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카시아

2007.07.04 06:14

박봉진 조회 수:1022 추천:77

47cb3e2d601f37841ed006a706f6f990.JPG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참 많이도 목이 메었었다. 떠밀리 듯 떠나왔거나 버리듯이 떠나온 고향은 더욱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왜 이었을까?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러하지 않지만 지난 70년대 이민자들은 주중 며칠, 짧은 저녁 시간대의 한국텔레비전 방송을 노칠 수가 없었으리. 그 방영이 끝날 무렵에 흘러나오던 코러스 ‘고향땅’을 속으로 따라 불렀으리라. 그 때 목안을 따갑게 했던 그 노랫말. 낯선 땅에서 막막했던 심정과 불거의 향수가 뒤엉키게 했던 아카시아. 그리고 망향가인 듯, 자장가인 듯, 노곤한 잠 속에 푹 빠져들면서 노역의 여독을 풀었던 그 아카시아를 생각하면 지금도 발바닥이 저리다.

고향 마을 한 골짜기는 온통 아카시아 숲으로 덥혀있었다. 그래서 아카시아는 어디서나 흔한 식물인줄 알았다. 뜻밖에 원산지 미주에서는 길 이름이나 아파트 이름으론 아카시아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아카시아나무 보기는 싶지 않다. 아카시아를 흔하게 보아 와서 그럴까? 사람들은 아카시아를 오동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품격 있는 활엽수 반열에 끼워주지 않는다. 동네 가까이나 좋은 토양의 산야에는 아카시아가 있지도 않았다. 호우 때 토사가 깎여지거나 휩쓸려졌을 산등성이나 골자기가 아카시아의 군락지로 되어있다.

그렇지만 아카시아는 다른 초목들이 꽃피기 다툼을 하는 상춘기의 소란은 느긋이 못 본체 해버린다. 벚꽃이 단시일의 축제처럼 와글거렸다가 경망스럽게 낙화하는 것과는 매무새부터 다르다. 아카시아는 설핏 산야에 초여름 기운이 넘실거릴 때쯤이면 그제야 연두색 부드러운 잎사귀로 안면을 가린 채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 꽃은 작은 백합꽃처럼 흰빛을 띄었지만 상아색에 가깝고 기품이 베여있다. 꽃은 속살이 들어나도록 만개하지 않는다. 작은 은종처럼 무게를 담고 있다. 아카시아는 한 여름, 녹색 그늘로 더위 타는 사람들을 불러드린다. 가을이면 잎사귀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한 겨울의 삭풍 앞에선 나목으로 당당히 맞선다. 묵묵히 순리를 따르면서도 수세를 키우고 영역을 넓히는 것은 실팍하고 다부지다.

아카시아는 둥치와 뿌리와 잎새 그리고 꽃과 수심(樹心)의 총체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건데. 그것을 효용성에 따라서 지체별로 이용하는 것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분업 구조의 관습에 익숙해있기 때문일 게다. 아카시아를 요긴하게 실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경계심을 갖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람들은 우선 아카시아의 강인한 생존력과 속성(速成)의 수세(樹勢)를 장점으로 택하면서도 성성한 가시를 싫어한다. 자기 집 근처로 아카시아 뿌리가 번져오는 것을 꺼린다. 어느 생물인들 생존의 본능이 없으랴. 알고 보면 아카시아는 성장기에만 자기 방어 수단으로 가시를 매단다. 새순을 밀어 올리고 둘레로 가지를 뻗친다.

이러다보면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가 밀고 당기고 엇갈리며 제 잘났다는 듯이 엉킨다. 게다가 웃자라는 나무는 자꾸 잘라서 뿌리와 잔가지로 밀림이 되도록 했다. 그것이 일제 강점기의 치산치수(治山治水)정책이었고 아카시아로 사방목(沙防木) 역할을 담당시켰다. 원래 헐벗었던 산언덕과 골짜기나 방축에 지금까지도 아카시아가 많은 것이 바로 그런 연유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아카시아를 ‘왜까시’라고 불렀나 보다. 아카시아는 띄엄띄엄 성목으로 커야 짙은 향의 꽃이 피고 녹음을 드리운다. 재질은 단단하기 때문에 가구 제품이나 철로 침목 같은 용재로도 쓰인다.

아카시아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그렇지만 옮겨 심으면 발근(發根)할 때 까지는 땅내를 맡느라고 잎사귀가 노랗게 물러앉는 속 아리를 한다. 오늘날은 동포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공동화 되어가던 도심에 이민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산다. 아카시아의 자생의지로 타운을 형성했고 현재와 같이 성장시켰다. 그것은 아카시아가 자기 삶의 방식대로 충실한 삶을 살아낸 것이리라. 그러나 미국사람들에게 우리말 그대로 아카시아라고 말하면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아케이시아 라고 말해야한다. 아카시아도 성목이 되어 꽃을 피우면 여느 교목(喬木)들처럼 가시는 퇴화된다. 다만 꽃과 잎과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가시를 우듬지에 달고 있을 뿐이다. 뻐꾸기가 울지 않는 이곳의 산야에도 아케이시아가 있음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몇 년 전 여행 중에 '씨에라네바다' 산줄기의 눈 녹은 물이 수로(水路)를 따라 흐르고 있는 395번 하이웨이의 한 휴게소에서 쉬었던 적이 있다. 그때 어딘가에서 풍기는 꽃 향! 수로 가에 즐비한 큰 나무들을 올려보자마자 마구 탄성이 나왔다. 소담스러운 꽃가지를 끌어안고 나는 한참씩 콧숨을 들이키곤 하였다. 아케이시아 꽃이 피어 있는 '물댄 동산'의 실상(實像)과 해후를 그렇게 즐겼다.

물론 그 아케이시아들도 그곳의 자생 목은 아니다. 거기 옮겨져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나무들이다. 숲을 보고 말을 하는 사람이면 나무도 봐야한다. 수형을 갖춘 가지와 보이지 않는 뿌리도 봐야 한다. 서로 가까이 있어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여유 있게 햇볕을 받으며 통풍과 수분 영역도 충분히 고려되어야한다. 이것이 아카시아가 재목으로 크는 비결이다. 표피도 매끈해지며 꾸준히 성숙의 탈바꿈을 할 수 있게 될게다. 정글 상태로 그냥 있지 않고 모두의 영역을 지켜주는 것이 아케이시아 숲이 되는 비결이 될 것이다.

사막 땅이었던 물댄 동산에 오월의 양광이 눈부시다. 아직은 더 커야할 아카시아들이 수림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선주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주류 사회의 폄론(貶論)은 새로운 아케이시아 존재의 확인이 아닌가. 여름의 '인디안 섬머' 불볕더위와 겨울의 '산타아나' 강풍이 연례행사처럼 또 집적거릴 테지. 어쩜 그것은 뿌리를 깊게 내리라고. 단단한 나이테 하나씩을 더해가면서 아케이시아로 거듭나라고 하는 연단일 듯도 싶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0
전체:
214,695