들고는‘나를 죽이고 내 손에서 총을 빼어가라’고 부르짖었다. 마치 구한말 상투를 자르려는 단발령에 저항하여 ‘此頭可斷 此髮不可斷’을 외친 우리네 선조들의 목숨 건 결연한 사투와 같다. ‘아예 내 손을 잘라라.’라는 제스처이다.
그러면서‘미국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용기로 건설된 나라이다. 나는 죽어도 총을 포기 못한다. 이것은 이 나라를 건설한 우리의 백인 조상들이 물려준 권리이다. 나는 장전(Load)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인권의 권리장전(章典) 이 아니라 총알의 신(新) 권리장전(裝塡)을 선언한 셈이다.
   미국에서 가장 센 영향력의 단체 제1위로 선정된 미국총기협회(NRA).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고 건국국부들의 이상과 부합시켜 그 힘을 이용해 정치적 패권을 거머쥔 압력단체. 많은 각종 간행물은 물론 수많은 산하 단체를 만들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냥이나 사격 같은 스포츠를 비롯해서 총기사용법 및 사고 예방법에 대한 세미나는 물론 보이 스카우트나 Youth Hunter Education Challenge를 통한 어린이들을 위한 총기에 대한 소개, 정보 및 교육과 각종 참여 프로그램 등도 운영한다. 그 뿐 인가. 예산도 2억 달러에 이르고 회원이 되면 협회활동을 하다 일어나는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상해에 대한 보험도 들어주는 수혜까지 있어 엄청난 조직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대하고 강한 결속력으로 정치적 로비를 통한 위협적 단체라는 점이다. 이들의 파워는 엄청나서 최고의 권력너머에 있어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최상의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선거의 그 어떤 후보자도 총기제한에 대한 발언을 했다가는 영락없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미 카터, 클린턴을 비롯 고어, 존 케리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헌데 애당초 이 총기협회의 초기 설립동기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수인 총기가 과학적인 기초로 사격을 증진시키기 위해 1871년에 2명의 북군출신에 의해서 만들어졌었다. 그러던 것이 1975년에 수정헌법 제2조를 정치적 수단으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ILA(Institute for Legislative Action)을 설립하면서 슬슬 정치적 이해에 끼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이 굳게 믿는 총기소유 및 사용의 정당성 근거는 바로 수정조항 2조인데 문제는 ‘민병대’의 해석이 개인까지 포함하느냐 아니면 집단에 국한 하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옹호론과 반대론의 치열한 싸움이 230 여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끝나지 않고 한창이다.
   문제의 조항을 법원은 어떻게 생각하고 처리 해왔는가. 대표적인 것으로드레드 스캇 사례(Dred Scott v. Sandford, 1856)에서는 흑인도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가를 부정적으로 다루었던 미연방대법원은 밀러 사례 (United States v. Miller, 1939) 에서 ‘민병대의 유지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개인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던 것이 여러 논란을 거쳐 오다가 32년 동안 총기소지를 엄격히 금지했던 워싱턴DC의 헬러 사례 (District of Columbia v. Heller, 2008)를 통해‘총기의 심각성을 잘 알고는 있지만 미국의 헌법은 개인이 정당방위를 위한 총기소지나 총기사용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함으로 획기적 전기를 만들었다. ‘총기를 소지할 권리는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을 받아왔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총기소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제정에 대해 미국인의 3분의 2가 반대했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강력한 로비집단인 NRA와 미국총기소유자협회(GOA) 구성원들도 이와 아주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다.
   게다가 오늘날 최대무기 수출국 군수산업의 국가는 어디인가?  그러고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총기에 의한 민주주의, 즉 Gunocracy 라고 해야 할 판이다.
   결국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은 독립선언서와 횃불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와 총을 들고 있는 셈이 되었다. 다시 말해 생활의 지침은 성서이지만 삶의 생존은 총이어야 한다는 사고의 표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은 다시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 모른다.
한 손으론 ‘In God, we trust!’,
높이 쳐든 다른 한 손으론 ‘In Gun, we trust!’ (계속) (아크로,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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