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해에서 헹가래를 타며

2013.09.19 22:26

박봉진 조회 수:700 추천: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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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에서 헹가래를 타며 / 박봉진

렇게 좋을 수가. 쾌재의 환호가 절로 나왔다. 온전히 나를 맡긴 것의 화답일까. 야구경기를 승리로 이끈 감독의 헹가래 타기가 그랬을 게다. 선수들이 떠받은 손바닥들처럼 촘촘한 밀도의 염분입자들이 내 등을 떠밀어 둥둥 띄웠다. 해수면 보다 421미터나 낮고, 바닷물보다 7~8배 더 짜다는 사해 물에 내 등받이를 맡겼더니 그저 주는 그 무엇. 내가 해야 하는 몫은 단지 손과 발을 놀리라는 것뿐. 방향을 잡고 헤엄치는 일이 이리 쉬울줄이야.

등학생시절, 물위에 누워 일산을 받힌 사람의 책 읽던 모습, 그 사해 사진이 떠올랐다. 그런 체험의 날이 내게도 있게 한 인도를 나는 안다. 다섯 나라 성지순례 일정은 톱니바퀴처럼 매일 물고 물리는 듯 했다. 이스라엘에 온 지 이틀 째 날, 우리 일행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접경지대 사해에 갔다. 거기는 구약 시대 ‘염해(鹽海)’로, 또는 ‘싯딤골짜기’로도 불린 곳이다. 아랍어로는 더 구체화한 명칭, ‘롯의 바다(Sea of Lot)’라고 한단다.

때 유황불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남쪽 깊숙한 해구에 잠긴 것으로 추정한다 했다. 사해는 동 아프리카에서부터 뻗은 지진대 단층선 북단에 자리해있어 주변 유황성분 온천들이 고증을 해주고 있다. 그래 염해(鹽海)가 사해(死海)로 불린 내력도 추리되지 않는가. 사해는 흘러드는 요단강물이 온갖 유기물을 유입하지만 다시 물을 내보낼 하구조차 있지 않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련만, 사막성 열기가 그 물을 끊임없이 조이고 졸인다.

래 들어 급속한 환경변화로 사해수면이 확 줄어들어 동강나 없어진 바닥들이 보였다. 그래서 전쟁을 치른 두 나라,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손잡은 대 역사가 시작될 수밖에. 운하를 만들어 홍해 물을 사해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그리되면 사해는 바뀐다. 철갑상어로 유명한 내륙바다 카스피해처럼 될 수도 있겠다. 물에 들어서니 시커먼 바닥진흙이 퀴퀴한 냄새를 풍겨댔다. 그 또한 한창 불티를 내고 있는 사해 화장품의 원료 머드(Mud)라니.

무렴, 사해는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을지 모르지만, 내 그대로를 받아주고 상상의 나래를 펴주니 얼마나 좋은가. 사해 진흙은 미네랄성분을 덩이 채 함유하고 있어 관절과 피부병에 좋단다. 옛날 솔로몬 왕과 시바여왕 클레오파트라도 자주 찾았다는 곳. 우리들 신분도 그 버금쯤 될까. 믿거나 말거나 아내는 바깥 상점의 사해 진흙 원료 화장품에 눈이 쏠려있다. 친지들에 선물할 마음은 좋지만 끙끙거릴 가방 짐을 또 얼마나 불릴지.

러고 보면 사해는 죽어있는 자원을 가치있게 되살리는 경영의 통달이 아닌가. 큰 섭리에 닿아있지 않고서 누가 이처럼 사람들을 생기나눔으로 이끌랴. 사해 물을 조이고 졸이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거인의 몸짓 일게다. 호흡일 듯도 싶다. 무디기만 한 내 심성, 얼마나 많이 내 속을 조이고 졸여야 그 염도만큼 사람을 띄울만한 부력이 생겨날까. 얼굴에 시커먼 진흙을 발라 제 모습은 못 본 일행들. 마주보고 웃는 치아가 유난히 하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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